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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쁜손 Nov 28. 2021

작은 일상의 소중함.

한 해를 돌아보며

 아침에 마켓 컬리에서 문자가 왔다. 이벤트성 쿠폰이겠지 하고 별생각 없이 문자를 확인하는데,  내가 얼마 전 컬리에서 글라스를 받는 이벤트에 응모하고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그런데 그것이 당첨되었다. 무작위로 추첨해서 주는 것은 아니고 국내 베스트셀러 작가 김영하, 장류진, 김중혁, 김겨울 님의 일상 속 음식 이야기를 읽고 감상평을 쓴 사람들 중 선정해서 글라스를 주는 이벤트였다.

 상품이라고는 달랑 유리잔 하나 주는 것이지만 희소성 있는 세련된 디자인에 판매하지 않고 감상평에 당첨된 사람만 주는 것이라 나름 의미를 부여하니 신이 났다. 왠지 아침부터 기분 좋은 하루가 시작될 것 같다.


 벽에 걸린 새 달력의 첫 장을 떼어내니 2021년의 마지막 달 12월 달이 나온다. 캘린더의 배경엔 소복이 눈 내리는 밤의 풍경이 그려져 있다. 메마르고 황량한 겨울 속에 눈 내리는 날의 풍성함을 떠올릴 수 있어 마음이 따뜻해지며 미소가 지어졌다.

 

 항상 매해 이 맘 때쯤 되면 한 해를 보내는 아쉬움과 후회가 컸는데 올 해는 마지막 달을 잘 마무리하고 새해를 빨리 맞이하고 싶은 것을 보면 나름 작년보다는 나은 한 해를 보낸 것 같아 가슴이 뿌듯해진다. 우울증으로 마음의 부침이 컸던 내가 이만큼 평온하고 건강하게 생활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해서 스스로가 대견하고 기특하다.



 '올해는 어떤 선물을 준비할까?' 해마다 연말이면 수고한 나를 위해 작은 선물을 사는 것이 연례행사인데 작년엔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아 건너뛰었다. 1인 독거인의 삶이라 누가 챙겨 줄 사람이 전무하니 일 년 중 내 생일과 크리스마스 시즌 때 딱 두 번 힘들 때도 작은 물건 하나에 의미를 부여해 자축하였다. 재작년엔 갖고 싶었던 빨간색 티포트를 장만하여 지금도 잘 사용하고 있다. 비싸지 않고 꼭 필요하게 쓸 수 있는 것 중에 한 해  수고한 나를 위해 의미가 담긴 선물을 하고 싶은데 마땅한 게 떠오르지 않는다.


 며칠 새 거리의 화려한 가을빛이 회색 빛 겨울로 바뀌었다. 떠나가는 가을이 못내 아쉽지만 눈이 있어 포근하고 따뜻한 겨울이기에 반가운 마음으로 맞이한다. 머리를 맑게 하는 차디찬 공기가 내가 이 순간 살아있음을 실감케 한다.



 "엄마, 별일 없죠? 식사하셨어요?" 웬일로 동포 같은 뚝뚝한 아들이 일주일 사이 두 번이나 안부 전화를 걸었다. 지금 타일 기술을 배우는 아들은 수습생이라 살인적인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보조 일꾼이다. 늘 피로를 달고 사는 아들이 안쓰러워 아들만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했다. 처음 해보는 노동의 강도가 커서 쉬는 날은 밀린 잠을 자느라 내가 사는 집에 방문한지도 추석 때가 마지막이었다. 말로는 무심하다고 가끔 아들에게 투덜대고 너와 나는 모자지간이 아니고 그냥 동포라고 우스개 소리를 하면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껄껄 웃으며 너스레를 떠는 아들이다. 며칠 전 전화가 왔길래 올해 안에 볼 수 있을까 하고 물었는데 12월 중순 주말쯤 키우는 반려견, 귀염둥이 마루를 데리고 방문한다는 희소식을 전한다. 꾹꾹 눌러 놓았던 보고 싶은 마음, 그리운 마음이 턱밑까지 차오르며 눈가가 촉촉해진다. 


 "아들, 올해는 선물 안 사도 되겠다." 하며 웃으니 아들이 "무슨 선물?" 하며 의아해한다. "그런 게 있어. 네가 엄마한테는 큰 선물이네~ 고맙다. 사랑해! "



 생각해 보면 한 해 감사한 일들이 넘쳤다. 무기력하고 낮은 자존감으로 늘 생기 없던 내가 기쁨과 감사를 회복한 일은 내게 기적이었다. 상황은 달라진 것이 없지만 행복에 대한 민감도가 높아지니 저절로 작고 소소한 것들에 애정이 가고 기쁨이 넘쳤다. 물론 아직 미래에 대한 염려가 나를 가끔 흔들 때가 있지만 오래도록 무거운 불안과 염려에 나를 맡기는 대신 현실에서 내가 가진 것들에 대해 집중하는 긍정의 마음을 익혔다.

 스스로를 사랑하는 법을 터득하니 마음의 지옥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어제보다 오늘이 행복하니 다가오는 내일, 새해는 희망으로 기다려진다. 이 놀라운 변화는 한 해 글쓰기를 하면서 내 내면을 마주하면서 생긴 기적이었다. 황금 같은 3,40대를 무기력함과 미움으로 보낸 내게 50대의 오늘은 귀한 시간이었음을 21년이 저물어 가는 길목에서 고백한다.


 수고하고 애쓴 내게 주던 자축의 선물을 올 해는 고마운 가족들과 이웃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전해주고 싶다. 브런치의 모든 작가님과 구독자 분들에게도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다.

 당신들이 있어 행복한 한 해였습니다. 고맙습니다. 다가오는 새해엔 더 열심히 살 것을 약속드리겠습니다. 사랑합니다~~♡♡♡

 


 2021년 11월 28일 겨울의 문턱에서 예쁜 손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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