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예쁜손 Apr 05. 2022

꽃들의 축포로 4월을 열다.

오늘의 반성문.


 어제 산책길에서 봉오리 진 목련을 마주 했는데, 오늘 아침에 하루 사이에 활짝 핀 목련을 보고 얼마나 대견스러운지... 툭툭 꽃망울이 하늘을 향해 만개했다. 가던 걸음을 멈추고 카메라의 셔터를 눌렀다.  며칠 째 몸의 컨디션이 좋지 않아 마음까지 덩달아 쳐져 있었는데 아침 산책길에 마주한 화사한 목련이 나의 지친 마음을 어루만져 준다. 목련 꽃 사이에 비치는 하늘이 곱고 푸르다.

 아파트 단지 내의 양지바른 쪽의 벚꽃도 어느새 꽃망울을 터트렸다. 회색빛 마른 가지에 봄빛이 스며들어 연둣빛으로 물들어간다.

 

 햇살이 좋아 목련꽃 아래서 한참을 서있었다. 두터운 겨울 외투를 벗고 개나리 핀 담장을 끼고 부드러운 미풍과 향긋한 봄내음을 맡으며 길을 걷는다. 저만치 카페 '꿈꾸다'가 눈에 들어온다.

 명희 씨가 화사하게 웃으며 나를 반긴다. 창가 쪽 자리에 앉아 물오른 정원의 풍경을 보며 차를 마신다. 빛으로 가득한 정원이 곱게 봄을 담고 있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두근대는 사랑하는 연인, 나의 봄이 그렇게 올 해도 내 곁에 다가왔다.

 

 점심은 올해 초 30년 만에 재회한 중학교 동창 영주와 시간 약속을 했다. 한국 현대 추상미술 전시회가 열리는 잠실에 위치한 갤러리에서 만나기로 했다. 퀼트 강사이자 시니어 모델로 활동하는 영주는 에너지가 넘치는 친구이다. 30년의 공백을 무색하게 붙임성 있고 속 깊은 그녀와의 만남은 편안하고 잔잔하다. 우스갯소리로 우리 나이에 만나는 친구들 중 기피대상자는 만나서 자식들 자랑하는 친구들이라는데... 있는 척, 아는 척하는 친구였다면 한 번의 만남으로 그치고 말았을 것이다.

 

 인생의 후반기를 서로 응원해주고 격려해주는 친구. 친구의 아픔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위로해 주는 따뜻한 성품의 그녀라 만남이 편안하고 늘 기대되는 친구. 그녀를 다시 만난 나는 행운인 것 같다. 다른 단짝 지영인 얼마 전 취업이 되어서 아쉽게도 영주와 단둘이 식사 약속을 잡았다. 전시회장 앞에서 영주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반가움에 맞잡은 손을 가볍게 흔들고 가볍게 포옹했다. 백화점 내 작은 갤러리라 작품은 많지 않았지만 오랜만에 마음에 드는 작품 몇 점이 내 눈을 사로잡았다. 무수한 희고 검은 부정형인 무수한 점들로 이뤄진 작품 앞에서는 한참을 서서 바라보았다. 미술에 문외한이지만 내 눈길과 마음을 끄는 작품 앞에서 고요해지고 평온해지는 기적을 경험할 수 있으니-전문지식이 없더라도-그걸로 족한 것은 아닐까.



 내 사정을 알고 늘 밥값을 지불하려는 영주의 배려심에 고맙고 미안해 오늘은 영주 몰래 미리 밥값을 지불했다. 점심으로 능이버섯이 든 백숙을 주문했다. 진하고 기름진 백숙보다는 국물이 깔끔해서 입에 잘 맞았다. 백숙에 은은한 능이버섯향이 흡사 갈비탕 같은 느낌을 준다. 마늘과 능이버섯, 대추의 조합으로도 닭의 잡내를 말끔히 잡아냈으니 깔끔하고 맑은 국물의 닭백숙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삼계탕 대신 추천하고 싶은 메뉴이다.

 

 번잡한 시내의 찻집 대신 빛으로 일렁이는 나른한 오후의 도심 공원을 둘이 걷다 벤치에 앉았다. 포근한 날씨도, 군더더기 없는 담백한 친구도, 손에 쥔 따뜻한 커피 한 잔도 지금의 내게는 잔잔한 감동이었다. 이 모든 것은 내가 지금 살아있음에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어젯밤 통증으로 목숨이 내 것 인양 죽고 싶다고 되뇌던 나의 교만이 부끄러웠다.

 들에 핀 꽃들조차 모진 추위와 비바람을 불평 없이 견뎌내어 다시 새로운 봄을 맞이하거늘 나는 늘 작은 바람의 몸짓에도 불평하던 어리석음이 떠올라 부끄러웠다. 꽃이, 나무와 저기 보이는 산과 들이 지금 나의 스승이 되어 나를 꾸짖는다. 

 



 고즈넉한 나의 공간에 불을 밝혔다. 빛은 어둠을 삼켰다. 나의 애틋한 봄날 중 하루가 저물어간다. 오전에 보았던 만개한 목련이 집으로 돌아오는 반나절 사이 꽃잎이 지기 시작했다. 순백의 고운 꽃의 자태가 아직 생생하게 눈앞에 어른거리는데...   우리의 인생도 이 우주 속에서는 저와 같이 찰나일 것인데-아직도 내려놓지 못한 수많은 욕망과 집착을 덕지덕지 붙이고 무한의 삶을 살 것처럼 스스로를 괴롭히는 내가 얼마나 바보 같은지- 떨어진 목련 잎이 내게 나의 존재 역시 유한한 존재임을 일깨워준다.

 그냥 삶은 찰나일 뿐. 내게 맡겨진 소임과 역할을 충실히 다하고 때가 되면 무대 뒤로 사라지면 될 것이다. 가로등 불빛 아래 하얀 뭉개 구름처럼 목련 꽃이 어른거린다. 그렇게 잘 익은 봄밤이 간다.

 

 


 

작가의 이전글 건강하세요. 행복하게 오래 사세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