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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쁜손 Aug 18. 2021

잠 못 드는 밤 드뷔시의 달빛과 함께...

 뻐근한 팔이 저릿하다. 백신 1차 접종한 지 24시간이 흘렀다. 어제는 아무 증상이 없어 일상의 패턴을 그대로 유지했었는데... 하루가 지난 저녁부터 가벼운 두통과 미열이 있어-물과 함께 타이레놀을 삼키고 자리에 누웠다. 이리저리 몸을 움직여 편한 자세를 취해 보는데  몸이 불편하다. 증상이 심한 건 아니지만 다른 일을 하기에는 애매한-이도 저도 아닌-상태의 지속은 무료함까지 덤으로 달고 왔다. 낮에 읽다만 정호승의 시집을 한편으로 치우고 그냥 눈을 감았다.

 

 시간이 얼마쯤 흘렀을까. 한참 누워 뒤척인 것 같은데 채 한 시간이 안 되었다. 이마에 손을 대보니 아까의 따끈한 느낌은 사라지고 약간 머리가 띵한 정도로 증상이 완화되었다. 시간은 오후 9시 반. 건너뛴 저녁 식사 탓에 허기가 진다.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약간 핑 도는 것이 어지럽다. 잠시 벽을 잡고 호흡을 가다듬는다.

 

 혼자 지내다 보니 건강에 대해 민감한 편이다. 아들이 있어도 멀리 떨어져 있고... 사실 조금이라도 부담되기 싫은 마음이 크다. 엄살 부릴 사람, 돌봐줄 사람 없으니 스스로의 몸은 알아서 관리해야 된다는 생각이 거의 강박관념처럼 있다. 워낙 약골이고 큰 수술을 한차례 치른 탓에 내게 40대는 통증, 고통을 떠올리는 지나간 시간일 뿐. 다시 그 시간을 되돌리고 싶지는 않다.  어쩌면 나이 오십을 훌쩍 넘긴 지금의 건강상태가 더 양호한 것은-지독히 아파본 경험이 있기에 나름 스스로를 관리한 까닭일 것이다.



  최근 2,3년 동안 정기적인 우울증 치료제와 편두통약을 처방받는 것 외에는 병원에 가본 적이 없다. 일 년 내내 감기와 원인모를 알레르기 질환을 달고 살았는데 신기한 것은 흔한 감기조차 가볍게 앓지 않고 몇 년을 버텼다. 아들의 분가와 뒤이어 1년 뒤 엄마의 요양원 입소로 나는 진짜 혼자가 되었고, 아무도 곁에 없다는 절박함이 오히려 나를 강하게 만들었다.

 

 그렇다고 그것이 악착같이 오래 살고 싶은 동물적 본능 때문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삶에 대한 애착이나 물질에 대한 욕심이 적은 편인 내게 오래 사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하나뿐인 아들에게 짐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의지했던 엄마는 이제 돌봄이 필요한 아이가 되었고... 가난한 흙수저로  세상을 헤쳐나가는 아들에게 나의 안위를 의탁할 수는 없었다. 철저하게 나는 혼자였다.

 

 마음과 몸이 하나라는 사실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무의식조차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체력이 약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흐트러진 마음을 먼저 가다듬는 일과 불규칙한 생활 습관과 식습관부터 바로잡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싫어하는 운동 대신 산책과 생활 속에서 활동량을 늘려갔다.

 



 코로나 균과 내 면역세포가 사투를 벌이나 보다. 약기운에 열은 내렸지만 현기증이 난다. 잠시 벽에 기대 호흡을 가다듬고는 주방으로 간다. 늦은 저녁이라 삶은 달걀과 토마토로 가볍게 저녁을 때웠다. 후드득후드득 비가 쏟아진다. 소나기가 요란스레 쏟아지는 밤이다. 잠시 창가에 기대어 빗소리를 듣다 서늘한 밤기운에 창문을 닫는다. 닫힌 창문 사이로 고요한 침묵이 밀려온다. 포트에 물을 끓인다. 캐모마일 티백에 끓인 물을 부어 차를 우려낸다. 향긋한 향기가 코끝에 맴돈다. 찻잔을 잡은 두 손에 따뜻한 온기가 느껴진다.


 밤이 정막이 나를 포근하게 감싼다. 살짝 열에 들뜬 발그레한 볼과 전신을 타고 흐르는 나른함이 오늘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 준다. 지금 나는 고요하다. 지금 나는 평온하다. 그리고 지금 나는 행복하다. 소용돌이치던 깊은 바다는 더 이상 나를 흔들지 못한다. 부침 많은 삶에 쉴 새 없이 흔들리던 나는 이제 비로소 땅에 뿌리를 내렸다.

 운명이 나를 혼자만의 세계로 인도하였으며 내 안에 질긴 생명력은 어제보다 오늘의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나의 이제 과거로 돌아기지 않으며 현재를 살아갈 것이다. 어제보다 오늘이 나은 삶.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은 그런 삶을 살아갈 것이다. 이것의 평생 나의 불행을 가슴 아파한 엄마에 대한 사랑이며 아들을 향한 나의 사랑이다.



 오늘도 잠이 오지 않는다. 깊은 밤, 새벽 미명 아래 피곤한 눈을 감고 나를 항상 위로해 주던 드뷔시의 달빛을 듣는다. 음악은 나의 인생이자 나의 친구이다. 언제나 말없이 나를 토닥이며 위로해 준다. 살다 보면 한동안 절망 속에 헤맬 때가 있다. 편안한 삶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 편안함은 우리를 좁은 시야에 가둬 정작 중요한 것을 보지 못하게 한다. 나는 내게 고통이 오더라도 소중한 것을 분별할 수 있는 귀한 시간을 가질 수 있기를 소망한다. 삶에는 슬픔도 기쁨도 거저 얻어지는 것은 없다. 고통이란 대가를 지불해야 얻을 수 있는 귀중한 가치가 있음을 이제는 알겠다.

 

 이 밤이 지나면 밤새 내 안을 침범한 미지의 바이러스와의 싸움에서 나는 승리할 것이다. 지금 나는 나를 응원한다. 그리고 다시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날 나를 믿는다. 숱한  넘어짐 속에서도 다시 일어난 오뚝이의 기적을 믿으며 나도 나의 삶이 끝나는 날까지 나아갈 것이다. 사랑의 이름으로~~


 https://youtu.be/y0Iyws-M8pg


          (커버 사진출처-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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