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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쁜손 Aug 16. 2021

뜻밖의 선물이 주는 황홀한 행복감.

사람의 향기

 일주일에 한, 두 번은 우리 동네 건강 빵집- 명일당에서 빵을 산다. 오픈한 지 채 일 년이 안된 초미니 빵집이지만 건강한 맛이 매력적이어서 자주 찾곤 한다. 정제된 백밀 대신 통밀을 사용한 빵도 구수하고 사장님의 서글서글한 웃음과 말투도 정겹다. 동네를 산책하던 어느 봄날. 우연하게 눈에 들어오는-아담하고 깔끔한-빵집 입간판에 걷던 걸음을 멈추고, 순전히 호기심으로 기웃대다- 외관이  너무 예뻐 끌리듯 들어갔다.

 

 기본적으로 빵을 좋아하긴 하지만 중년 이후 불어난 체중 덕에 빵 섭취를 자제하고 있었다. 아마 대기업이 하는-프랜차이즈형 화려한 외관의- 베이커리였다면 내 눈길을 끌지는 못했을 것이다. 전체적으로 브라운 톤의 나무로 된 미니 빵집은 그 안에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을 빵들이 대충 어떤 맛을 낼지 짐작할 수 있게 했다. 깔끔하고 정갈하되 구시가지의 도시 외관과 조화를 이룬 모습만 보더라도 베이커리 사장님의 안목과 센스를  짐작하기는 쉬웠다.

 

 호기심으로 들어간 매장은 겉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더 작았다. 짙은 갈색의 둔탁한 나무문을 밀고 들어가면 바로 전면에 빵이 놓인 진열대가 있다. 두, 세 사람이 들어서면 꽉 차는 좁은 매장. 호밀빵, 통밀빵 같은 정제되지 않은 곡물빵과 샌드위치,  스콘, 크로와상, 바게트, 치아바타 등 일반 빵집에  비해 가짓수는 많지 않지만 나는 그 소박함이 맘에 들었다. 첫 구매로 치아바타 하나를 사서 나온 것이 단골의 시작이었다.



 나는 혼자 사부작사부작 노는 것을 좋아한다. 단체모임은 영 불편하고 마음 맞는 친구들과  단출하게 몇 명 모여  마시고 밥 먹고 수다 떠는 정도. 지극히 정적인 편이다. 말수는 적은 편이라 주로 듣는 편이다. 아무튼 오랫동안 혼자서 노는 것이 습관이 돼서 그런지 몰라도 이 생활도 나름 편하다. 그렇다고 은둔형 외톨이는 아니다. 순전히 내 기준으로 착한 사람, 선한 사람, 따뜻한 사람이라 여겨지면 내가 먼저 붙임성 있게 다가가기도 한다.

 내가 생각하는 나는-천성이 모질지 못하고, 소심하고, 우유부단해서 진작 끝내야 할 상황을 오래 끌고 가는 경우가 종종 있어 답답하지만, 또 끊을 때는 칼같이 단호해서 미련을 두지 않는다. 특히 관계에서 나 싫다고 가는 사람은 아주 쿨하게 보내준다. 그것은 내가 상대를 덜 사랑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한번 금이 간 마음을 이어 붙일 수 있다고 생각할 만큼 어리석은 사람은 아니다. 남들이 생각하는 나는-글쎄 내가 아니어서 잘 모르겠지만 뭐 참을성 많고, 모나지 않은 무던한 사람 정도가 가장 근접한 평가일 것이다.



   길을 나섰다. 한결 서늘해진 아침 공기가 반가우면서도 벌써 여름의 끝자락에 서 있는 나를 보면 가는 여름이 조금은 아쉽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듯 곧 결실의 계절이 올 것이다. 다가오는 가을, 웃으면서 수확할 수 있기를 소원하며 잠시 기도한다.  산책로를 따라 10분쯤 걸으면 명일당이 보인다. 성큼성큼 걸어가 묵직한 나무문을 밀고 들어간다. 갓 구운 빵들이 소담스럽게 바구니에 담겨 있다. 작은 가게 안에 고소한 행복의 냄새가 가득하다.

 정겹게 사장님과 인사를 나누고 통밀빵 하나와 에그 타르트를 사서 나오려는데 사장님이 내게 빵 하나를 건넨다.  "이거 맛보세요. 매장에서 파는 빵은 아니고요. 저희 아이들 주려고 따로 만든 건데요~~ 이상하게 그냥 정이 가는 분 있죠? 고객님이 그런 분이세요. "하며 그녀가 웃는다. 정성과 친절과 호의가 담겨있는 그녀의 뜻밖의 선물. 가슴 뭉클한 감동이었다.


 살면서 이루고 싶은 것도 많지만 그보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사람다운 사람, 성품에서 향기가 나는 사람으로 익어가는 것이 오랜 아픔을 겪으며 깨닫고 결심한 희망사항이었다. 돌이켜 보면 삶에 고난이 닥쳤을 때 혼자가 아니었다. 어려운 절망의 고비마다 같이 슬퍼해주고 나를 위로해 주는 이들이 있어 절망의 터널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 받은 사랑을 누군가에게 또 흘러 보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따뜻하고, 친절하고, 배려심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명일당 사장님의 나를 위한 선물은 '내가 잘못 살고 있지는 않는구나' 하고 안도의 한숨을 쉬게 만들어 주었다. 오늘 그녀의 선물은 열심히 살라는 격려였다.


 

 요즘 일할 때를 제외하고는 틈틈이 책을 읽거나 브런치에 올라온 글들을 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한 번도 보지 못한 작가님들인데도 왠지 정이 가고 끌리는 분들이 분명 있다. 글은 정직하다. 글 속에는 고스란히 그 사람의 삶이, 가치관이 담겨 있다. 지나온 삶의 발자취가 남아있기에 글 속에 작가 고유의 향기가 난다.

 오늘 다시 다짐을 한다. 따뜻하고 사랑의 향기를 풍기는 사람다운 사람이 되고 싶다. 언 고드름 녹이는 봄볕 같은 사람으로 살고 싶다. 그렇게 그렇게 곱게 저물어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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