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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쁜손 Nov 13. 2021

어리바리 장사꾼의 상도의에 대한 의문.


 판매 아르바이트를  여러 해 했지만 나는 여전히 고객을 대하는 일이 쑥스럽고 불편하다. 전업주부로만 살다가-이혼 후 중년 여성인 내가 할 만한 일의 선택폭은 많지 않았다. 나이 들면서 성격이 조금 둥글둥글 편해졌지만, 그래도 기본적으로 말 수 없고 낯가림을 많이 타는 내가 손님을 상대하는 일은 스스로도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었다. 무슨 일을 하기까지 결정하고 실행하기까지는 오래 걸리지만, 한 번 하기로 한 일에는 잘해야지 하는 강박관념으로 스스로를 피곤하게 하는 스타일이다.

 

 지금이야 판매는 여전히 못해도 인사 하나는 씩씩하게 잘하지만 처음에는 부끄러워 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인사를 하다 사장님께 여러 번 지적을 당한 적도 부지기수다. 어쩌다 판매가 이루어지면 짜릿함이 느껴질 정도로 기분이 좋았지만 매출이 저조할 때는 내 책임인 듯 코가 쭉 빠져 스트레스를 받기 일쑤였다.

 모르겠다. 거창하게 판매 철학까지는 아니어도 좀 판매 스킬이 떨어져도 정직하고 친절하게 고객을 대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매장에 잠재 고객을 확보하는 길이라고 그렇게 나는 믿었다.

 



 요즘 일주일에 두, 세 번은 조카들 저녁을 챙기고 일주일에 한 번은 근처의 이마트 의류 코너로 아르바이트를 간다. 경기가 안 좋아 거의 입점한 브랜드마다 1인 근무체제라 매니저님이 일찍 퇴근하실 때 나를 부르곤 한다. 오늘 늦은 오후에 출근을 했다. 위드 코로나로 소비가 좀 살아났다고는 하지만 워낙 오프라인 매장들이 코로나로 타격이 심했던 탓에 코로나 이전으로는 회복하기가 시간이 걸릴 것이다.

 

 모녀로 보이는 고객 두 분이 매장으로 들어왔다. 목소리 톤을 높여 인사를 한다. 나는 고객이 원할 때까지는 권유하지 않는다. 우선 편히 고객 스스로 물건을 볼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고 대기하다가 고객이 도움을 청하면 필요한 물건을 찾아드린다. 젊은 여성분이 남학생의 외투와 티를 고르고 내게 사이즈를 찾아 달라 하신다. 모녀간의 대화로 보아 사춘기 아들의 옷을 고르는데,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는 아들과의 갈등을 이야기 속에 내비친다. 조카 유준이가 떠올라 그 또래 아이들의 심리와 일반적인 태도에 대해 고객님과 대화를 나눈다. 공감 속에 마음이 열린다. 가격보다는 지금 중2 남학생이 좋아할 만한 컬러와 디자인을 추천해 드리니 흡족해하신다.

 

 추운 날씨에 얇은 카디건을 걸친 고객님께 이유를 묻고 갑상선 기능 항진증으로 고생하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고통을 위로하고 빠른 쾌유를 빌어드리니 환하게 웃으며 매장을 나가신다. 비록 손님으로 만난 인연이지만 그 순간만은 진심으로 소통하고 싶은 내 마음이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점장님과 내가 실없는 손님이라 일컫는 오십 대 남자분이 어김없이 매장으로 들어선다. 딱히 살 것이 없는 듯하지만 마트에 오면 우리 매장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들리셔서 별로 코드 안 맞는 농담만 하신다. 불쾌한 소리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장시간 응대해드려야 하기에 피곤하지만 친절히 최선을 다한다.

 감정노동자라는 말이 실감 나지만 진심을 다해 응대하다 보면 짧은 시간이라도 피곤함이 몰려온다. 한 시간에 최저시급 받는 알바라도 세상에 쉽게 돈을 버는 일은 없는 것 같아 씁쓸한 웃음이 나온다.

 

 손님이 끊긴 저녁시간 혼자 매장을 지키고 있는데 우리 층의 다른 매장 매니저분이 나를 부르며 들어선다. 내게 하실 말씀이 있으신 듯 약간 표정이 경직되어 보인다.

 우리 층에는 남성복 매장이 두 곳이 있다. 우리 매장 바로 이웃인 남성복 매장 점장님이 자리를 잠시 비울 때 손님이 오면 내가 전화로 가끔 알려주었다. 그 사실을 지금 나를 찾아온 다른 남성복 코너의 매니저가 그렇게 하지 말 것을 지적한다. 어리둥절해 있는 내게 설명한다.

 이야기의 요지는 경쟁 매장이 비어져 있을 때 자신의 매장 손님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내가 막고 있다는 것이다. 당혹스러웠지만 절박한 마음으로 내게 오기까지 그분도 힘드셨을 것 같아서 사과를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오늘 겪은 일들을 떠올리며 아무 말도 못 하고 사과만 한 내 행동이 뒤늦게 후회스러웠다. 아니 사실 어느 것이 맞는지 모르겠다. 무례한 그 매니저의 주장대로 내가 남의 장사를 방해한 건지... 나는 선한 의도로 옆 매장을 도와주려 했는데 내 의도가 다른 경쟁업체한테는 불편하고 화나는 일이었다니 솔직히 혼란스러웠다. 화가 나는 것보다는 먹고사는 문제 때문에 삭막해지고 서로 견제해야 되는 우리 층의 매장들의 현실이 가슴 아펐다.

 

 이래저래 기분이 별로인 씁쓸한 하루였다.  오늘도 잠 못 이룰 것 같다. 어느 게 맞는 걸까. 소심한 장사꾼이 상도의가 뭔지 고민하는 밤이다. 내가 정말 잘못한 걸까. 그냥 싸움으로 번질 것이 싫어 알겠다고 한 것이 바보 같은 일이었는지 정말 모르겠다. 오늘따라 내가 바보 같아 내가 싫고 슬픈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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