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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쁜손 Nov 19. 2020

멍 때리기~

오래된 습관

 "언니! "

매니저가 큰소리로 부른다. 오늘도 서 있는 중간 멍하니 서 있다고 한 소리 들었다. 우리 매니저는 눈치 백 단이다. 내가 아무리 아닌 척 표정관리를 하고 있어도 내가 가끔 딴생각에 빠져 있을 때는 어김없이 불러 주의를 환기시키고 그럴 시간에 일을 하라고 일거리를 만들어 주었다.


 나는 나의 이런 습관이 있다는 것은 몇 년 전 친한 친구들이 이야기해 주어 처음 알았다. 여러 명이 모인 경우 이야기가 길어지면 내가 어김없이 화제에 집중 못하고 멍하니 허공을 응시할 때가 많다는 것이다.

 그러면 "피곤해서 그랬나? "하고 얼버무리고 말았다.

 사실 오래된 관계의 모임들이었지만 화제는 항상 불편하고 나와는 동떨어진 이질적인 것이 대부분이었다. 신도시의 특성상 엄마들 경제 수준도, 학력 수준도 높았고 무엇보다도 교육에 대한 열의가 으뜸이었다.

 그러니 엄마들 모임은 아파트 늘려나가는 이야기 같은 재테크나 휴가 때 다녀온 여행지에 있었던 일과 좋은 여행지를 추천하고 마지막으로는 아이들 학업 성적을 끌어올릴 유능한 학원과 선생님들에 대한 정보 교환이었다.

 남편과의 관계도, 경제사정도 안 좋은 나는 그녀들이 나누는 대화에 낄 수 없었고 거의 청자의 입장에 서게 됐으나 그마저도 그 역할을 잘 감당하지 못했다.

  

 나는 말수가 적은 편이다. 기질적으로 타고 태어난 것도 있지만 살면서 계속 찾아오는 불행이란 놈에 위축되어 자신감이 떨어진 까닭도 있다.

 이런 숨 막히는 현실에서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는 것은 멋진 미래에 대한 상상이었다. 상상 속의 나는 자신감 넘쳤고 여유로웠고... 그 누구보다도 행복해 보였다.

 사는 게 팍팍할수록, 엄마들 모임의 화제가 지루할수록 나는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는 시간과 빈도가 늘어났다.

 그러다 모임에서 내 차례에 발언을 하다 엉뚱한 이야기를 해 내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 별 관심 없어함을 들키기도 했다.

 내 처지를 아는 친구 몇은 그런 나를 나름 이해하려 했지만 나의 잦은 실수는 -어떤 이에게는 상대에 대한 관심과 배려 부족이라는-상처를 주기도 했다.

 그래도 그때까지는 나의  멍 때리는 습관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거나 개선하려 하지 않았다. 무언가  숨 쉴 돌파구가 나는 간절했다.


 분당을 떠나서 친정으로 회귀한 뒤 나의 삶도 여전히 마찬가지였고 숨통은 더 막혔다. 풍요로운 상상 속의 나와 미래를-더 이상은 꿈으로도 꾸지 않았다.

 꿈조차 꾸지 않는 날들을 몇 해 보내고 나는 엄마라는, 딸이라는 이름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이 간절히 필요했다. 백화점 일은 처음이지만 다행히 면접에 통과되었다.

 

 한 달, 두 달, 석 달... 호랑이 같은 여장부 매니저 호령에 시간이 잘만 갔다. 체력이 약한 나는 하루 종일 서 있는 것이 버거울 때가 많다. 그래도 알면 알수록 정 많은 매니저랑 부대끼고  일과 씨름하며 땀을 흘릴 때 차츰차츰 마음이 회복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다시 꿈을 꾼다. 이룰 수 없는 허황된 꿈이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손을 뻗고, 발을 떼면 반이 이루어지는 그런 꿈을.


 "언니, 언니! 또 멍 때리네~~"

 "내가 언니 이러니 언니한테서 눈을 못떼. 정신 차려요~"

 또 일감을 내게 가져온다.

 난 이런 그녀가 밉지 않다.

"매니저님, 미안 충성!"

 나의 애교에 그녀가 씽긋 웃는다.


 호랑이 그녀의 레이더망을 벗어난 집으로 가는 버스안에서 난 오늘도 어김없이 자유롭게 비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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