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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쁜손 Mar 15. 2022

초보 집사의 반려견 첫 산책길.


 어제저녁 독립해서 살고 있는 아들한테 전화가 왔다. 내 의사와 형편은 묻지도 않고 두, 세 시간 뒤 집으로 와서 일주일간 우리 집에서 지낸다고 한다. 타일 공인 아들이 이번 주 일할 현장이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 얼마 안 걸리는 곳이라고 한다. 언제든 환영하는 반가운 아들이지만 아들이 키우는 반려견 마루를 일주일 동안 돌본다 생각하니 걱정이 앞선다. 

 나에게 아들이 부여한 미션은 매일 마루 산책시키기. 겁이 많고 비위가 약한 내가 강아지의 배설물을 치우고, 뽀뽀도 하는 경지에 도달한 것은 순전히 아들이 사랑으로 입양한 우리 가족이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사실 반려동물에 별 관심이 없던 내가-아들이 단지 사랑하는 존재라는 사실만으로 나 역시-마루에게 콩깍지가 씌어 버릴 줄은 예전엔 미처 몰랐다.


 늦은 밤에 들이닥친 부자가 나를 들뜨게 한다. 마루는 나를 기억하고는 꼬리를 흔들고 폴짝폴짝 뛰며 반가움을 표현한다. 마루를 번쩍 들어 안고 보니 아들에게는 잘 왔다는 인사도 없었으니- 아들이 혹여 섭섭할까 표정을 살펴보니 "마루가 엄마를 좋아하네." 하고 싱글벙글 웃는다.



 아직 채 어둠이 가시지 않은 오전 5시 40분에 아들을 깨웠다. 이른 아침부터 작업을 시작한다는 아들에게 아침밥을 차려서 먹이고 엘리베이터 앞까지 배웅을 나갔다. 오늘도 안전운전, 안전 작업하기 바란다는 내 말에 아들이 알겠다고 손을 번쩍 치켜들고 엘리베이터 속으로 사라졌다.

 

 조금 더 잠을 청하려 누우니 마루가 내 곁으로 바짝 다가와 눕는다. 녀석의 등을 쓰다듬다 둘 다 잠이 들었다. 햇살에 눈이 부셔 잠이 깼다. 곤히 잠든 마루를 깨우지 않으려 한동안 가만히 누워있었다. 생명을 돌보고 책임진다는 일이 쉽지 않음을 아들도 마루를 돌보며 깨닫았을 것이다. 늦은 저녁 일이 끝나고 녹초가 된 상태에서도-하루 종일 주인만 기다리고 혼자 집을 지켰을 마루가 가여워- 산책은 꼭 시켜준다고 하니 둘 다 모두 측은하기 짝이 없다. 지난 1년 동안 타일 일을 배우며 10kg이 빠진 아들의 얼굴이 핼쑥해서 내 마음에 바위 덩어리 하나 얹어진 듯 무겁기만 한데, 아들은 괜찮다고 나를 위로한다. 어서 시간이 펄펄 지나가서 지금의 순간을 우리 모자가 웃으면서 이야기할 날이 오면 좋겠다.



 아침 먹은 설거지를 하고 아들이 부탁한 마루 산책을 시키기 위해 옷을 입었다. 가방에 물티슈 하나, 배변용 비닐 하나, 일회용 장갑과 마루 물을 챙겨 어깨에 크로스로 매고 마루에게 목줄을 걸어 주고 집을 나선다. 마루와의 첫 산책길. 내가 천방지축 요 어린 강아지를 무사히 산책시킬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심호흡을 크게 하고 한 손으로 쥔 목줄이 마루에게 불편하지 않게 적당히 길이를 조절하고 마루 뒤를 따른다. 경쾌하게 걷는 솜뭉치 같은 마루가 깨물어 주고 싶을 만큼 귀엽다. 생각지 못한 선선한 기운에 금세 마루 옷을 입히지 않고 나온 것을 후회했다. 그래도 기온이 요즘 포근한 편이라 걷고 뛰다 보면 괜찮을 것 같아 집으로 도로 들어가지 않았다. 


 잠시 집 앞에서 산책 코스를 어떻게 잡을까 고민하고 서 있는데, 성격 급한 마루가 앞장서 뛰다시피 걸으니 내가 자연스레 마루가 가는 방향 쪽으로 딸려간다. 갑자기 마루가 뛰기 시작한다. 건너편 지나가는 다른 강아지를 보더니 좋다고, 반갑다고 도로를 가로질러 건너려는데 차가 온다. 힘껏 목줄을 잡아당기니 우리 마루가 낑낑댄다. 놀란 마음 뒤로 미안한 마음이 몰려와 살짝 품에 안고 길을 건너니 내려 달라 버둥댄다.

 원래 목적한 코스는 동네 과일가게, 마루가 좋아하는 사과를 사러 가려했지만 차도를 많이 지나가는 길이라 초보 집사인 나한테는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이다. 사과보다는 마루의 안전이 중요하니 사과는 아들이 퇴근할 무렵 나 혼자 다녀와야 할 것 같다.

 그렇다면 명희 씨 카페까지 가서 돌아오는 길을 택하는 것이 비교적 무난한 코스이다. 커피도 사 올 겸 마루랑 햇볕을 즐기며 방향을 틀었다.



 어제는 봄비가 내렸는데 오늘은 날씨가 화창하다. 매일 가는 산책길을 오늘은 동행하는 견공과 함께 한다. 나 혼자 걷다 보면 주위의 자연을 살피며 천천히 걷게 되는데, 오늘 마루와의 산책길은 오로지 마루와 땅만 보고 걸었다. 주위를 살피는 것은 혹시 가까이 다가오는 차가 없을까 살피는 정도. 걱정 많고 소심한 내가 혹시 마루를 잘 챙기지 못할까 노심초사하면서 목줄을 쥔 손에 잔뜩 힘이 들어간다. 행여 내가 쥔 줄로 마루가 아프고 불편할까 염려는 되지만, 안전하게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나의 임무니 그 맡은 소임에 충실하려고 바짝 긴장한 채 걷는다.


 어, 마루가 갑자기 뛰기 시작하니 나도 덩달아 헐떡이며 뛴다. 뛰는 마루의 목줄을 갑자기 당기면 녀석이 많이 아플 것 같아 부지런히 영문 모르고 뛰어가는데 또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화단과 잡초 사이에 얼굴을 묻고 한참을 킁킁거린다. 작은 잡초의 마른풀들이 여기저기 마루 얼굴에 묻어나니 그 모습을 보고 웃음이 터진다. 인도 위의 겁 많은 참새들이 경쾌한 마루의 걸음걸이에 화들짝 놀라 날아가 버린다. 마루가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눈으로 참새를 바라본다.

 

 저기 명희 씨 카페가 보이니 얼마나 반가운지...  카페 꿈꾸다에서 돌아 다시 집으로 향하려는데 창문에서 나를 본-카페 꾸다에 가끔 아르바이트로  나오는 -인욱 씨가 나를 알아보고 밖으로 뛰어나와 나와 마루를 반겨준다. 급하게 커피 한잔을 주문하고 카페 앞에서 기다리는데 마루가 그 기다리는 사이를 못 참아 어서 가자고 낑낑거린다. 산책길에서 마루에 끌려 다니는 나의 연약함에(?) 인욱 씨가 빵 웃음을 터트린다. 그녀가 모처럼 온 아들과 먹으라고 마카롱 두 개를 커피와 함께 선물로 내민다.


 

 마루와의 첫 산책은 우여곡절 끝에 무사히 끝마치고 돌아왔다. 넘치는 에너지를 발산한 마루가 지금 내 발밑에서 곤하게 잠이 들었다. 강아지도 꿈을 꾸는 것일까. 연신 꽁꽁, 크르륵, 낑낑거리며 잘도 잔다. 육아를 졸업한 지 몇 년 만인지 까마득한 옛이야기인데 꼭 아기를 키우듯 노력과 정성이 필요한 것이 반려 동물을 키우는 일 아닐까. 사람만이 가족의 범주로 국한시켰던 내 편협함이 아들의 입양한 어린 생명으로 인간과 종이 다른 생명이지만 역시 가족이 될 수 있음을 깨달은 시간이었다.

 

 아들이 고된 노동의 일터에서 돌아왔다. 잠에서 후드득 깬 마루가 아들의 곁에서 맴돌다 두 발로 폴짝폴짝 뛴다. 열렬한 애정공세에 무뚝뚝한 아들이 활짝 웃으며 마루와 진하게 포옹한다.

 어느새 해는 저물어가고 구수한 된장찌개가 뽀글뽀글 끓는 저녁. 오늘 하루도 무사한 아이들과 일상이 나를 행복하게 한다.

  마루가 새근새근 아가처럼 잘도 잔다. 곤하게 달게 자는 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웃음이 난다. 오늘 산책길 마루의 눈으로 본 세상은 어떤 세상이었을지 갑자기 궁금해진다. 잠자는 마루의 모습을 카메라로 열심히 담고 있는 아들. 그 둘을 바라보는 내가 마음속으로 기도한다. 건강하기를, 그리고 우리가 오래오래 함께 하기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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