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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쁜손 Mar 21. 2022

봄은 가까이에...


 저녁에 마루와 아들을 서둘러 보냈다. 내일 다른 현장으로 이동해야 되는 아들은 다음날 새벽 5시에 기상해서 일터로 가야 한다. 잡고 싶은 마음 대신 빨리 집으로 가서 쉬라고 저녁을 먹이고 서둘러 보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마지막으로 내 품에 안기엔 너무 커버린 아들을 꼭 안아줬다.


  아이들이 며칠간 머물고 간 공간을 청소하고 정리하다 보니 이별의 슬픔이나 서운함보다는 덤덤한 고요한 마음이 드니 다행이다. 아들을 보낸 내 마음을 아는지 후드득후드득 제법 굵은 빗줄기가 떨어진다.

 집에 남겨진 마루가 좋아하는 작은 공을 손에 쥐고 마루가 공을 물고 내게로 뛰어 오는 모습을 떠올리고 한참을 웃었다. 마루의 지정석 내 무릎이 조금 허전하지만 고 귀염둥이의 갸우뚱하며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나를 빤히 바라보던 표정이 눈앞에 아직 생생하다.

 일찌감치 불을 끄고 누웠다. 허전함이, 쓸쓸함이 조금 느껴졌지만 내가 지금 순간 아이들을 위해, 나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아이들과 내가 행복하고 건강하기를 바라는-간절한 마음을 담은-기도일 뿐 일 것이다.



 밤새 쏟아진 빗소리에 이른 아침 일찍 깼다. 봄비답지 않게 세차게 겨울이 남기고 간 흔적을 지우는 비가 그렇게 추적추적 내린다. 어둑한 방안을 빛으로 밝히고 창가에 서서 비 오는 아침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창문을 열었다. 차갑고 축축한 기운이 느껴진다. 손을 뻗는다. 손으로 떨어지는 빗방울의 촉감을 느끼며 저 멀리 안개 자욱한 산을 바라본다. 귀를 열고 봄이 오는 소리를 듣는다. 봄이 오는 기척은 청각을 통해 먼저 다가오는 모양이다. 봄비 소리가 내 마음을 적신다.

 희망, 계절을 기다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고 그리고 수많은 기적들을 기다리는 삶을 계절에 비유해보면 봄이 제일 희망과 기대라는 설렘에 닮아있다. 난 그래서 봄이 가장 좋다. 희망을 꿈꾸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겨서 좋다. 나는 지금 봄이 오는 길목에서 꿈을 꾼다. 영원히 시들지 않을 희망을 노래하며 빗소리를 듣는다.

  



 오래전 터널 속에 갇혀 있던, 시들은 영혼의 내가 보인다. 젊음의 빛남은 그녀를 빛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트렸다. 모든 문제를 내가 아닌 그와 타인에게 돌려버려 더욱 아프고 상처받은 영혼. 그녀의 마음은 오래도록 겨울에 머물러 있었다. 봄이 오리라 믿지 못했던 그녀가 젊음의 뒤안길에서 이제 봄을 노래한다. 슬픔도 기쁨도 절망도 환희도 순간순간 지나는 감정에 불과함을-그렇기에 인생은 쉽게 낙담하지도 교만하지도 않아야 된다는 것을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나를 찌르고 상처 내던 예민함이 세월에 무뎌져 더 이상 나와 타인을 아프게 하지 않으니 세월의 흐름은 내게 축복이었다. 거울 속의 나를 들여다본다. 편안한 미소의 여인이 나를 그윽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아침에 햇살이 눈부셔 눈을 떴다. 또 다른 하루가 나를 깨운다. 어제의 차분하고 가라앉은 마음이 햇볕에 잘 마른 옷처럼 기분 좋게 뽀송해졌다. 커피포트에 물이 끓는다. 잘 구워진 토스트에 커피 한 잔을 곁들여 양지바른 곳에 앉아 아침식사를 했다. 하늘도 맑은 하늘색에 투명하다. 실내에서 바라본 바깥세상은 완연한 봄이다. 외투를 입고 산책길에 나섰다.

 



 밖으로 나오니 온통 빛이 나를 감싼다. 쌀쌀한 날씨가 무색하게 햇살은 차고도 넘친다. 빠른 걸음으로 햇살 아래 땅만 보고 걷다 보니 바닥에 작은 매화 꽃잎이 하나 떨어져 있다. 가던 길을 멈추고 하늘로 길게 뻗은 매화나무를 올려다본다. 하얀 꽃들이 수줍게 피어 있었다. 어느새 봄이 내 옆에 다가왔다. 대견하고 고마운 마음을 담아 막 피기 시작한 매화꽃들을 본다. 무심한 바람 한 점에 일찍 떨어져 버린 꽃잎을 주워 가만히 손바닥에 올려놓았다.  작고 여린 하얀 꽃잎이 노랗고 투명한 빛 아래 반짝인다.

 살아있음에, 오늘 이 순간 여기 내가 있기에 맛볼 수 있는 황홀한 봄을 떨리는 가슴으로 맞이한다. 매번 나를 찾아오지만 같은 듯 다른 설렘으로 봄을 안는다. 매 순간 마지막인 것처럼...


 다시 길을 걷는다. 꿈꾸듯 화려한 봄날을 동무삼아 외롭지 않게 봄빛 세상으로 걸어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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