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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쁜손 Apr 29. 2022

4월28일의 일기.


 아들이 지방 출장 가는 탓에 아들이 키우는 마루가 오랜만에 우리 집으로 와 내 차지가 되었다. 온순하고 착한 귀염둥이 견공이지만 거칠 것 없이 자유로운 나의 싱글 생활에 제동을 건 사랑스러운 녀석 때문에 2주를 갑자기 시집살이에 돌입했다. 제 주인인 아들이 없으니 나를 전적으로 의지하며 내가 가는 곳마다 껌딱지처럼 붙어 다닌다. 수시로 내 품을 파고드는 아기. 저녁마다 아들이 떠난 문을 향해 목을 빼고 아들을 기다리니-한낱 동물이지만 그 충성스러운 사랑에 가슴이 뭉클해 온다.


  며칠 째 불면증으로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11시 반쯤 눈을 감으면 어김없이 새벽 2,3시쯤 깨서  집안을 서성이는 게 꽤 오래되었다. 잠귀가 밝은 마루는 그때마다 내 곁에 함께 종종 거리며 나를 따라다녔다. 오늘도 깊은 한밤에 눈이 떠졌다.-내 옆에 딱 붙어 사람의 체온을 느끼며 잠든 마루가 내 움직임에 혹여 깰까 봐-가만히 누워 어두운 천장만 바라보았다.


 한참을 뒤척이다 보니 떠오른다. 아침 6시가 다 되어간다. 옷을 주섬주섬 입고 있으니 마루의 동그랗고 반짝이는 눈빛이 나를 향한다. 겉옷을 입고 마스크를 쓰니 내가 나가려는 것을 눈치챈 마루가 내게 매달린다. 오늘은 마루와 이른 산책길에 나섰다. 이른 아침의 쌀쌀한 기운이 발걸음을 재촉하지만, 밖으로 나와 한참 신이 난 마루의 걸음은-온갖 사물을 냄새로 더듬어 분별하랴 중간중간 가던 길을 멈추고-더디기만 하다.


 

 어느새 아파트 단지 내 철쭉꽃들이 화사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연녹색 나뭇잎들이 바람에 살랑거린다. 아름다운 계절, 봄이 이렇게 여물어 간다. 갑자기 마루가 뛰기 시작한다. 내가 쥔 목줄에 마루가 아플까 봐 덩달아 같이 뛰었다. 한참을 뛰던 마루가 멈춰서 나를 돌아보더니 내게 다가오더니 움직이지 않는다. 고집스레 주저앉아 움직이지 않는 마루를 보고 고개를 갸웃하다 주위를 둘러보니 지척에 동물병원이 있다. 혹시 내가 병원 쪽으로 향할까 나름 가기 싫다는 의사표현을 하는 마루의 영리함에 한참을 웃었다.

 요지부동 앉아 있는 마루를 안아 병원이 안 보이는 산책 코스로 방향을 트니 그제야 다시 경쾌하게 마루가 걷는다.


 집으로 돌아와 아침 식사를 준비한다. 토스트와 사과를 준비하고 마루에게는 사료와 얇게 저민 사과 몇 쪽을 아침으로 챙겨줬다. 마루가 제일 좋아하는 사과가 아삭 거리는 소리를 내며 마루의 입으로 넘어간다. 먹는 모습조차 사랑스러워 등을 쓰다듬고 가볍게 안아줬다.



 좀처럼 안부 전화를 하지 않는 아들에게 요즘은 부쩍 전화가 자주 온다. 강아지 아빠인 아들은 일을 하는 중간중간 두고 온 마루의 얼굴이 어른거리나 보다. 마루의 모습이 담긴 동영상을 찍어 보내주고 잘 지내고 있다고, 내가 충분히 사랑해 주고 있다고 걱정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아들의 답장 안에 환하게 이모티콘이 웃고 있다.

 

 요즘 불면으로 고생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어느 때보다 마음이 평안하다. 불안과 염려 대신 담대함과 행복함이 나를 감싼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으로 2년간 현장 예배를 참석치 못하고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렸는데... 얼마 전부터 다시 시작된 현장예배의 감동이 나를 순수한 어린아이 같은 신앙으로 회귀하게 만들었다.

 마루의 주인과 보호자에 대한 절대 충성과 사랑을 지켜보며 나도 새롭게 결심했다. 순전한 믿음을 회복하기 뜨겁게 갈망하며 진정 예수님 닮은 모습으로 살아갈 것을 다짐하니 마음에 평화가 찾아왔다. 이것은 위에서부터 내려오는 참된 평화일 것이다.

 

 지금도 내게 기대 잠이 든 마루처럼 크고 위대한 사랑의 주님께 나의 모든 것을 드리고 싶다. 사람은 이해의 대상일 뿐 믿음의 대상은 아님을 깨닫으며 마루와 있는 이 시간. 한낱 동물임에도 나를 100프로 의지하고 따르는 그 놀라운 절대 믿음에 내 신앙을 점검해 보는 귀한 하루임을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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