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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쁜손 Nov 22. 2021

길을 잃은 택배 주인 찾아 주기.


 오늘 조카들 저녁 메뉴는 캘리포니아 롤이었다. 갖은 야채에 아보카도, 달걀지단과 스팸을 가지런히 썰어 구운 김에 고추냉이 소스를 곁들인 간장소스에 찍어 먹는다. 큰 조카가 워낙 이 음식을 좋아해서 일주일에 한 번은 해 먹는다. 아이들과 저녁식사를 하고 뒷정리를 하고-동생네서 나오니 해가 짧아져 저녁 7시가 채 안되었는데 짙은 어둠이 길게 깔렸다.

 며칠째 예년 기온보다 포근한 늦가을이라 걷기에 적당한 날씨이다. 일부러 두 정거장 전에 내려 어둠이 내린 가을 길을 걷는다. 우수수 떨어지는 낙엽에,  밟는 걸음마다 바삭거리는 낙엽에 마음이 가을빛으로 물든다. 겨울이 오기 전 눈이 호강하는 계절, 가을이 이렇게 깊어간다.

 

 집이 있는 층에 엘리베이터가 열리고 몇 걸음 걷다 보니 집 앞에 커다란 상자가 멀리서도 눈에 띈다.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니 수신인이 내 이름이 아니다. 자세히 보니 호수는 맞는데, 다른 동으로 배달되어야 되는 상품이 우리 집으로 잘못 배달되었다.



 순간 난감했다. 상자는 여자 힘으로 들기에 부피도, 무게도 나가는 상품이라 꿈쩍도 하지 않는다. 택배사 고객센터 업무가 끝난 시간이라  물건이 잘못 배송된 것을 택배사에 알려줄 수도 없었다. 다음날까지 집 앞에 놓아둘까도 생각했지만-스티로폼에 쌓여 있는 상품이 빠르게 배송되어야 하는 신선식품이라-내가 직접 주인을 찾아주려 집을 나섰다.

 

 택배 상자는 내 힘으로 움직일 수 없어 직접 들어다 줄 수는 없지만 택배 오기만을 기다리는 택배의 주인에게 알려주는 것만으로 해결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걸으면서 502동을 두리번거리며 찾는다. 워낙 길치고 대단지라 내가 사는 주위의 동만 알뿐 신경 쓰지 않고 다녔던 탓에 한참을 헤맨 끝에 502동을 드디어 찾아냈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서있는데, 엘리베이터 열림과 동시에 00 택배라고 쓰인 모자를 쓰신 기사님이 내리신다. "기사님 혹시 저희 아파트 단지가 배달 구역 맞죠? 00 택배사에서 온 물건 저의 집에 잘못 온 게 있어요. " 하고 말씀드리니 순간 당황에 하시더니 고맙다고 인사를 하신다. 

 희끗한 머리에 깊게 파인 주름진 얼굴의 기사님을  보니 번거롭게 만든 택배사에 조금은 씩씩거리는 마음을 품었던 내가 조금 부끄러웠다.



 "죄송합니다. 택배일이 분초를 다투는 일이고 밤이다 보니 송장에 숫자를 잘못 읽었어요." 하고 기사님이 말씀하시는데 가슴이 짠하다. 젊은 분들도 벅찬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일인데 연세 있으신 분이 얼마나 힘들지는 충분히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저녁도 못 드셨겠네요. 그럴 수도 있죠. 저한테 미안해하지 마세요. 그래도 다행히 기사님을 중간에 만나 해결할 수 있는 게 천만다행이에요."

 이런저런 택배일에 대한 고충을 이야기하시고 나는 그분의 어려움을 듣다 보니 집 앞에 도착했다. 수레에 박스를 싣고 다시 고맙다는 인사를 하시는 택배 기사님께 건강 잘 챙기시라는 인사말을 하고 집으로 들어왔다.

 일은 잘 마무리되었는데, 마음이 내내 아펐다. 그분의 주름진 얼굴에  삶의 고단함이 담긴 탓일까. 내게도 녹록지 않는 삶의 무게감이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어느새 가을밤도 깊었다. 오늘 하루도, 올 해도 빠르게 지나간다. 연말이 다가오니 감사한 분들이 떠오른다. 그동안 너무 무심하게 잊고 지낸 건 아닌지 오늘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었다.


 명희 씨 카페 출근길 "안녕하세요? 수고 많으세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하고 복도에서 마주친 청소 아주머니에게 인사를 건넨다. 아주머니가 환하게 웃으시며 목례를 하신다. 무뚝뚝한 우리 동의 경비 아저씨에게 오늘도 큰 목소리로 "안녕하세요? " 하니 아저씨 여전히 뚝뚝한 목소리로 "네"하신다. 친절한 마음을 담고 진심을 담아 인사를 하면 그 마음은 빠르게 전염된다.

 나의 작은 한마디의 실천이 세상을 살만한 따뜻한 곳으로 물들이기 바라는 마음으로 오늘도 목소리를 높인다. "안녕하세요? 고맙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구르는 낙엽이 나를 보고 웃는다. 빨간 단풍 잎이 내게 눈인사 한다. 절정의 가을이 곱게 타오르는 오늘도 고운 하루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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