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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북이 쌓인 마음의 먼지를 쓸어내며...

by 예쁜손


가을의 정취를 느낄 수 없게 연휴 내내 비 그리고 비... 연휴 지나서도 흐린 날씨 때문에 파랗고 드높은 가을 하늘을 보기 어려웠는데... 드디어 오늘 푸르고 높은 하늘 위로 하얀 뭉실한 구름이 떠다니는 것을 보니, 오랜만에 마음이 벅차올랐다. 게으르고 별다른 취미 없이 혼자 노는 것을 즐겨하는 내게 하늘 위에 떠다니는 구름을 보며 시시각각 달라지는 모양으로 사물을 유추하는 취미가 있다. 별 걸 취미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내 방 침대에 누워 하늘을 보며 구름이 떠다니며 바람의 방향을 따라 멋진 그림을 그리는 것을 보면 참으로 신기하고 아름답기 그지없으니 무언가에 홀린 듯 참 시간이 빠르게 흘러간다.


분주한 아침 시간을 보내고 남편의 출근과 더불어 내게 자유와 해방의 시간이 주어진다. 옷을 부리나케 입고 단골 카페로 달려간다. 커피 한 잔 시켜 놓고 화창한 가을날을 만끽하니 모든 스트레스가 다 사라지는 것 같다. 매일매일 하루를 보내고 아침을 맞이하면-늘 닦고 청소하는 집이나 내 마음이나 매한가지 여러 가지 먼지들로 덮여 있으니 진저리가 날만도 한데... 그래도 반짝반짝 닦고 다듬으면 하루는 가는 그 맛에, 아니 내 마음에 아직 남아 있는 사랑과 이해라는 너그러움이 혹여 먼지에 가려 보이지 않을까 치우기를 반복하는 것을 누가 알 수 있을까...


백조가 우아하게 강물 위에 그림처럼 떠 있을 때 물아래서는 분주히 움직이며 헤엄치는 것처럼- 사람들이 보는 내 겉모습은 평안하고 잔잔하지만- 나의 내면은 분주한 뜀박질의 연속이라 아름다움 앞에 오랜만에 마주하고 서니 쉽게 센티해지고 눈물이 핑 돈다.



재혼의 장점은 무엇이고 단점은 무얼까 곰곰이 생각하며 나를 돌아보고 있는데, 딸이 보내준 동영상이 휴대폰에 뜬다. 얼마 전 돌 지난 손녀에게 요즘 아가들에게 필수아이템이란 아기용 1인용 의자를 사서 보냈는데, 손녀가 너무 좋아한다면서 딸이 의자에 앉아서 웃고 있는 귀염둥이 영상을 내게 보냈다.

안구정화라고 했던가. 참 아기들은 예쁘다. 강아지도, 새싹도 모두모두 갓 난 것은 우리의 마음을 흐뭇하게 하는 마력이 있다. " 맞다. " 아들밖에 없는 내게 새롭게 생긴 딸들. 같은 동성 간, 금성인의 만남. 화성인인 남편을 향한 험담을 실컷 하다 보니 막힌 속이 뚫린다. 나의 수고와 최선을 다하는 것을 알아주고 안쓰럽게 여기고 응원해 주는 딸이 생겼으니 이 또한 얼마나 큰 축복인가...


아직 큰딸은 나를 어머니라 부르지는 않지만 "우린 이제 가족이에요. 착하고 애교 많은 엄마가 생겨서 좋아요. "하고 톡의 말미에 감사 인사와 더불어 나를 토닥인다.


'그래 사람은 영적인 존재라 가식과 진심을 구분하고 내가 그녀에게 사랑으로 대한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언젠가는 무뚝뚝한 무쇠 같은 남편도 나의 최선을 알아주지 않을까 생각하다 무심코 한 생각이 스친다. 남편이 원하는 것과 내 최선이 다른 것은 아닐까... 하루에도 수 백번을 그만두자. 때려치우자. 외치는 나를 다독이던 내가 무언가로 크게, 세게 머리를 얻어맞은 듯 멍하니 한동안 우두커니 서 있었다.


나는 오늘도 기도한다. 세상이 줄 수 없는 위로부터 내려오는 참 평안을 위해, 그리고 넉넉한 사랑을 내게 주시길 기도한다. 가까운 사람을 아끼고 사랑하고 존중하는 미덕을 그에게 바라기보다는 내가 먼저 손 내밀고 내가 먼저 사랑할 수 있는 용기를 주시길...


내일이 오면 여전히 하루 동안 쌓인 마음의 먼지를 먼저 털어내고 난 하루를 시작할 것이다. 여전히 오전에 커피를 마시고 하늘을 보고 몽실한 솜털 같은 구름에 감탄하며 그렇게 늙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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