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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쁜손 May 18. 2021

사람과 사람과의 아름다운 거리.

오늘은 명희 씨 카페가 문을 연지 1년이 되는 개업 기념일이다. 내가 이 카페에 처음 방문하고 동갑인 명희 씨와 친구가 된 것이 작년 6월 중순쯤 되니 나와 명희 씨와도 거의 1년이 다 돼가는 셈이다. 나이 들수록 이상하게도 새로운 사람을 사귀기가 힘들고, 있던 사람마저도 멀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명희 씨는 몇 번 보지 않아도-그녀의 선량하고 순수한 모습에-친구가 되었다. 내 유일한 취미생활이자 즐거움이- 조용하고 한적한 카페에서 -좋아하는 커피를 마시며 멍 때리는 것인데,  작년 이맘때쯤 동네 산책길에 평소 다니던 코스를 벗어나 반대편 길로 방향을 튼 것이 이렇게 새 친구를 사귀는 인연이 될 줄 몰랐다.

 젊었을 때는 낯가림이 심한 편이었는데 나이 들어 좋은 점이 있다면 변죽도, 친화력도 좋아졌다는 점이다.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으면 먼저 친구 하자 손 내미는 여유와 뻔뻔함도 생겼으니 오래 살고 볼 일이다.ㅎㅎ

 봄날이라고 하기에는 때 이른 더위에 지나가는 사람들의 옷차림이 가볍다. 오늘은 날씨가 좋아 실외의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명희 씨가 주문한 커피와 쿠키를 담은 접시를 탁자에 내려놓는다. 언제나 간식거리를 챙기는 그녀의 다정하고 세심한 배려가 감사하다. 어느덧 집 이외의 가장 편한 장소가 되었으니 그녀의 카페는 어느새 나의 아지트가 되었다.



 한해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은 신록의 계절  5월,  이맘때이다. 연녹색 빛 나뭇잎들도, 불어오는 따뜻한 미풍도 마음을 포근하게 해 준다. 더도 덜도 말고 한해 내내 5월만 같으면 얼마나 좋을까. 빠르게 지나가는 아름다운 계절이 너무 짧게 느껴져 아쉽다. 새들이 지저귄다. 야외 테라스에서 바깥 풍경과 자연을 직접 보고 느끼며 고즈넉이 앉아 있으니 이 시간이 너무 귀하고 행복해서 감사한 마음이 절로 든다. 혼자서 늘 오고 가는 카페이지만 외로움보다는 오붓함이 더 커 이 시간을 매일 기다리고 즐기게 되는데- 거기에는 적당한 거리와 관심을 가져주는 명희 씨의 역할이 크다.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 친구가 되고 좋은 관계를 오랫동안 유지시켜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열쇠와 덕목은 무엇일까 하는 질문이 요즘 부쩍 내 뇌리를 스치는 것은 코로나로 대면활동이 어려워지면서 자연스레 소원해진 친구들 때문이다. 코로나 유행 초기만 해도 직접 만나지는 못해도 서로가 안타까운 마음으로 메시지나 전화로  안부를 묻고 일상을 나누었는데... 코로나 유행 상황이 길어지다 보니 그마저도 언제부턴가 서로 간에 연락이 뜸하게 되면서 알게 모르게 멀어지게 되었으니-여러모로 코로나의 여파가 크다.


 카페 앞 정원의 주홍빛 장미 두 송이가 수줍게 꽃망울을 터트렸다. 꽃의 여왕 장미가 피는- 눈과 마음이 즐거운 계절의 여왕, 5월이다. 눈을 감고 온몸으로 계절의 향기를 느낀다.



 사근사근하고 살뜰히 그리고 두루두루 지인들을 챙기는 것과는 좀 거리가 먼 무심한 편에 가깝다. 친구들이 오히려 이런 나를 챙기는 편이라 항상 미안하고 고맙다. 변명을 하자면 오랫동안 우울증을 앓아 오면서 나 스스로 챙기기에도 버거웠던 것이 사실이다. 지금 내게 학창 시절 친구들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생각해 보면 그들의 탓도 내 탓도 아닌 힘든 세월 탓 아닌가 생각한다. 일방적인 노력만으로는 돈독한  관계를 유지시켜 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 내 옆에 남은 친구, 지인들은 나의 아픔과 절망을 가까이서 지켜보고 내 눈물에 같이 가슴 아파한 이웃들이 전부이다. 그들이 있었기에 외롭지 않았고 힘든 상황 속에서도 위로를 받고 힘을 낼 수 있었으니 생각하면 할수록 고마운 벗들이다.

 명희 씨가 뭘 주섬주섬 챙기더니 내게 봉투를 내민다. 그녀의 지인이 텃밭에서 수확한 농작물을 내게도 같이 먹자 나눠 담았다. 따뜻한 정이 느껴져 마음이 훈훈해졌다.

 

 요즘 나를 힘들게 하는 마음은 외롭다는 마음과 나를 내버려 두세요 하는- 혼자 있고 싶다는 두 마음이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명희 씨의 카페가 편하다. 혼자 있지 않고 사람의 온기를 느낄 수 있으면서도 나의 영역을 침해당하지 않고 적절한 간격을 유지할 수 있는 공간이 주는 편안함과 안락함.  그 안은 내가 누구인지, 어디로 가야 할지... 하는 번민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는 나만의 동굴이다.  곳은 어느덧 나의 쉼터가 되었다.



 나는 사람을 대할 때 꼭 지키는 하나의 원칙이 있다.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 영역이 있다.- 가족, 친구에게 가장 이상적인 간격이 있다고 한다. 존중받고 싶은 최소한의 범위라고 생각한다. 가끔 사람들은 친숙하다는 이유로 상대의 영역을 침범하는 충고나 조언을 종종 한다. 가까운 사람이 곤경이나 어려움에 처했을 때 문제를 빨리 해결하게 도와주는 의미로 던지는 말이겠지만 한 번쯤은 상대의 마음을 역지사지로  헤아려 보고 신중하게 하는 말인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내가 정한 원칙은 내가 듣기 거북한 질문은 남에게도  묻지 않는 것과-그 사람이 먼저 이야기를 꺼내기 전까지-상대가 의견을 구할 때까지 섣불리 충고나 조언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쉽지 않은 삶을 살아왔다. 내가 힘들고 지칠 때마다 나를 다정하게 위로해 준 손길로 다시 일어날 수 있었음에도 어쩌다 가끔은 너무 가까이 나를 통제하려는 상대방의 성급함에 상처를 받아 마음이 다치는 때도 있었음을 고백한다.

 지금 내가 외롭지만 동굴 속에서 나오지 않고 있는 것도 어쩌면 다시 바닥으로 내려가는 나를 향해 수많은 해결책들을 제시할- 나를 사랑하는 그들의 말들이 두렵기 때문은 아닐까. 내 안의 겁 많고 소심한 소녀가 울고 있다. 지금은 그냥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 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잠시의 위로를 벗어나 현실이 존재하는 집으로 다시 돌아왔다. 나를 기다리는 것은 적막함이다.  정적이 흐르고 복잡하게 얽힌 생각의 실타래가 나를 죄여 온다. 나를 이해할 누군가를 떠올리며 휴대폰의 연락처를 들여다보다 도로 내려놓는다. 나에 대한 친구의 걱정조차도 쓰리고 아플 만큼  마음이 무너진 나를 발견한다.



 조용한 방에서 좋은 타인이 되는 법에 대해 골똘히 생각했다. 사람은 이 세상을 혼자 살 수 없다. 하나의 개체로 끊임없이 존재하려고 하면서도  타인과 연결되어 있어야 비로소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 자아의 독립성은 보장하면서 상대의 온기는 느낄 수 있는 심리적 거리가- 나와 연결된 관계들을 오래 건강하게 지속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닐까.

 태어나서 평생을 우리는 싫든 좋든 관계 속에 얽혀 살아가야만 한다. 아름다운 인연을 오랫동안 가꾸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나도, 타인도 일정한 거리두기가 필요하다. 내가 상대보다 우월하다고 느꼈을 때 충고는 쏟아져 나온다. 그것은 진심 어린 이해와 걱정으로 상대에게 전달되지 않는다. 단지 상대의 내면의 소리를 다시는 듣지 못할 뿐이다.

 건강하고 좋은 관계를 원한다면 내가 타인에게 침범당하고 싶지 않은 공간이 있듯 타인의 공간도 침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나는 주위를 많이 걱정시키고 살아왔다. 내가 똑 부러지고 당당하게 세상을 헤쳐나가지 못한 이유도 크다. 하지만 너와 나의 경계 없는 문화 때문에 사실 상처도 적지 않게 받았다. 위로와 도움도 가까운 사람한테 받지만 반대로 상처도 가까운 친구들한테서 받을 수 있다. 나의 상처를 돌아보며 나 역시 혹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었을까 되돌아본다. 나는 지금  내게 남은 친구들이 좋다. 오래오래 관계를 지속하고 싶다. 나의 잘못은 상대가 나의 영역의 경계를 침범했을 때 내가 표현 못한 내 잘못도 크다. 내성적인 성격 탓에 안으로만 상처를 삭히고 멀어져 갔다. 나의 연약함이 관계를 건강하게 끌고 가지 못했었던 것도 사실이다. 불편한 감정을 직접 부딪히지 않으려 피한 채 스스로를 고립시켰다. 이 또한 어리석은 오만함이 아니었을까...

 사람의 숲에서 살고 싶다. 숲을 이루는 하나의 나무가 되어 바람의 숨결을 더불어 호흡하고 싶다. 나무와 나무 사이사이 햇살이 충분히 비칠 수  있는 그런 아름다운 숲에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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