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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쁜손 May 01. 2021

월남쌈 한상 대령이요~~

이모의 월남쌈 레시피

 조카들이 요즘 중간고사 기간이라 동생이 덩달아 바쁘다. 막 고등학생이 된 큰아이야 잘 보던 못 보던 스스로 공부하는 아이라 상관없지만 사내아이인 작은 녀석은 워낙 덜렁이인 데다 공부에는 영 관심이 없어 시험 기간이 코 앞으로 다가왔는데도 여전히 만화책과 휴대폰을 달고 사니,  동생이 전전긍긍 애를 테우다 드디어 직접 진두지휘에 나서게 되었다.

 다행히 동생이 휴직기간이라 시간적 여유가 있어서 작은 조카의 가정교사를 자처하고 조카의 부족한 시험 준비를 아이와 함께 하기를 독하게 마음먹었다. 그러나 우리 중학교 2학년짜리 조카가 호락호락하지 않은 성격이라 엄마의 계획대로 움직일 리 없으니 옆에서 지켜보는 나는 모자간에 싸움이 날까 걱정도 되면서 한편으로는 서로 아웅다웅 다투는 것이 상상되어 웃음이 났다.

 전혀 공부, 시험에 관심 없는 아이와 같이 시험 준비를 하려 하니-아이를 우선 책상에 앉히려면- 적절한 당근과 채찍을 엄마가 효과적으로 사용해야 되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 그 점이 동생의 머리를 지끈지끈 아프게 만든 과제였다.

 조카 녀석은 당돌하고 어이없게도 제 시험 준비를 하는데도-공부시간을 정하는데 엄마와 조건을 내세워 -거래를 하려 드니 동생이 욱하는 마음을 다스리느라 이만저만 고생이 많은 게 아니다.



 "언니, 시험 전까지 진도 못 나갈 것 같아. 뒷부분 하면 앞부분을 까먹네. 시험 범위까지 한 번도 못 훑을 것 같아. 난감하네... "하고 동생이 내게 하소연한다. 나의 예전 학부모 시절이 떠올라 지금의 조카와 동생의 상황이 마냥 우습기만 한데, 동생은 심각하기 이를 때 없다. "언니, 많이 바라지도 않아 중간만 돼도 좋겠다. 휴... 범위는 왜 이렇게 많은지... 애가 협조를 안 하네. " 한숨 섞인 동생의 투정이 여간 심각한 게 아니다. 그렇다고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마음을 비우고 기다려주라는 말밖에는 해줄 말이 없으니 나 또한 마음이 덩달아 불편해진다.

 큰 조카가 현관으로 들어선다. 동생보다 며칠 먼저 시험이 시작되었고 오늘이 중간고사 첫날이다. 포커페이스인 큰 조카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내게 인사한다. 동생이랑 나는 서로 눈만 꿈벅거리며 시험에 대한 언급 없이 아이의 눈치를 살피는데 별 말이 없다. 조카가 자기 방으로 들어가 한참을 친구랑 통화하다 방에서 나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시험을 폭망(폭삭 망했다는 뜻)했다고 시험 준비를 소홀히 했음을 고백한다. 동생의 표정이 잠시 살짝 어두워지다 다행히 이내 자기 페이스를 찾는다. 잔소리하는 대신 아이를 다독인다.

 "수고했어. 담에 잘하면 되지. 저녁에 뭐 맛있는 거 해줄까? 이모가 뭐해줄까? " 하고 내가 물으니 조카가 반색하며 "월남쌈!" 하고 외친다. 조카의 어깨를 두드리며 "오케이! " 하고 말하며 웃는다.



 월남쌈이야 입맛대로, 취향대로 속재료를 골라 싸 먹는 것이니 만들기는 조금 번거롭기는 하지만 먹는 재미가 있는 음식이다. 그전에도 조카들에게 가끔 해주었는데, 오늘 아이들과 동생이 먹고 싶다니 신바람이 나서 몸을 날렵하게 움직인다. 냉장고 안의 야채는 충분한 것 같고 냉동실에 칵테일 새우가 보인다. 해동할 만큼만 꺼내 그릇에 담고 냉장실에 있는 색색의 파프리카와 당근, 오이를 그리고 불고기용으로 사뒀던 고기를 꺼낸다. 그러고 보니 냉장고 안쪽의 쌈채소 중 깻잎이 있다. 깻잎은 향이 상큼해 속재료로 추가하면 깔끔한 맛을 낼 수 있다. 이렇게 재료들을 꺼내놓고 보니 제법 풍성하다.

 아무렇지도 않게 시험 폭망 했다는 조카가 사실 속으로는 얼마나 속상할지... 마음이 짠하다. 이모의 응원과 사랑의 담긴 밥상으로 다시 힘을 내서 남은 기간 선전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힘든지도 모르고 재료를 준비한다. 재료는 동생과 나 그리고 조카들. 4인 기준으로 당근 중간 크기 1개, 오이 2개, 파프리카 노랑, 주황, 빨강, 초록 큰 것으로 하나씩, 깻잎 10장, 칵테일 새우 300g, 쇠고기 500g이다.(조카들이 고기를 좋아해서 고기를 넉넉히 준비했다.)

 

 먼저 소고기를 불고기 양념으로 미리 재워둔다. 칵테일 새우는 잘 해동하여 물기를 제거하고 버터를 두른 프라이팬에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해서 볶아둔다. 야채는 종류별로 채를 썰어 접시에 골고루 담는다. 야채와 볶은 새우가 완성되면 미리 재워 둔 불고기를 볶아서 잘 플레이팅 한다.

 식탁에 완성된 속재료를 세팅하고 물을 끓이고 라이스페이퍼를 꺼내 놓은 뒤 땅콩소스 또는 칠리소스를 준비해 개별 소스 그릇에 담는다.

 "얘들아~  저녁 준비 다됐다. 빨리들 와라! "

 "와!" 하고 애들과 동생이 탄성이 이어진다. 아이들의 즐거운 표정을 보니 나도 뿌듯하고 행복해진다.



 뜨거운 물에 라이스페이퍼를 살살 돌려 적신 뒤 개별 접시에 펼치고 준비된 야채와 고기, 새우를 입맛대로 넣어 잘 싼 뒤 소스에 찍어 먹는다. 내가 워낙 칼질을 못해 시간도 오래 걸리는 음식이지만 아이들이 맛있게 먹어주니 한상 차린 보람이 있다.

 오늘의 식탁 주제는 아이들의 1순위 불만인 시험에 관한 내용이 주류를 이룬다. 평소 사이가 안 좋은 큰 놈과 둘째도 이번엔  입을 맞춘 듯 이구동성으로 성적과 입시위주의 대한민국의 교육 현실에 불만을 터트린다. 나와 동생은 어이없이 웃다가 왜 공부가 필요한지에 대해  자의 소신대로 아이들을 설득하려 애를 쓰는데, 영 말솜씨가- 애들을 납득시키고 이해시키는데- 달린다. ㅎㅎ 

 수북이 쌓였던 재료들이 바닥을 드러낼 때까지 동생과 조카들은 공부의 필요에 대해 그리고 당장 닥친 내일의  시험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더니 결국은 동생이 "아무튼 낼 시험 준비나 열심히들 하셔~~~"의 결론에 투덜투덜 각자의 방으로 사라졌다. 동생과 조카들은 나름 참 심각한데 이상하게도 나는 자꾸만 웃음이 나는 것은 왜일까.

 '행복의 모습은 대체로 비슷하지만 불행의 모습은 제각각이다.'라는 책의 내용이 떠올랐다...



 아이의 학창 시절, 내가 학부모였던 시절이 떠오른다. 지금 돌이켜 보면 시험성적이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는데, 동생이 자식들한테 하듯 기다려주고 참아 주지 못했다. 아이한테 아버지의 부재를 메꿔 주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 성적의 강요였다. 부모의 불화로 상처 받았을 아들의 마음을 먼저 토닥여 주었어야 했는데... 이제야 아이의 아픈 마음이 보인다. 철이 늦게 든 엄마 때문에 고생한 아들이 보고 싶어 눈물이 핑 돈다.

 만약 신이 내게 시간을 거슬러 갈 수 있는 기회를 한 번 허락하신다면 아이의 어릴 적으로 돌아가 내가 주고 싶은 사랑이 아닌 아이가 받고 싶은 사랑을 마음껏 주고 싶다.


 "엄마  요즘은 매일 톡 안 하네요. 무슨 일 있어요?" 하고 아들이 껄껄 웃으며 말한다. "응 괜히 바쁜데 방해할까 봐. 나도 이제는 비싸게 굴 거다. 알았냐? 인마~~" 하고 내가 깔깔거린다.

 "사랑해, 아들~"

 "엄마 나도 사랑해요. 이번에 집에 가면 김치볶음밥 해주세요.  우리 엄마가 김치볶음밥 맛있게 잘하는데... " 하고 아들이 너스레를 떤다.

 "그래 당연히 해 줘야지. 빨리 와라. 보고 싶다. " 아들이 알겠다고 씩씩하게 대답한다.


 잠 못 드는 깊은 밤, 집안을 서성이며 아들을 위해 기도한다. 내 태안에서 독립한 아들의 안전과 건강을... 아들의 험한 비바람도 우직하게 서서 버텨 낼 수 있기를... 그리고 아들이 작은 것에도 감사할 줄 아는 사람-진정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기를...

 빗방울이 타닥타닥 창문을 두드린다. 리드미컬한 그 소리가 자장가 같다. 수고한 나의 하루를 감싸며 어루만져 준다. 눈을 감고 내일 또 어떤 일상의  행복이 나를 찾아올지 부푼 마음으로 기대한다. 하나, 둘, 셋... 어느새 스르르 꿈속으로 빨려 든다. 길고도 짧은 아름다운 밤이 무르익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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