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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쁜손 Aug 13. 2021

중년에 다시 읽는 '데미안.'

고전의 묘미.

  조카의 방 책장에서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발견했다. 학창 시절에 책에 관심을 가진 친구들이라면 필독서로 꼽히는 책. 내용은 기억이 안 나지만 지루하고 재미없었던 기억만 남아 있다. 아마도 읽다가 책을 덮은 기억이 난다. 호기심에 책을 책장에서 빼서 조카한테 재미있었냐 물으니 고등학교 1학년인 조카는 잘 모르겠다고 고개를 가로젓는다. 다시 데미안에 도전해서 읽어 볼 요량으로 조카한테 책을 빌려 가방에 넣었다.


  조카들 주려고 간식으로 팥빙수와 금방 쪄서 따끈따끈한 옥수수를 사 왔다.  팥빙수는 아이들이 좋아라 하는데 옥수수에 대한 반응은 영 신통치 않다. 애들 모두 시큰둥해 동생과 나만 신나게 먹었다. 여름철 간식으로 옥수수만 한 게 없는데, 요즘 아이들은 먹거리가 넘쳐 나는 세상에서 살아서 그런지 옥수수, 감자, 고구마는 당기지 않나 보다. 이상하다. 다양한 음식, 간식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살고 있지만 나이가 먹을수록 예전 어릴 적 먹었던 조금은 심심하고 담백하고 구수한 맛들이 더 당긴다. 먹거리에서조차 추억을 더듬어 내는 것을 보면 언제 이렇게 나이를 먹었는지 헛헛한 웃음만 나온다.


 

 아이들이 방학 동안 떨어진 교과 과목을 보충하면 엄마 마음이 편하고 좋으련만 조카들은 신나게 늦잠자기. 게임하기. 영화 보기에 빠져 정신없다. 나야 무조건 조카들 편이니 그것조차 귀엽고 예쁘지만 동생은 애가 타서 큰 소리를 내기 일수인데, 애들은 엄마가 소리 지를 때만 하는 시늉을 하고 여전히 빈둥대는 중2, 고1의 학생들이다.


 저녁으로 큰 조카가 좋아하는 닭가슴살 부추 덮밥을 준비했다. 데쳐 놓은 닭가슴살을 먹기 좋게 네모나게 썰어 버섯, 갖은 야채랑 볶다가 간장, 굴소스, 설탕, 후추, 참기름 양념을 넣고 잘 저어주다 풋고추와 마지막으로 부추를 넣고 센 불에  살짝 볶아 주면 끝이다. 먹기 좋게 밥 위에 담아서 내놓으면 아이들이 쓱쓱 잘 비벼먹는다.  조카들이 남김없이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우니 음식을 한 보람이 있어 기분이 좋다.

 

 집으로 돌아기는 길에 갑자기 후드득 소나기가 쏟아져 비를 맞으며 뛰었다. 갑자기 오래전 손예진과 조승우가 주연으로 나오는 클래식이라는 영화가 떠오른다. 새드엔딩이었던-아픈 사랑의 영화. 줄거리는 가물가물하지만 그때의 가슴 저림을 내 가슴이 기억해 내고 반응한다. 기분 좋은 엔딩이었다면 이렇게 여운이 길게 남지 않았을 것이다. 슬픔의 감정은 다른 어떤 감정보다 더 오래 우리 몸에 각인된다.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상쾌한 기분으로 책상 앞에 앉아 가방에 넣어 둔 데미안을 꺼내고 펼쳐 든다. 10대 중반 소녀일 때 읽은 소설을 50대 중반의 중년이 되어서 다시 읽게 되니 이 책이 나를 어떤 세상으로 이끌어 줄까 하는 기대감에 기분 좋은 설렘이 느껴진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책장을 펼친다.

 몇십 년이 흘렀는데 싱클레어란 주인공 이름이 등장하니 오래전 헤어졌던 어릴 적 친구를 다시 만난 듯 반갑고 어슴프레 책의 내용이 떠오른다.


 데미안은 헤르만 헤세의 자전적 소설이자 진정한 나를 찾는-유년에서 청년으로-과정이 담긴 성장소설이다. 책은 주인공 싱클레어가 성장하며 겪게 되는 자아실현의 과정을 보여준다. 싱클레어는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 속에서 수많은 방황과 갈등을 겪으며 성장해 나간다. 그것은 곧 헤세 자신의 모습이자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는 데미안이라는 소년을 만나면서 많은 변화를 겪는다. 비판적 사고, 즉 세상은 '선과 악'이라는 단순한 이분법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는 데미안을 통해 인식하게 된다. 이것은 어느 하나도 외면할 수 없는 주인공이 받아들이고 헤쳐 나가야 할 세계였던 것이다.

 

 읽던 책을 잠시 덮고 눈을 감았다. 소설이기보다는 철학책에 가까운 묵직한 무게감이 나로 하여금 책을 읽는 동안 나를 돌아보게 한다. 성장은 소년과 청년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고뇌하고 절망하고 그리고 다시 부딪치며 성장해 가는 싱클레어의 모습이 친근하게 여겨진다. 나 역시 그를 닮은 것 같아 안도의 한숨이 쉬어진다.


 

 삶을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복잡한 것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진정한 나를 찾는 여행이 아닐까. 인생이란 내 안의 목소리에 온전히 귀를 기울이며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 위한, 또 내가 누구인지 알기 위한 치열하고 외로운 투쟁인 것이다. 자기 자신에게 이르는 길을 찾아 험난한 길을 떠났던 싱클레어는 결국 진정한 자아를 찾게 된다. 그것은 기존의 안정되고 평온한 세계를 벗어나 그 후 차가운 현실의 벽을 부딪치며 현실이란 고통을 겪어야만 한다. 그 고통을 경험한 사람만이 껍데기를 뚫고 나올 수 있는 힘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보다 큰 세계로의 확장의 추구는  인간이 다른 동물과 구분되는 큰 특징일 것이다.

 

 두려움, 방황, 고통은 물론 우리에게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을 인생이라는 긴 여정의 한 과정으로 받아들이며 극복한 사람은 결국 성숙해지고 성장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듯 우리는 인생에서 좌절을 겪기도 하고 성취감을 느끼기도 하면서 그 과정에서 내 안에 있는 진정한 나를 발견하고 그것이 원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모든 사람들의 인생의 목표이자 진정한 행복에 이르는 길일 것이다. 헤세는 소중한 인생의 한 지점에서 여전히 방황하고 성장하려고 외롭게 스스로와 싸우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격려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기분 좋은 피로함이 몰려온다. 소녀 때 채 읽지 못한 책을 어느덧 흰머리가 하나, 둘 머리에 내려앉은 중년의 어느 날에 완독 한 기분은-흡사 오래된 밀린 숙제를 마무리한 것처럼 개운하고,  오래된 친구를 만난 듯 정겹다. 고전이 주는 묵직한 삶의 지혜가 반가워 다시 예전에 재미있게 읽었던 목록을 뽑아 도전해 보고 싶어 졌다.

 

 수줍고 천방지축인 소녀였던 내가 인생을 돌고 돌아 어느새 인생의 후반기에 접어들었다. 여전히 지금도 의문투성이인 삶이지만 헤세는 내게 말을 한다. 진정한 삶이란 끊임없는 자기 세계를 찾는 것이라고, 누구나 겪는 과정이라고, 내 마음속에 귀를 기울이라고 내 어깨를 다독이며 위로해준다. "새는 투쟁하여 알에서 나온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나는 지금 다시 하나의 세계를 열려고 한다. 그 세계는 내가 진정 원하는 삶이다. 이제야 내가 스스로 세계로 들어가는 문을 열어야 하는 것임을 깨달으며 '데미안' 이 책을 인생의 한 지점에서 다른 곳으로 도약하기 위해 애쓰는 모든 이들에게 바치고 싶다. 당신에게도 삶의 중요한 나침반이 되기를 소원하며...




            (사진출처-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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