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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쁜손 Mar 31. 2022

건강하세요. 행복하게 오래 사세요.


 주위에 코로나 확진자들이 점점 늘어난다. 얼마 전에는 조카까지 확진되어서 동생네 식구들이 비상이 걸렸는데, 다행히 중3짜리 막내만 3일 꼬박 앓고 다른 식구들에게는 감염이 되지 않았다. 자주 소식을 주고받는 친구들도 연락이 뜸해지면 영락없이 코로나에 감염되어서 가볍게는 2,3일 심하게는 몇 주 후유증으로 힘들어하는 것을 종종 보게 되는 것이 요즘의 현실이다. 그러다 보니 언제든지 내게도 코로나라는 불청객이 나를 찾아올 수 있겠다는 생각에-조심 또 조심하지만 이제는 어느 누구도 걸리지 않을 거라는 확신보다는-내 차례가 언제일까 하는 두려움이 더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고 말았다.

 특히 나 같은 싱글, 독거인들은 아파도 마땅히 도움받을 곳이 없으니 가볍게 지나면 다행이지만, 주위 사람들마다 코로나를 경험한 고통의 지수가 제각각이니 어디를 기준으로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지 사실 잘 모르겠다. 최대한 동선을 짧게, 단순하게 하며 살고 있지만 나만 조심하기에는 코로나 유행 상황이 정점을 치닫고 있으니 어디를 가나 불안한 마음에 좌불안석이다.


 절친 S는 이틀 가볍게 앓고 지나갔다 하고 또 다른 L은 몇 주째 계속되는 기침에 가슴이 아플 정도라 하니 개개인의 건강상태나 백신 접종 후 생긴 항체, 면역력에 따라 극과 극을 달리는 증상을 보인다. 그렇다고 평소에 건강한 사람이라고 가볍게 지나간다는 보장이 없는 것이 코로나의 변덕맞은 심술이다. 


  

 노란 개나리가 아파트 담장 가득 수줍은 듯 고개를 내밀고 줄지어 피어있다. 하니의 개체로는 꽃이라고 표현하기엔 어설프고 초라한 행색이지만- 개나리의 진가는 군집해서 무리를 이룰 때 탄성이 절로 나오게 만드는, 발랄한 봄의 전령사로의 역할을 톡톡히 감당하고 있다.

 저만치 목련이 보인다. 반가운 마음에 걸음이 빨라진다. 잔잔한 바람에 투명하게 반짝이는 햇살이 눈부신 봄날. 꽃이 핀 자리마다 멈춰서 눈인사를 보내는 날. 온통 들판이 봄꽃들로 웅성이는 그런 날. 그 하늘 아래 내가 서 있다.


  동생의 시어머니이자 내게는 사돈어른이 손주의 코로나 완쾌 기념으로 밥을 사주신다고 동생네 가족과 나를 초대하셨다. 엄마가 요양원 가시기 전까지는 엄마랑 자주 사돈어른과 식사할 일이 많았는데 2년 만에 뵙게 되었다. 친정엄마보다는 두 살이 어린 어르신의 연세도 벌써 여든여섯이 되셨다. 어려운 자리일 수도 있겠지만 워낙 그동안 자주 뵙고 인사를 드렸던 관계라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어도 뵙고 싶은 마음에 흔쾌히 식사자리에 참석할 것을 수락했다.

 



 "어르신 안녕하셨어요? 건강은 어떠세요? " 저만치 제부의 차로 걸어오시는 사돈어른께 다가가  팔짱을 가볍게 끼고 인사를 드렸다. 예전보다 걸음걸이가 불편하신 듯 조금 비틀거리시길래 부축을 해서 차로 모셨다. 오늘은 손주, 내게는 조카인 유준이가 좋아하는 스테이크를 사주신다고 가까운 식당으로 향했다.

 

 음성과 안색 모두 변함없이 곱고 상냥하신 어르신인데 못 뵌 사이 걸음걸이가 많이 불편해지셨다. 어르신의 걸음 속도에 맞춰 식당 안 좌석까지 부축해드리고 외투는 받아 걸어 드리니 고맙다고 여러 번 인사하시는데, 마음이 짠하다. 워낙 활동적인 분이셔서 이곳저곳 다니시는 것을 좋아하셨는데 걸으시는 모습이 예전만 많이 못하시다. 나이 듦의 과정이 당연히 몸의 기능이 떨어져 가는 것이지만 친정엄마도, 사돈어른도 쇠락해 가는 모습이 내 마음을 아프게 만든다.

 접시에 당신 아들인 제부가 드시기 좋게 음식을 썰어 놓아 드리지만 요즘은 조금만 드셔도 배가 부르신다고 손사래를 치시며 사양하신다. 드시기 편한 음식을 골라 어르신께 권하고 오랜만에 만난 이모님처럼 스스럼없이 대해드렸다. 어르신들의 1년은 젊은이들의 시간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큰 변화의 시기일 수 있다는 것이 새삼 실감 나 마음이 씁쓸했다.


 

 오늘의 사돈어른과의 만남을 요양원에 계신 엄마에게 말씀드리니 최대한 예쁘게 하고 나가라던 엄마. 혼자 늙어가는 딸이 혹시라도 초라하게 보일까 신경 쓰시는 엄마의 맘이 느껴져 알겠다고 대답을 했다. 

 아직 미혼인 딸과 같이 지내시는 사돈어른과 이혼하고 다시 싱글이 된 딸과 지내던 친정엄마는 사돈 이기전에 편안한 친구처럼 자주 왕래하셨다. 사는 곳도 2,30분 거리의 지척이어서 가끔씩 만나 식사도 하시고 했었는데... 엄마의 급격한 건강 악화로 요양병원, 요양원에 입소하시는 바람에 나 역시 사돈어른을 뵌 지 2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아직 고우신 사돈어른을 뵙고 나니 엄마도 함께 이 자리에 계시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식사 도중 불쑥불쑥 올라와 나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어려운 사돈지간이기보다는 이모님 같은 편안한 어른의- 2년이란 길고도 짧은 시간 속에서-부쩍 쇠약해지신 모습을 마주 대하는 것은 그저 자연의 이치라고 담담히 여겨지기보다는 흐르는 세월이 너무도 야속하게 느껴졌다.


 건강하시라는 당부의 말씀과 가벼운 포옹을 끝으로 사돈어른과의 오랜만의 만남은 끝이 났다. 다음에 또다시 언제 뵐지 모르지만 강건하고 행복하시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손을 잡아드렸다.


 이 세상을 살면서 맺은 아름다운 인연들은 언젠 가는 헤어짐을 앞두고 있다. 당연한 이치이지만 오늘은 예견된 이별들이 가슴을 유난히 씁쓸하고 먹먹하게 만든다. 엄마에게도 살아계실 때 잘해드려야 되는데, 사는 것이 바빠 소홀할 때가 많으니 내 자식만 챙기기에 급급하다. 내리사랑이라는 변명으로 자식에 대한 걱정만 앞세우고 산 나를 그래도 엄마는 노심초사 애달프게 사랑하실 것이다.

 오늘 밤은 유난히 엄마에 대한 그리움과 미안함에 잠이 쉽게 오지 않을 것 같다. 적막한 밤의 공간에서 두 분 어르신이 남은 노년을 건강하고 행복하게 마감하시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사랑해요. 그리고 미안해요. 엄마, 평안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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