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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쁜손 Apr 08. 2022

소유와 관계는 슬림하며 알차게~


 오늘은 기쁜 소식을 들어 기분이 좋은 날이다. 얼마 전 폐에 생긴 결절로 조직검사를 한 친구가 있다. 친구한테는 별일 없을 거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했는데, 사실 결과가 나오기까지 마음을 졸이며 기도하던 중이었다. 아들을 위한 기도와 함께 또 갑상선 결절로 조직검사를 받은 친구의 기도와 더불어 매일 간절한 마음을 담아 오늘도 아침에 기도를 하고 오후에 나오는 지인의 검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동생네서 저녁을 먹고 집으로 돌아가니 오후 7시가 조금 넘었다. 4시 30분의 외래진료에서 이미 지인은 결과를 의사로부터 전해 들었을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이 복잡할 때 지인에게서 톡이 왔다. 다행히 종양이 악성이 아니라는 기쁜 소식과 함께 다음 주 한턱 쏘겠다는- 그녀와 점심을 같이 하기로 시간을 잡았다. 한시름 놓았다. 그녀와는 작년 가을 처음 만나 친구가 되었다. 마음 좋고 대할수록 카리스마 넘치는 그녀가 내 곁에 오래도록 노년까지 함께 했으면 바라는 마음으로 기도했다.

 내 나이 쉰여섯. 그녀의 나이 쉰일곱이니 기계로 쳐도 한참 중고라 여기저기 고장 날 때가 지금이 아닌가 싶다. 5,60대 암 발병률도 높다 하니 은근 나나 친구들이 아프다 하면 예민해지는 것은 내가 40 대 초반에 이미 암을 겪어서-그 과정이 만만치 않음을 잘 알기에-지레 걱정하는 부분도 사실 크다. 돌이켜 보면 그래도 상대적으로 젊을 때라 회복되기도 쉽지 않았나 싶다.



 사실 아직 나는 그녀, J에 대해 잘 모른다. 다만 내가 느낀 바로는 반듯한 사람. 지적이며 진취적인 사람. 그러면서도 나와 달리 오랜 직장생활로 나에게는 전혀 없는 카리스마가-조신한 이미지이지만 대화를 하다 보면-자연스레 느껴진다.  하긴 그녀가 맡은 조직의 팀장이다 보면 그건 꼭 필요한 덕목일 것이다. 이렇게 닮은 듯 다른 그녀는 브런치 작가라는 공통분모를 통해 인연이 되었다. 나야 맹탕에 허당 그리고 어리숙하고 게으르니,  나와는 다른 야무지고 부지런한 그녀가 아주 매력적인 사람으로 보이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그러면서도 배려심과 지혜를 갖췄으니 늦게 알게 된 친구지만 그냥 정이 가는 친구였다.

 

 친구가 많지는 않지만-성격상 두루두루 정을 주는 성격이 아닌데-왠지 정이 가는 사람한테는 의리와 신의를 지키는 나의 성향에 주위에 그래도 사람 냄새나는 친구들이 함께 하니 사람의 숫자가 중요한 것은 아닐 것이다.

 지금 이 나이에 바라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이 땅을 언제 떠날지는 모르지만 욕심이라면 나와 친구들이 크게 아프지 않고 살다가 비슷한 시기에 이별을 할 수 있다면 다른 소원이 없을 것 같다.



 "엄마, 별일 없죠? 김치볶음밥 하는데 엄마 생각이 나서 전화했어요." 하고 아들이 오랜만에 전화를 했다. 어깨가 아파 팔을 들기 힘들어 잔뜩 찌푸리고 있었는데 오늘은 이래저래 기분이 좋은 날이다. 무뚝뚝한 아들이 다정하고 부드러운 음성으로 내 생각이 났다고 하니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간다.

 '그래, 내가 힘을 내고 씩씩하게 살아야지. 저 녀석 자리 잡는 것도 보고... 내가 아파서 부담이라도 주면 안 되지... ' 속으로 되뇌며 아픈 어깨를 핑계로 자리에 누우려다 다시 일어나 천천히 스트레칭을 시작한다. 눈앞에 엄마와 동생과 아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약해진 마음을 다잡는다.


 밤은 깊었는데 정신은 초롱초롱 더 맑아지는 느낌이다. 이런저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꿈속으로 가려는 나를 방해한다. 억지로 잠을 청하려던 것을 포기하고 몰두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두리번거리다 옷장을 열었다.



 자정을 훌쩍 넘겼다. 날씨가 포근해져서 세탁소에 보낼 옷들과 버릴 옷 그리고 쓸만한데 잘 입지 않는 옷으로 나누고 옷장 깊숙이 모셔두고 1,2년 동안 사용하지 않은 가방이며 스카프 등을 꺼내 분류한다. 몇 년 전부터 해마다 아니 계절별로 사용하지 않는 것은 아낌없이 처분하면서 살림살이를 줄여왔다. 모르겠다. 어느 날 문득 내가 가진 소유물들이 내게 즐거움을 주기보다는 짐처럼 부담스럽고 과한 욕심처럼 느껴졌다. 언제고 떠날 준비를 하는 것. 혹시라도 갑작스레 내가 이 세상을 떠난 뒤 홀로 남을 아들이 나의 소유물을 정리할 때 짐스럽지 않게 평소 깔끔하게 해두고 싶었다.


  밤이 깊으니 생각은 더 많아지고 복잡해진다. 어디 물건뿐일까 주변에 사람도 코로나 덕에 자연스레 정리가 되었다. 계속해서 연락이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친구. 내 허물을 있는 그대로 봐주고 내가 행복하기를 누구보다 바라는 친구 몇 남았으나 전혀 허전하지는 않다. 지루하고 비생산적인 자리에 우두커니 앉아 주제넘은 조언을 듣거나,  사람의 가치를 그 사람이 지닌 소유물로만 평가하려는 참을 수 없는 가벼운 속물근성을 더 이상은 참고 듣고 싶지는 않다는 것이 나의 솔직한 심정이다.

 남은 인생이 얼마일지는 아무도 알 수 없지만 지금까지 살면서 분명히 깨달은 것은 시간은 참 빨리 흘러간다는 것. 앞으로의 삶은 되도록 좋은 것만 생각하고, 좋은 사람들과 삶을 나누고 싶은 것이 솔직한 나의 심정이다.


 꼭 필요한 것만 추리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지닌 물건에 하나하나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하면 정리하기 힘들다. 1년 동안 쓰지 않은 것은 앞으로도 사용할 가능성이 떨어진다. 한해 사용하지 않은 것은 과감히 처분해야 살림을 줄일 수 있다. 상태가 괜찮고 얼마 쓰지 않은 것은 친한 친구들과 동생에게 나눠주려 따로 정리했다.

 앞으로의 삶은 소유는 슬림하게, 관계는 만나면 편하고 즐거운 사람들로 알차게 꾸려가고 싶다. 잠이 안 온덕에 미뤄둔 숙제 같은 정리를 했다. 몸집을 줄였으니 사는 동안 건강하게 살 수 있게 몸과 마음의 근육을 키워야겠다.

 피곤해진 몸에 졸음이 몰려온다. 내일도 행복하고 편안한 날이 될 것이라 믿으며 눈을 감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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