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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쁜손 Mar 09. 2022

봄은 프리지어 꽃 향기와 함께


 빛으로 가득한 3월이다. 한층 충만한 봄볕이 대지를 가득 채우고 있다. 차가운 바람도 양지에 서면 힘을 잃는 계절, 겨우내 기다리던 계절 봄이 왔다. 동향인 우리 집에 이른 아침부터 해가 길게 들어와 나의 단잠을 깨운다. 눈부신 햇살을 맞으며 기지개를 켠다. 일찍부터 톡이 왔다. 가끔 안부를 묻는 Y에게서 통화 가능하냐는 문자가 왔다. Y와는 주로 이른 아침에 통화를 한다. 새벽형 인간인 그녀의 하루는 일찍 시작된다. 어젯밤 잠을 설친 탓에 피곤하지만 반가운 마음에 전화를 걸었다.


  Y의 목소리가 잔뜩 들떠있다. 1년 만에 기관사로 배를 타는 아들이 집으로 돌아온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려준다. 기다림의 시간을 나도 알기에 내 일처럼 같이 기뻐해 주었다. 정박 중인 배에서 자가격리가 끝나는 대로 그녀를 보러 온다는 Y의 든든한 맏아들이 마치 내 아들처럼 대견하다. 오랜 시간을 해상에서 생활하는 것이 그 아이의 일이지만 얼마나 갑갑하고 외로울지 미루어 헤아릴 수 있으니 나도 항상 마음이 아펐다. 고립감도, 고된 일도 다 이겨내고 고국으로, 엄마품으로 건강하게 돌아오는 그를 생각하니 내 마음이 덩달아 흐뭇해졌다.


 나를 자매처럼 챙기는 Y가 환절기에 꼭 필요한 것이라고 종합비타민을 선물로 보낸다고, 잘 챙겨 먹으라고 한다. 혼자서 아프면 서러우니 식사도 꼬박꼬박 챙겨 먹으라고 사랑의 잔소리를 한다. 알겠다고, 고맙다고 그녀의 나를 향한 걱정과 염려가 담긴 사랑의 말을 가만 듣다 보니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나와는 달리 풍족하고 여유로운 집안의 여섯째 딸로 고생을 모르고 온실 속 화초 같은 삶을 산 Y는 대학 선배와-친정엄마의 반대를 무릅쓰고-결혼을 했다. 부모님께 순종하던 수더분한 그녀는 극심한 반대를 이겨내고 사랑하는 사람을 선택했지만 어른들의 우려처럼 그 결혼은 순탄치 않았고 몇 년 전 이혼을 했다. 살아온 배경은 전혀 다르지만 교회의 같은 목장 식구로 서로의 삶을 나누다 보니 가까워졌다. 때론 언니처럼 때론 친구처럼 다정하게 나를 챙기는 고마운 지인이다. 막막하고 두렵고 외로운 삶 속에 그나마 다행히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많아 내가 그나마 이렇게 용기를 내며 살아갈 수 있는 것 같아 감사하다. 받기만 한 사랑을 이제는 나도 다른 사람들에게 흘러 보내는 삶을 살아야 하는데... 여전히 사랑에 빚진 자로 살고 있으니 부끄러울 뿐이다.


 오늘도 명희 씨 카페에 첫 손님으로 들어섰다.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고 햇빛이 잘 드는 창가에 자리를 잡았다. 창틀 위에 노란 프리지어 꽃다발이 내 눈으로 들어온다. 상큼한 봄의 전령사 프리지어. 꽃 중에 내가 제일 좋아하는 꽃이다. 하루를 행복하게 열 수 있는 공간에 그윽한 커피 향과 수줍은 듯 웃고 있는 프리지어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무슨 말이 필요할까. 첫사랑을 마주한 느낌. 그렇게 봄은 내게 다가왔다.

 



 스무 살의 봄, 처음 남자 친구에게 꽃을 받았다. 새침데기 소녀가 활짝 웃는다. 머쓱해하며 내게 꽃을 건넨 소년도 웃는다. 아득한 기억 속에서도 추억은 환하게 빛난다. 강산은 여러 번 바뀌었지만 그 후 내게 봄의 시작을 알리는 꽃은 프리지어가 되었다. 노란 꽃망울이 나를 보고 웃는다. 잘 살았다고, 애썼다고 나의 어깨를 두드리며 나를 위로해준다. 매해 같은 듯 다른 모습으로 찾아오는 생명의 계절에 새로운 희망을 품어 본다. 나의 소망도 언젠가는 싹을 틔우고 꽃으로 피어날 것이다.

 

 행복을 찾아 먼 길을 떠났지만 정작 행복은 내 마음속에 있었음을, 파랑새는 내가 손을 뻗으면 만질 수 있는 가까운 곳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이제는 알 수 있다. 넘어지고 깨지고 다시 일어서는 겨울이 있었기에 이 평온하고 잔잔한 봄이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까닭이다.

 눈을 들어 창밖의 거리 풍경과 먼산을 본다. 시시각각 봄빛으로 물드는 사람들과 자연이 한데 어우러져 노란 프리지어 빛깔을 닮아가고 있다.


 그렇게 올 해도 고대하던 봄이 프리지어와 함께 찾아왔다. 쉬흔 여섯 번째 맞이하는 봄. 앞으로 얼마나 노란 희망의 빛을 볼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매번 마지막인 것처럼 뜨겁게 맞이할 것을 나는 안다. 지금의 내가 맞이하는 시간은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한 번뿐인 현재임을 알기에 난 오늘도 뜨겁게 봄을 맞이한다.

 어느새 내 안도 물빛으로 출렁이기 시작했다. 생명의 물이 오른 내가 노란 프리지어를 꿈꾸듯 본다. 따뜻한 햇살아래 내가 꽃같이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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