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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쁜손 Nov 20. 2020

돋보기

나이 듦, 그 쓸쓸함에 대해서

 동생은 초등학교 보건 교사이다. 해가 질 무렵 동생한테서 전화가 왔다. 동생네 학교는 신설 초등학교로 대부분의 선생님들이 젊다고 한다. 나이 드신 선생님들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원로 교사회를 만들고 업무도 줄여주고 회식도 따로  하는 모양이다. 자격은 만 55세 이상인데-동생 표현으로는-한참 아래인 52세인 자기까지 끼워 조를 짰다고 한다. 호호호

 이러니 요즘 말로 뚜껑이 열린 모양이다. 업무량은 그대로고 타이틀만 원로 교사회에 속한 선생이 되었으니 분통을 터트렸다. 호호호

 "얘, 어이없다."

 "나도 사회에선 원로 대우 겠네~~"

호호호...


 나이 드는 것은 유쾌한 일은 아니다. 어릴 적 빨리 어른이 되고 싶은 적이 있었다. 그리고 이십 대 때 잠깐 젊음이 너무 부담스러워 시간이 빨리 갔으면 하고 바라었던 적이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초로의 중년을 상상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좀 세월이 천천히 오면 좋으련만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나이를 먹어갈수록 더욱 가속화돼서 달려온다.


 나는 남들보다 노안이 일찍 찾아왔다. 독서량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 내가 활자를 보는 게 그리고 휴대폰의 글씨들을 보기가 불편하던 게 40대 초반인 것 같다.

 안과에 갔더니 노안이라고 했다. 아, 비로소 나도 늙어가는구나 실감이 났다.

 그렇게 나에게 노화는 마음의 준비 안된, 무방비상태에 찾아왔다.


 인간의 신체에서 눈이 가장 빨리 늙는다고 한다. 의사가 처방해준 대로 돋보기를 맞췄지만 사용하기까지는 오래 걸렸다. 돋보기를 코끝에 걸치고 책 읽는 내 모습이 영락없는 노인의 모습이었다.

 늙는다는 것은 서글픈 일이다. 그러나 이상하게 남들에게 눈이 불편하다는 사실을 보이거나 알리고 싶지 않았다. 정확하게 사십 대 초반에 늙어가고 있다고 표시내기에 자존심이 상했다.

 돋보기를 책상 서랍에 쳐 박아놓고 휴대하지도, 착용하지도 않고 가끔씩 남들 모르게 손을 뻗치거나 미간을 찌푸려 사물을 보았다.

 몇몇 눈치 빠른 친구들은 어디 불편하냐고, 벌써 노안 왔냐고 설레발을 쳤지만 돋보기는 끝까지 거부했다.(나도 여자다~보통의 여자~나이 보다 어려 보이는 게 좋은 여자~)


 해가 몇 해 바뀌니 하나, 둘 친구들이 노안이라는 처방이 떨어진다. 돋보기에 자존심을 갖다 붙이던 억지도 안 보이는 눈앞에서는 장사가 없었다.

 가는 세월 꼿꼿하게 막아서던 패기는 온데간데없고 기계도 50년 넘게 쓰면 고장 나고 부품 교체해야 될 텐데... 하며 어느새 순응하기 시작했다.

 인정하기 싫지만 내 몸이 삐걱대며 하나, 둘 신호를 보낸다.'견적이 잘 나와야 될 텐데... '


 멀리 있는 돋보기를 집어 든다. 이번이 벌써 도수를 세 번째 높였다. 많이 침침하다.

 아직 돋보기 사용이 익숙지 않아 아주 눈이 많이 피로할 때만 사용한다.

 데이비드 브룩스의 두 번째 산이란 책이다. 아직 사놓고 읽지 않았다. 인간관계, 더불어 사는 삶의 소중함을 다룬 이야기라는데... 미리 보기 보고 흥미로워 구입했는데 큰 흠이 많이 두껍다. 거의 목침 수준이다.( 600페이지 가깝다.)

 돋보기를 장시간 쓰고 책 본다는 것은 참 힘들다. 몇 주 미루다 오늘 책을 펼친다. 활자가 크고 선명하다.

 

힐긋 벽면의 거울을 본다. 마주하니 그런대로 봐줄 만하다. 막 나기 시작한 흰머리도, 돋보기 너머 눈빛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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