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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쁜손 May 24. 2021

어화둥둥 내 사랑.

 며칠 전부터 마음과 몸이 분주하다. 구석구석 먼지를 쓸고 닦고 자잘한 물건들을 정리한다. 드디어 몇 달 만에 아들과 마루 녀석을 만날 수 있다 생각하니 없던 힘도 불끈 솟아나고-집안을 청소하고, 정리하고, 아들의 입맛을 사로잡을 메뉴를 고르는 것도 행복한 시간들이다. 오랜만에 사람 사는 집처럼 소란스러워질 생각만 해도 저절로 웃음이 삐져나온다. 혹시 내가 놓치는 부분은 없는지, 마루의 왕성한 호기심이 분명 집안 곳곳을 헤집고 다닐 텐데... 혹시 마루에게 위험한 물건은 없는지... 물건의 위치를 안전한 곳으로 옮겨 놓는다.

 사실 무뚝뚝한 아들보다는 이제 10개월로 접어든 견공-사랑스럽고 천방지축인 귀염둥이 마루가  눈에 아른거리니 고 녀석이 분명 매력 덩어리임에는 분명하다. 종종 아들을 통해 영상과 사진은 받아 보지만 실제로 얼마나 컸을지, 호기심은 여전히 왕성한지, 녀석을 내가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맘처럼 오랜만에 보는 할머니를 알아보고 좋아하려나 이런저런 걱정과 생각이 많다.

 난 아직 할머니가 되기에는 마음의 준비가 안됐는데 아들이 마루를 입양하고 개 아빠를 자처했으니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얼떨결에 할머니가 되었으니 좀 억울한 면도 있지만,  마루를 보고 있으면 그 마음조차 눈 녹듯 사라지고 마음이 사랑으로 충만해진다. 강아지도 이렇게 이쁘고 귀한데 훗날 아들이 가정을 꾸리고 손주라도 생기게 되면 정말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듯싶다.



 아들한테 맛있는 집밥을 해주고 싶어 머릿속으로 건강하고 맛있는 음식을 떠올려 보는데 마땅한 메뉴가 떠오르지 않아 고민이다. 너무 오랜만에 만나는 아들이라 해주고 싶은 게 많다. 한 며칠 묵어가면 이것저것 해 줄텐데... 에효,  아쉬움만 커진다. '참 집에 묵은지로 아들이 좋아하는 김치찜을 해보면 어떨까? 미역국에 잡채도 하고. 됐다! 이걸루 정하면 되겠다. '

 구석구석 청소도 꼼꼼하게 했고 메뉴도 정했으니 아들과 마루를 맞이할 준비는 거의 완성되었고 가슴은 계속 콩닥콩닥 기분 좋은 두근거림으로 아이들을 기다리는데 시간이 참 더디 간다. 창밖을 보니  오락가락하던 비가 어느새 그쳤다.  옷을 챙겨 입고 장을 보러 나간다. 콧노래가 절로 나오는 기분 좋은  하루이다.

 "안녕하세요? 수고가 많으세요~" 하고 경비아저씨에게 하이톤으로 인사를 한다. 평소에도 꼬박꼬박 먼저 인사를 하는 스타일이지만 오늘은 내가 생각하기에도 목소리가 한껏 들떠 생기가 돈다. '자식이 뭔지... 모든 부모가 그러하겠지... ' 이렇게 좋으면서도 아들한테는 혹시나 부담을 지울까 좋은 티도 적당히 내는 이 엄마의 마음을 아들은 결코 모를 것이다. 부모 마음을 헤아릴 줄 알면 그때는 진짜 비로소 어른이 되는 것이겠지. 나도 내 자식을 낳고 한참을 지난 후에 부모님의 우릴 향한 애틋하고 절절한 사랑을 깨달을 수 있었으니 아들이라고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아들, 잘 왔다! 마루 데리고 오느라 수고했어." 하고 마루가 든 가방을 받아 들고 한 손으로 아들의 어깨를 감싼다. 가방 안의 마루가 낑낑거린다. 녀석을 번쩍 들어 내려놓았더니 내 주위를 폴짝폴짝 뛰며 맴돈다. 두 팔을 벌리니 내게 다가와 내 얼굴과 손을 사정없이 핥는다. 몇 달만의 우리의 만남인데, 마루가 나를 기억하는 것이 너무 신기하고 대견스러워 품에 있는 힘껏 꼭 안아준다. 옆에 있던 아들 왈 "내가 마루한테 밀렸네. " 하며 껄껄 웃는다. 아들의 반응이 우습고 아차 싶었지만 요 애교 많은-내 옆에 붙어서 떠나지 않는 마루의 나에 대한 사랑이 마냥 적적하던 내 마음에 환한 불을 켰으니-마루의 적극적인 애정공세에 아들을 뻘쭘하게 세워두고 말았다. 그제야 아들에게 사랑해! 하며 꼭 껴안아준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것 같은 마루와 아들이 집을 꽉 채운다.

 금세 집안이 떠들썩해진다.  나를 닮아 말수가 없는 아들이지만 오늘은 제법 이런저런 그간의 일상을 풀어놓는다. 먹고사는 일만으로도 경쟁이 치열한 아들 세대의 한숨과 자조 섞인 말들을 들으며 담담하게 용기를 북돋는 말을 하지만 마음속으론 안쓰러움으로 가슴이 아프다. 힘든 내색을 평소 하지 않는 녀석이 하는 말이라 더더욱 마음이 짠하다.

 군 제대 후 다음날부터 부모한테 손 벌리지 않고 자기가 쓸 용돈, 생활비는 벌어서 생활하던 기특한 아들이었는데 요즘 실직하고 새 일을 배우는 과정에서 많이 힘이 드는 모양이다. 지친 표정에서 삶이 고단함이 느껴진다. 나의 사랑이 전해지기 바라며 아들의 손을 살포시 잡는다. 따뜻한 온기가 느껴진다.

 



 마루가 나의 품을 파고든다. 내가 앉아있으면 어김없이 내 무릎에 엉덩이를 들이밀고 앉아 내 팔에 얼굴을 기대고 꾸벅꾸벅 존다. 마루의 나를 향한 무한애정과 신뢰에 그간의 외로웠던-적적했던 마음이 위로를 받는다. 이 작은 생명이 아들에게도 분명 위로가 될 것이다. 가만가만 마루의 머리와 등을 쓰다듬는다.

 오늘따라 이른 아침에 눈을 떴다. 맛있는 아침을 아들에게 해주고 싶어 부지런히 손과 몸을 움직인다. 어느새 내 기척에 잠이 깬 마루가 내 옆으로 다가와 꼬리를 흔든다. 곤히 잠든 아들이 깰까 봐 방문을 조용히 닫고 평소 아들이 좋아하는 미역국을 끓이고 파프리카 잡채를 준비한다. 그사이 마루는 연신 호기심 나는 물건들을 물어뜯고 그마저 심심했는지 내게 공을 물어 가져와 놀아달라는 시늉을 한다. 천진난만한 마루의 모습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 엔도르핀이 솟는다. 아들에게 마루가 있어 참 다행이다. 분명 아들도 마루에게 위로를 받을 것이다.

 살금살금 잠들어 있는 아들에게 다가간다. 깊게 잠이 든 아들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피곤하고 지친 모습에 삶의 무게가 드리워져있다. 그 무게감이 느껴져 눈물이 핑 돈다. 지금 내가 아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따뜻한 밥과 정성을 다한 음식들뿐이다. 나의 무력감이 조금은 슬펐지만 이런 나의 마음을 언젠가는 아들도 알아주지 않을까... 아들의 이름을 나지막하게 불러본다.



 오랜만에 모처럼 사람 사는 집같이 밥상 앞에서 아들과 두런두런 정담을 나눈다. 마루는 제 사료에는 관심이 없고 호시탐탐 상 위에 차려진 음식에 관심을 보이고 달려들지만 아들의 "김마루! " 하는 짧고 굵은 경고에 이내 포기하고 돌아선다. 그 풀 죽은 마루 모습이 측은하면서 우스워 아들을 보고 웃는다. 마루를 말할 수 없이 사랑하면서도 그 사랑을 때와 상황에 따라 통제하고 절제하는 아들의 건강한 사랑법을 보니 내심 대견하고 안심이 된다.

 연신 엄지를 추켜 세우며 상 위의 음식을 달게 먹는-아들의 모습을 보니 안 먹어도 이상하게 배가 부르다. 아들의 성화에 몇 술 뜨다 과일을 깎는다.

어릴 적 자식들만 챙기고 자신을 전혀 돌보지 않는 엄마 모습을 보며 엄마처럼 살기 싫다고 다짐을 했었는데 어느새 엄마가 되고 보니  울 엄마 모습을 닮아간다. 갑자기 엄마 생각에 목이 멘다.


 아들을, 마루를 차례차례 꼭 끌어안고 "사랑해!" 하고 말한다. 어느새 훌쩍 커버린 아들 품에 안긴다. 잘 가 라고, 건강하고, 밥 잘 챙겨 먹으라고 아쉬움이 가득한 목소리로 아들과 마루를 배웅한다.



 부산하고 소란스러웠던 하루가 지나고 또다시 적막한 나의 일상이 나를 기다린다. 아이들이 빠져나간 휑한 자리에 쓸쓸함 하나 서 있다. 항상 마루와 아들이 다녀갈 때는 시원함과 섭섭함이 동일한 비중으로 올라왔는데... 오늘은 섭섭한 감정만 덩그러니 남아 나를 기다린다. 멍하니 앉아 있다가-쳐지고 풀 죽은 마음을 일으켜 세워- 아이들이 남기고 간 흔적을 청소하고 집안을  정리한다.

 마루가 남기고 간 알록달록한 공을 만지작거리다 책상 서랍에 넣고는 화분에 물을 준다. 갑자기 동그란 마루의 얼굴이 떠오른다. 고개를 갸우뚱하고 나를 쳐다보던 녀석의 모습이 생각나 웃음이 난다. 아들과 마루가 벌써 그립다. 눈을 감는다.

 허기진 배를 채우려 주방으로 나와 냉장고를 여니 그 안에 아들 편에 들려 보낼 반찬이 그대로 있다. 마루 짐을 이것저것 씨다 보니 깜박 잊었다. 안타까운 한숨을 몰아 쉬고 스스로를 탓하다 -종종 찾아오는 건망증에 -어이없어 씁쓸히 웃고 만다.


 나는 다시 혼자가 되었지만 아들에게는 다행히 지금 마루가 있어 참 다행이다. 마루 녀석이 아들이 퇴근해서 올 때까지 혼자인 게 많이 걸리지만 그래도 아들이 마루에 대한 깊은 사랑을 알기에 걱정을 이만 접어두고 그들의 안전과 건강을 위해 기도하는 엄마와 할머니로 돌아가려 한다.

 내가 여리고 작은 생명인 꼬마 화분에 위로를 얻듯 아들도 김마루라는 생명을 통해 고단한 삶을 극복할 힘을 얻는 것일 것이다. 난 아들의 넉넉한 사랑을 믿는다. 내가 아들에게 쏟은 사랑이  아래로, 아래로 자연스레 흘러갈 것을 믿는다. 그 대상이 굳이 사람이 아니어도- 생명이 있는 모든 존재는 아름답고 존재 자체만으로도 사랑받기 마땅하다. 진심으로 가족 없는 마루에게 누구보다 든든한 사랑을 주고 싶다. 아들도 나와 같은 마음 아닐까?... 사랑, 사랑 내 사랑, 어화둥둥 내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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