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연휴를 끝내고 다시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왔다. 오전 일찍 카페-늘 익숙한 자리에 앉아 창밖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마른 작은 잎새 하나가 느리게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진다. 가슴이 낮게 쿵하고 떨어진다. 오헨리의 마지막 잎새란 책이 생각나는 아침이다. 전업주부에게 긴 명절 연휴는 강도 높은 노동의 날들이지만 무사히 육체의 피로나 감정의 쓸데없는 소모 없이 지난 것에 감사 기도를 드렸다.
육 남매의 맏이인 남편과의 재혼을 나는 대가족으로 힘겹게 노동을 치러야 할 것이라 감히 짐작도 못했다. 부모님은 오래전 다 돌아가신 상태고 요즘 같은 시대에 스무 명이 넘는 가족들이 한 집에 모여 음식을 나누는 정경은 그리 흔한 풍경은 아니기에 간과했었다. 모여도 흔히 외식하고 그 자리에서 헤어지는 풍습으로 아니면 긴 연휴에 여행으로 쉼을 선택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에 비해 남편은 완고하고 가족(여기에서 아내는 제외한), 형제들은 거의 우상에 가까우니 나의 고단함을 나와 같은 입장을 지닌 아내, 어머니들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바뀌기 기다리는 것을 기대하는 어리석음은 예전에 버렸고 이왕 치러야 할 내 몫의 일이라면 즐겁게, 적극적으로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소극적인 태도는 버리고 내가 주도하에 음식을 나누어 해 올 것을 부탁하고 서, 너 가지 메인 요리를 준비했다. 연휴 전날부터 아이들이 손녀(남편 소생의 아이들)를 데리고 와 북적함을 더 하고-내 소생의 아들은 대가족 속에 매번 우두커니 앉아 벌 서는 모습에 측은해 연휴 중간에 따로 아침 식사와 차를 곁들인 데이트를 했다.
다행히도 화요일까지 이어지는 손님 접대에 약골인 내가 지치지 않고 이만한 컨디션을 유지한다는 것 너무 감사해서 수시로 감사기도가 쏟아져 나왔다.
아주 오랫동안 가족이란 단어와는 화해하지 못하고 서툴게, 어색했던 내가 다시 가족. 그것도 요즘 같은 핵가족 시대에 맏며느리, 형수 노릇과 새로 얻은 세 아이들에게 친정 엄마 노릇을 하리라곤 왜 미처 생각 못했을까... 부모님의 부재, 친모의 생존과 아이들의 가깝고 두터운 친밀도가 세세하게 내게 주어질 새로운 임무를 알아채지 못했다. 철저히 나의 불찰이니 누구를 탓할까...
다행히 딸 둘은 성격이 무뚝뚝해도 나와 대화가 잘 통하고 종종 내 진심을 알고 감사를 표하니 그저 고마울 뿐이고 큰 아들은 조금은 데면데면 하지만 나도 살갑지 않은 아들을 키우다 보니 이해 못 할 것도 없었다. 다만 나를 제일 이해해 주고 아껴주고 배려해 줘야 하는 남편과의 다름의 차이가 너무도 커서 나의 재혼 생활은 고백건대 순탄치 않게 진행 중이다.
누구를 탓할 수도 없는 나의 결정에 오롯이 그 책임은 나의 몫이어서 지금도 고군분투하지만 사람이 아직 덜 익어 불쑥불쑥 올라오는 남편에 대한 서운함과 불만을 마주하며 예수님의 사랑을 떠올리는 아침이다. 현재 나를 괴롭히는 단어는 '옹졸함'이다. 믿음은 자라 가는 것인데, 매번 사랑이 부족해 고민하고 괴로워하는 내가 언제쯤 좀 너그러워질 수 있을까? 얼마나 많은 훈련을 통해 더 나은 사람, 더 나은 어른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고민하는 오늘이다.
부디 나의 바람대로 깊이 있고 너그럽게 나이 먹어 가는 날이 오길 기도하고 또 기도하는 그런 날이다.
비 오는 가을날. 낮잠 자기 좋은 날이다. 잠시나마 무념무상의 시간을 갖으러 침대에 눕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