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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쁜손 May 13. 2021

싱글족의 음식 이야기.

 혼자 지내면서 가장 곤혹스러운 일은 한 끼 한 끼를 해결하는 것이다. 혼자 입을 챙기려고 부산하게 음식 준비를 하기도 그렇고 매번 대강 때우자니 몸이 축이 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니... 먹고사는 문제가 가장 골칫거리이다. 김, 계란 프라이에 김치 3종 기본 세트도 질릴만하면 가끔 된장찌개나 청국장 김치찌개로 변화를 주는데 오늘은 그것도 내키지 않아 주방 곳곳과 냉장고를 뒤져보는데 마땅한 재료가 없다. 인스턴트나 통조림류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 탓에 비상용 라면이나 그 흔한 참치캔, 햄조차 없다. 난감해서 장을 보러 나가려다 마지막으로 냉동실을 뒤져보니    반갑게도 손질해서 얼린 오징어 한 마리가 있다.

 아싸, 오늘 점심 한 끼는 오징어 볶음으로 해결하면 되겠다. 야채칸을 부리나케 열어본다. 애호박, 양파, 당근이 있다. 이 정도면 볶음에 넣을 재료로 훌륭하다. 이제 맛있게 요리할 일만 남았다. 참 이상하게도 조카들이나 동생에게 음식을 해줄 때는  내가 느끼기에도 맛이 있는데, 똑같은 재료로 혼자 먹으려고 같은 음식을 하면 영 제 맛이 안 난다. 같이 먹어주는 사람이 없어서 그럴까. 그러고 보면 음식의 맛의 반은 분위기가 좌우하는 게 맞는 것 같다. 어우렁더우렁 웃음꽃과 대화가 맛의 조미료 역할을 감당해야 맛이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다.



 양파, 당근, 애호박, 풋고추, 오징어를 잘 씻어 보기 좋고 먹기도 좋게 가지런히 잘 썰어둔다. 양념장은 오징어 한 마리 기준 미림 2스푼, 간장 두 스푼 반  다진 마늘  스푼, 고춧가루 반 스푼, 고추장 한 스푼, 꿀 한 스푼 반, 참기름 반 스푼. 달궈진 팬에 식용유를 두르고 야채를 먼저 살짝 볶다 오징어랑 양념장을 중간에 넣고 센 불로 오징어가 질겨지기 전에 빠르게 볶은 뒤 불을 끈다.

 접시에 미리 담아 둔 밥 위에 오징어 볶음을 보기 좋게 얹는다. 허기진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고 입에서 군침이 돈다. 한 숟갈 떠서 시식을 한다. 내가 했지만 깔끔하니 담백하고 칼칼하게 맛있다.  뿌듯하다. 오늘 한 끼는 성공적으로 해결되었다. 오늘은 아점으로 제법 거하고 근사하게 한 끼를 해결했으니 밀린 숙제를 한 듯 속이 개운하다. 

 날씨가 화창하다. 맑고 푸른 하늘에 선명한 흰 구름이 떠다니고 밝게 내리쬐는 햇살이 온몸을 사랑스럽게 감싼다. 가끔씩 부는 미풍이 뺨을 간지럽힌다. 계절의 여왕다운 자태가 느껴지는 여유롭고 아름다운 봄날이다.


  텅 빈 냉장고를 보면 채워야 할 기본 식재료를 메모하고 머릿속으로 이번 주 청승맞지 않고 비싸지도 않으면서-맛과 영양 그리고 무엇보다 - 번거롭지 않게 뚝딱 할 수 있는 메뉴를 떠올려 본다. 살기 위해 먹는 건지 먹기 위해 사는 건지 잠시 헷갈리는 순간이다.



 손맛, 솜씨가 없는 편은 아닌데 이혼하고 엄마랑 아들과 살다가 아들은 독립하고 그나마 같이 지내던 엄마마저 건강이 악화되어 요양원으로 떠나신 뒤-나만 달랑 혼자 남게 되면서 잘 먹는 것은 고사하고 끼니를 건너뛸 때도 점점 빈번해지니-만성 피로와 무기력함을 달고 살게 되었다.

 몸이 쳐지니 한동안 잠잠했던 우울감도 요즘은 부쩍 수면 위로 불쑥불쑥 떠오르는 빈도도 높아지고 있다. 10년을 고생한 우울증의 실체를- 바닥 없는 심연임을-알기에 다시 재발될까 봐 솔직히 두렵다.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아픔이기에 나를 위한 처방이 필요했다.

 제일 먼저 실천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해 보았다. 간단하면서도 꾸준하게 할 수 있는 식습관. 건강한 음식이 내 몸을 만든다는 단순한 원리를 믿고-하루에 한 끼를 먹더라도 좀 제대로 된 음식을 챙겨 먹기로-따라 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아들 녀석한테 웬일로 전화가 다 왔다. 이상하게도 우리 세대나 아들 세대나 밥 걱정하고 살았던 적은 없는데도 여전히 이전 세대들처럼 밥은 챙겨 먹었니로 이야기의 서두를 연다. 주부 연륜이 꽤 되는 나도 끼니를 부실하게 때울 때가 많은데 싱글인 젊은 남자애가 오죽하랴 생각하니 걱정부터 앞선다.



 "엄마, 간단히 해 먹을 수 있는 거 뭐 없을까?" 하고  아들이 묻는다. 거의 대부분을 외식으로 해결하다 보니 식비도 만만치 않고 무엇보다 사 먹는 음식 특유의 조미료 맛에 좀 질렸는지 아들이 내게 도움을 청한다. 잠시 쉽고 간편한 조리과정을 거치고 맛도 있을 일품요리를 생각해 본다.

 "두부 김치 어때? 신김치, 고기나 참치, 두부면 되는데... 두부 없으면 구운 김에 싸서 먹어도 되고. 고기가 집에 없으면 신김치를 마늘, 양파, 설탕, 고춧가루 조금  넣고 먼저 살짝 볶다가 참치 넣고 참기름이나 후추 넣고 볶아 두부에 얹어 먹거나 날김 구워 그 위에 밥 이랑 볶은 김치 얹어 싸 먹으면 돼. 그렇게 해서 먹으면 두부를 많이 먹게 되니 건강에 좋지~~ 그리고 브런치로 좋을 토스트가 있는데, 프렌치토스트 알지? 엄마가 잘해준 거 있잖아. 간단해. 우유에 달걀, 설탕과 소금 조금 넣고 잘 저은 뒤 빵을 양쪽에 묻혀 버터 두른 프라이팬에 잘 구워서 과일이랑 우유랑 먹으면 되지~~ 빵은 이왕 먹는 거 통밀 빵으로 먹어~ 흰 빵 보다 식감은 뻣뻣하지만 건강에는 좋아, 아들~ 아... 그리고 뭐가 있을까? 볶은밥은 할 줄 알지? 그리고 고기 구워 먹을 때 쌈도 많이 섭취하고... " 하고 한참 떠드니 아들이 가만 듣고 있다 껄껄 웃는다. 나이가 서른이 된 아들이지만 아직 내 눈에 코흘리개 꼬마 같아 걱정이 늘 앞서니 시시콜콜 일러줄  말이 많다 보니 늘 말이 많아진다. 부모 마음은 다 똑같은 것이겠지. 엄마도 내게 같은 마음이었을 거라 이제야 이해가 된다...


 텅 빈 냉장고에 식재료를 채워 넣는다. 저녁 메뉴로는 뚝딱뚝딱 소면을 삶아 김치랑 애호박 볶음, 달걀과 김가루를 고명으로 얹은 비빔국수를 해서 달게 먹었다. 내가 해주던 국수를 좋아하던 아들과 엄마 생각에 잠시 가슴이 먹먹했다. 외로움이 고개를 치켜든다.



 늘 같은 듯 다른 일상의 하루가 저물어간다. 저녁 설거지를 마치고 책상 앞에 앉아 자신을 사랑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본다. 혼자의 삶에 꽤 익숙해졌다고 생각하는 이혼 8년 차의 싱글이지만 돌아보니 나를 위해 몸과 마음의 건강을 챙기는 일을 소홀히 해왔다. 집에 있는 작은  식물조차 매일 들여다보고 안부를 묻고 챙기면서도 정작 나 스스로에게는 인색하고, 무심하게 굴었다. 어쩌면 잘 먹고 잘 사는 방법.  아니,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진짜 사랑하는 방법은 나 자신부터 아끼고 사랑해 주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달도 별조차 잠이 든 밤. 아프지 말고 행복하자던 자이언티의 양화대교 노래 가사를 중얼거린다. 멀리 있는 아들도, 엄마도 그리고 나도 우리 모두 아프지 말고 행복하자. 행복하자. 그래 그래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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