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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쁜손 Nov 21. 2020

내 영혼의 맑은 날~

가을 소풍 2

 지난주 정주 집사의 생일 파티 겸 남한산성으로 단풍놀이 다녀온 지가 일주일이 채 안되었는데, 오늘은 막내 미경 씨의 생일이라 집을 나섰다.

 한 번 집 밖으로 외출하려면 어딘가 모르게 불편하고, 이곳저곳 아픈 병이 도지는 탓에 천근만근 무거운 발걸음으로 약속 장소로 향하였다...

 거의 약속 장소로 도착해서 정주 집사가 참석 못한다고-고객과의 약속이 잡힘-전화가 왔다. 진작 얘기해줬으면 오늘의 약속을 미뤘을걸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하긴 다음 주엔 내가 베이비시터 교육 과정이 있고... 4명인데도 다들 모이기엔 나 빼고(집순이라 나가는 걸 별로 안 좋아하는 큰 단점이 있다.) 공사다망하셔서 어려우니  정주 집사도 자기 빼고 생일 파티 다녀오라 성화다~~


 오늘의 주인공 미경 씨는 모임이 막내로 어리광과 유쾌함을 담당하고 있다. 여행과 자연을 좋아하는 그녀는 요즘 뜨는 도심의 핫플레이스도 나머지 셋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이 알고 있다.

 상냥한 그녀는 아이들과도 친구처럼 지내다 보니 우리의 질투(?)와 부러움을 사기도 한다.

 그런 그녀의 생일이니 사려 깊은 박 집사님이 북한강도 볼 겸 맛있는  닭갈비랑 막국수도 먹을 수 있는 양수리 두물머리로 장소를 정하셨다.


 박 집사님은 우리 중 가장 큰 언니이다. 손도 크고, 마음씨도 넉넉한 분. 남을 대접하는 것을 즐겨하고 음악을 전공해서 그런지 섬세하다.

 항상 배우고자 하는 열정이 있는 분, 에너자이저.

에너지가 고갈된 내게 어떤 때는 부담스러운 분.ㅎ

 운전으로 우리를 섬겨주신다.


 오늘 아쉽게도 참석 못한 정주 집사, 그녀는 사람을 편하게 하는 매력이 있다. 그녀도 아픈 사람이다. 공황으로 오래 고생했는데, 지금의 그녀는 낙천적이고 쿨하다. 자존감도 높다. 이렇게 될 때까지 오랜 시간 그녀는 자기의 내면을 성찰하고 또 성찰했을 것이다.

 거의 그녀의 공황장애는 과거형이다.

 상담이 필요할 때 좋은 상담사 역할을 담당한다.


 평일 정오쯤이라 그런지 다행히도 두물머리 가는 길은 막히지 않았다. 앞좌석의 두 여인네가 나를 힐끔힐끔 보며 말을 한다.

 박 집사님이 내 컨디션을 걱정하신다. 미안한 마음에 괜찮다고, 아니라고 너스레를 떠는데...

'마지못해 가는 게 얼굴에 드러났나? 에잇, 마스크 썼는데... '

 눈치 백 단 인 두 여인도 그렇고 감정을 잘 못 숨기는 나도 그렇고 우리는 벌써 몸에 잘 맞는 옷처럼 서로를 너무 잘 안다.


 미경 씨가 차창을 내리며 밖에 파란 하늘과 구름을 가리킨다. 달리는 차 옆으로 지나는 풍경들이 아쉽게 눈인사를 해  돌아본다. 마음속 간질거리고 불편했던 마음이 조금 사그라지는 것이 느껴진다.

  사실 외출하기까지 불편한 거지... 오늘의 주인공들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말 그대로 속속들이 아는 편한 사람~ 컨디션이 안 좋아도 꼭 생일을 축하해 주고 싶어 나온 것인데, 내 표정이 다른 두 사람을 불편하게 한 것 같아 얼른 가방에서 선물을 꺼내 화제를 돌렸다.

 지난번에 미경 씨가 얼굴에 영양크림도 안 바른다는 소릴 귀담아 두었다가 사놓았다.

 "건강하게 오래 살아요~~~"

그녀가 환하게 웃으니 나도 기쁘다.


 기계의 건조한 음성이 목적지 도착을 알린다. 맑고 잔잔한 푸른 강이 햇볕을 받아 빛난다. 여인들 난리 났다.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강가의 풍경이다.

겉으로 보기엔 허름한 맛집을 들어가니 평일인데도 이곳의 풍경과 맛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붐볐다.

 너른 창가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박 집사님이 내 앞에 마주했다. 내 안부를 물으신다. 계면쩍게 웃었다. 실내는 고동색 나무로 지어진 건물이고 강가 쪽 벽면은 통유리로 시야를 탁 트이게 해 놓았다.

 프레 임안의 강변과 단풍나무 숲, 잔잔한 여운을 주는 명화 같다.

 막내의 생일인데, 고기는 연신 막내가 굽고 있다. 속으로만 웃었다. '친절하고 착한 미경 씨, 복 받을 거야~~'

 미경 씨는 어젯밤 야식 때문에 속이 더부룩하다고 오늘의 주인공임에도 불구하고 잘 먹지 못한다. 미안하게 박 집사님과 나만 게눈 감추듯 꿀맛 같은 식사를 했다.


 "나 오길 잘했죠?"식사 후 풍경을 보는 내게 묻는다. 빙그레 웃었다. 11월 중순의 늦가을인데도, 대기가 따뜻하게 느껴지는 날-소풍날로는 기가 막힌 날씨다.

 바람 한점 없고 따사로운 햇살 가득한 두물머리의 정경은 포근했다.

 

 진하고 약간의 산미가 느껴지는 커피와 생크림을 얹은 디저트를 앞에 놓고  우리들의 위대함에(위가 크다는 뜻) 깔깔 웃었다. 밥 배랑 디저트 배는 따로라고 하며...

 나른한 오후다. 그러나 정신은 또렷하고 맑아지는 느낌.

 자꾸 내 표정이 처음 차에 탔을 때보다 훨씬 밝아졌다고 놀려댄다. 미안해서 쥐구멍이라도 숨고 싶다.

 아이들의 고민과 부모로서 지켜보는 아픔, 우리 중년의 삶에서 느끼는 좌절과 희망... 3시간쯤을 진솔하게 터놓고 보니 막혔던 가슴이 뚫리고, 펄펄 요동치는 게 느껴진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삶을, 마음을 나누는 사람들이 있어 내 인생이 반짝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전화 벨소리가 울린다. 스피커를 통해 정주 집사가 저녁에 자기 집 앞에서 합류할 의사를 묻는다. 다들 오케이~~

 늦은 오후 양수리에서 서울로 돌아가는 길은 많이 밀린다. 우리네 인생 같아 웃음이 나온다. 시원하게 뚫린 길도, 막힌 길도 지나가겠지... 하지만 답답하지도 조급하지도 않다. 좀 막히면 돌아가면 되고...

우리의 쿨한 정주 집사 기다리다  힘들면 취소야~하고 전화할 테니...


 일몰이 눈이 부시다.

 철들어가는 소풍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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