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예쁜손 May 08. 2021

섬의 눈물

 분주한 낮의 하루가 어둠  뒤편으로 사라지면 우리는 밤의 적막을 맞이한다. 밤은 내게 그리고 당신에게 아늑함과 평온함을 주면서도 피할 수 없는 고독과 외로움을 짙게 드리운다. 타인과 얽혀 있던 관계에서 개별적인 존재로 되돌아와 스스로를 오롯이 마주 대한다. 과장도 소란도 없는 고요한 침묵만이 나를 에워싼다.

 요즘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외로움이란 감정이다. 일상을 마무리하는 저녁 무렵이 되면 어김없이 불편하고 질긴 녀석이 용수철처럼 수면으로 튀어 오른다. 희한하게도 녀석의 등장을 꾹꾹 누를수록 외로움은 더욱 위협적인 몸짓으로   내 앞에 나타나 나를 무너뜨리곤 한다. 빈번하게 찾아오는 감정이지만 마주 대할 때마다 여전히 당황스럽다.


 이른 아침부터 봄비답지 않게 세차게 비가 내린다. 계절이, 봄이 깊어간다. 선 잠에 피곤하고 나른한 몸을 깨워 하루를 연다. 간단히 나를 위한 아침상을 차려 식사를 한다. 화분에 물을 주고 잠자리를  정돈하고 청소를 하고 집을 나선다. 우산 위로 타닥타닥 떨어지는 빗소리가, 어느새 짙은 초록으로 물들어 가는 대지가 아름답다. 막 지기 시작한 영산홍 꽃잎들을 지르밟으며 길을 걷는다. 손을 뻗는다. 손바닥으로 떨어지는 빗방울이 꿈길이 아님을-살아있음을 느끼게 해 준다. 



 하루 중 제일 행복한 시간의 문-명희 씨 카페로 풍경소리를 울리며 들어간다. 그녀가 환하게 웃으며 나를 반겨준다. 매일 나는 그곳을 통해  여행을 떠난다. 설레는 마음으로 마법의 공간으로 들어서 나의 자리에 앉는다. 눈을 감고 낯선 미지의 열린 세계로 발을 내딛는다.

 진한 커피 향과 명희 씨가 나를 부르는 소리에 잠시 여행지에서 현실로 돌아왔다. 그녀가 커피와 케이크를 테이블에 내려놓는다. 무엇이든 덤으로 챙겨주려는 그녀의 마음이 고마워 빙그레 웃는다. 두 여인이 비 오는 창밖의 정취를 말없이 바라본다. 말하지 않아도 아름다운 풍경을 보는 그 눈빛이 동경과 경이로움으로 가득 차 있다.  밤이 나를 되돌아보는 고독한 시간이라면 지금 이 시간은 혼자만의 즐거움을 만끽하는 행복한 시간이다. 내 안에 두 마음이 낮과 밤을 통해 공존하고 있는 모순을 발견한다. 

 바람에 나뭇잎들이 일렁인다. 바람의 손길에 몸을 맡긴 나뭇잎들이 춤을 춘다. 행복한 듯 아름다운 유희를 즐긴다.  다정한 모습에 내 마음이 따뜻해진다.



  작은 카페 안의 테이블이 사람들로 가득 찼다. 떠들썩한 소란함과 유쾌한 웃음을 터트리는 타인들   안에 내가 있다. 문득 나도, 저들도 바다 위 떠있는 섬들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영원히 개별적인 존재로 살면서도 끊임없이 관계 속에 머물 수밖에 없는- 우리의 운명을 생각하며 씁쓸하게 웃었다. 지금 나는 사람들의 숲에 있으면서도 사람들이 그립다...

 덥수룩해진 머리카락을 자른다. 거울 속의 내 모습이 낯설고 생경하다. 바람 부는 거리를 걷는다. 어느새 비 내리던 어둑한 하늘이 물러나고 밝은 햇살이 쏟아진다. 잠시 눅눅하게 가라앉은 마음이 다시 희망으로 부풀어 오른다. 집으로 향하던 발걸음을 돌린다.


 "언니, 배고프지? 머리 다듬었구나. 보기 좋네~" 하고 동생이 그녀의 집으로 들어서는 나를 반긴다. 동생의 앞치마를 두른 모습이 낯설어 웃음이 나왔지만,  오랜만에 언니인 내게 맛있는 닭갈비를 만들어 주겠다고 주방을 오락가락하는 그녀가 예쁘고 사랑스러워 보였다.

 "이모, 안녕하세요?" 작은 조카가 내게 다가와 내 품에 안긴다. 얼마 전 걸린 감기가 기관지염으로 악화되어 연신 기침을 해대는 조카가 안쓰러워 꼭 안아주고 등을 토닥인다. 체격이 왜소하고 병치레가 잦은 조카는 동생의 아픈 손가락이다. 지금도 아들을 바라보는 동생의 눈에 근심과 염려가 가득 묻어난다. 덜렁이면서도 자존심과 고집이 센 중2짜리 사내 녀석이랑 신경전을 부리고 티격태격하던 동생도 요즘은 아들에 대한 안쓰러움으로 풀이 많이 죽었다. 중간고사 직후라 후유증이 심할 분위기인데도 다행히  아이들을 성적에 관계없이 한결 같이 대해주는 동생의 어른스러움이 대견하고 고맙다.

 고기를 굽는 그녀 옆에서 쌈채소를 씻고 양념의 간을 보고 상을 차린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한상에 둘러 음식을 나누는 일이 감사하고 행복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돈다.


 

  다시 밤이 내리고 나를 만나는 시간의 바다에 서있다. 밀려드는 침묵이, 고요함이 나를 삼킬 듯 달려든다. 그 숨이 막힐듯한 고요함과 적막함이 싫어 온 집안에 불을 밝히고 음악을 튼다. 얼마의 시간의 흘렀을까. 오늘도 깊은 상념 속에 서성이는 나를 발견하고 한숨짓는다. 슬픔이 목까지 차오르는 밤- 되풀이되는 고독함과 외로움의 굴레를 진저리 치면서도  어느새 그것들에 익숙해 가는 나를 발견하며 참았던 눈물을 쏟아낸다.

 누군가 지금 옆에 있는다 해도 영원히 함께 할 수 없고, 타인은 타인일 뿐 서로의 근원적이고 본능적인 외로움은 오로지 나와 그들의 몫이라는 것-그래서 우리는 함께할 때도 철저히 외로운 존재일 수밖에 없다. 밤의 깊은 정적이 다시 나를 감싼다.

 낮의 피로가 몰려오지만 잠이 쉽게 들지 않는다. 잠든 먼산을 바라본다. 꽃도 새도 잠이 들었다. 별들만 이 밤을 지킨다. 서성이던 발걸음을 멈추고 읽다만 책을 펼쳐 든다. 오늘 이 밤 내게 친구가 되어 위로를 해줄 책은 전승환의 '내가 원하는 것을 아무도 모를 때'이다. 작가는  책에서 여러 책에서 발췌한 주옥같은 문장을 소개하고 있다. 따뜻하고 공감이 가는 문장들이 나만이 고독하고 쓸쓸하지 않다고 속삭인다. 고개를 끄덕인다.



  아침이 되면 나는 일상의 소란스러움으로 돌아가 무리 속에 존재할 것이다. 그리고 밤이 되면 다시 혼자만의 세계로 회귀해 질긴 고독과의 싸움을 할 것이다. 어떤 때는 그 싸움에서 선전하며 승리할 수도 또 어느 때는 무참하게 패배할 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살아가는 동안 나를 나답게 하고 성숙시키는 과정이었음도 부인할 수 없다.


 나는 이 밤이, 내일이 두렵다. 그러나 내일이 설렌다. 내가 흘리는 눈물이 언젠가는 나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 것이라고 믿고 싶다. 살아  있는 생명의 몸짓은 어느 것 하나 의미 없는 것이 없다고 나를 다독이며 또 하루를 보낸다. 밤도 나도 함께 깊어간다...

 

 

 

 

 

 

 

작가의 이전글 월남쌈 한상 대령이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