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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쁜손 Nov 16. 2021

인욱 씨 표 불고기 덮밥.

행복을 부르는 초간단 레시피~♡


 인욱 씨는 명희 씨 카페에 주말 아르바이트로 가끔 나오는 집사님이다. 내가 카페 '꿈꾸다'에 매일 출근하다 보니 자연스레 친해진 지인이다. 서글서글한 성격에 소탈한 웃음이 매력 넘치고 음식 솜씨가 남다른 천상 살림꾼이다. 주말에만 잠깐씩 명희 씨의 빈자리를 채우는 탓에 자주는 만나지 못하지만 어쩌다 만나게 되어도 오래된 지기처럼 반갑다.

 종갓집의 딸로 태어나 어릴 적부터 어머니를 도와 많은 손님을 치른 그녀는 음식 솜씨가 빼어난 살림꾼이다. 가끔 내가 조카들 밥상을 걱정하며 새로운 메뉴를 그녀에게 묻곤 하면-그녀는 기존의 흔한 음식들도 자신만의 레시피로 변형하여 내게 설명해준다.

 오랜만에 그녀를 카페에서 마주치고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하고 늘 빈약한 내 레시피에 추가할 음식을 물어보았다. 오늘의 메뉴는 인욱 씨 버전의 불고기 덮밥이다. 심심하게 간을 한 불고기 양념을 한 불고기에 아삭한 콩나물을 얹어 양념장에 비벼 먹는 음식이다. 조카들에게 영양 만점의 맛있는 음식을 해 줄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마음이 뿌듯하다.



 조카들이 둘 다 이번 주 온라인 수업이라 내가 현관으로 들어서니 막내부터 뛰어와 "이모 오셨어요?" 하고 인사를 한다. 큰 녀석은 지 방에서 수업 중이어서 노크를 하고 "이모 왔다." 하니 "이모 안녕~"하며 웃는다. 같은 형제이지만 첫째는 내게 존댓말을 사용하지 않고 작은 녀석은 깍듯하게 높임말을 사용하는데, 난 둘 다 좋다. 큰 아이는 스스럼없이 나를 대하는 태도가 좋고, 막내는 막내대로 존칭을 사용하는 것도 다 이쁘고 사랑스럽다.  눈에는 둘 다 보석 같은-가슴으로 낳은 내 아이들. 그들이 있어 행복하다.

 

 집안 곳곳에 어지러 히 널려 있는 물건들을 보며 오늘도 아침에 동생네 부부가 한바탕 출근 전쟁을 벌였을 모습이 상상이 되어서 웃음이 나왔다. 물건들을 가지런히 제 자리에 정리하고 빨래 건조대의 빨래를 걷어 잘 개어 놓았다.

 슬슬 저녁 준비를 시작하기 전에 에너지 충전으로 동생이 내려놓은 드립 커피를 머그잔에 담아 들고는 볕이 잘 드는 창가에 섰다. 남서향인 아파트라 오후에 해가 길게 거실에 들어온다. 따뜻하고 맑은 햇살을 듬뿍 받으니 나른한 행복감이 나를 감싼다.



 냉장고 문을 열고 오늘의 요리에 필요한 재료를 꺼내 고기부터 양념을 하였다. 불고기 양념을 평소에는 고기 100g당 밥 숟가락으로 간장 한 스푼 하던 양념을 조금 줄여 500g에 간장 4스푼에 설탕 4 티스푼, 마늘 2스푼, 참기름 2스푼, 양파 중간 크기 1개, 후추 조금, 청주 2스푼 반으로 간을 조금 싱거운 듯하였다. 어차피 양념장을 넣어서 비벼 먹기에 고기의 간은 약하게 하는 것이 포인트이다.

 양념한 고기는 잠시 냉장고에 넣어 한 시간쯤 양념이 배게 놔두고 잡곡은 씻어 30분쯤 불린 후 냉동실에 불려 놓은 강낭콩을 얹어 전기밥솥 취사 버튼을 누르니 시간이 5시가 조금 넘었다.

 때마침 큰 조카가 방에서 나와 오늘의 저녁 메뉴를 묻는다. 불고기 덮밥이라고 하니 잠시 실망한 듯 고개를 갸웃거린다. 바쁜 동생이 가끔 주말에 만들어 준 이름 그대로 밥에 불고기만 달랑 얹어 비벼 준 기억이 나는지 내키지 않는 표정이다. 녀석이 엉덩이를 토닥이며 "이모표 불고기 덮밥이니 기대해~~"하며 눈을 찡긋 하니 녀석이 씩 웃는다.



  콩나물과 부추를 깨끗이 다듬고 씻어 콩나물은 냄비에 물을 조금만 넣고 센 불에 삶는다. 아삭한 콩나물을 원하면 오래 삶지 않는다. 난 콩나물이 끓기 시작해 5분 정도 있다 불을 끄고 콩나물 국에 띄울 콩나물 조금만 남기고 다 져 찬물에 씻어 채반에 놓고 물기를 뺐다.

 마지막으로 부추 양념장을 하기 위해 부추와 양파를 잘게 다진다. 약간의 칼칼하고 매콤한 맛을 내기 위해 양파를 일부러-썰어 매운 기를 빼기 위해-물에 담그지 않았다. 양파를 다지는 내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주르륵 흐르지만 아이들에게 맛있는 덮밥을 먹일 생각으로 훌쩍이며 눈물을 삼킨다. 간장에 설탕 조금, 다진 양파와 잘게 썬 부추와 잘 볶은 깨에 참기름 조금 넣어 완성했다.


 밥솥에서 밥의 완성을 알리는 멜로디가 울리고 뚜껑을 여니 고슬고슬 잘 지어진 잡곡밥이 윤기가 흐른다. 밥을 담은 그릇에 불고기와 삶은 콩나물을 얹고 콩나물 국과 곁들여 양념장을 식탁에 차려놓고는 아이들을 부른다. 큰 조카가 달려 나와 식탁 앞에 앉았다.  웬일인지 작은 녀석은 지 방에서 꼼짝도 안 하는데, 마침 동생이 퇴근해서 들어온다.



 둘째 조카를 큰소리로 다시 부르는데 대답이 없다. 동생에겐 차려진 식탁을 가리키며 앉으라 하고 둘째의 방을 열고 보니 침대에 앉아 울고 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거북이가 죽었다고 내 품에 안긴다. 2년 넘게 애지중지 키우던 거북이 두 마리가 한 달 사이에 모두 죽어 버렸으니 여린 마음에 그 슬픔이 얼마나 클지 짐작이 간다. 아무 말 안 하고 꼭 안아주었다. 어느새 동생이 유준이 곁에 와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다독인다.


 예정된 식사시간을 훌쩍 넘기고서 모두 제자리에 앉았다. 화제를 돌리려 "이모가 한 불고기덮밥 먹을만하니? "하고 유준에게 물으니 무표정했던 녀석이 "네, 먹을만해요. 아니, 맛있어요." 하고 대답하며 금세 밥을 비운다. 동생도 큰 조카도 엄지 손가락을 추켜 세운다.

 모레 검사할 대장 내시경 때문에 식사 조절해야 되는 내가-맛을 볼 수 없어 오늘 인욱 씨 버전의- 불고기덮밥이 잘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다들 깨끗이 음식을 비우는 모습과 만족한 표정으로 오늘의 요리가 성공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설거지를 하려 개수대 앞에 섰는데 유준이가 내게 다 먹은 그릇을 내밀더니 다시 내 품에 안긴다. 그 마음을 알기에 등을 토닥였다. 내가 힘들 때 엄마의 음식을 먹고 힘을 냈던 것처럼  우리 유준이도 이모의 음식을 먹고 힘을 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아이를 안고 기도했다. 삶이 온통 아픔이지만 서로를 위로하고 보듬는 마음이 세상을 헤쳐나갈 때 힘이 되는 것을 이 작은 아이가 깨닫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어둠이 짙게 내린 거리를 걸어 집으로 돌아왔다. 오늘도 무사히 하루를 보낸 감사함이 턱 밑까지 차오른다. 올해 채 두 달도 남지 않았다. 나를 둘러싼 상황과 여건은 작년과 별반 다른 게 없지만 나의 행복지수와 행복에 대한 민감도는 올라간 것 같다. 행복의 빈도도 높다. 소소한 일상, 비슷비슷한 하루를 산다는 것은 큰 축복이라는 것을 이제야 알겠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밥을 짓고, 아파하는 조카의 눈물을 닦아주고, 볕이 잘 드는 창가에서 차를 마시고 그리고 일과를 무사히 마치고 돌아와 쉴 공간이 있음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왜 예전에는 미처 몰랐을까... 비로소 철이 드는 내가 사랑스럽고 귀한 밤. 이 모든 시간을 허락하신 그분께 나의 사랑과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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