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의 첫날밤. 동생의 급한 전화를 받고 병원 응급실에 도착한 시간은 밤 12시 40분을 가리킨다. 혈압이 50,30으로 요양원에 계시던 어머니가 의식 없이 응급실에 실려오셨다. 응급실 대기실에 제부와 오빠, 조카들이 무거운 표정으로 앉아있다. 그 무게감이 내게도 전해져 묻지 않아도 위기의 순간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보호자 1인만 응급실 내부로 들어갈 수 있는 규정 탓에 대기실에서 한참을 동생을 기다렸다.
고개를 숙이고 입술이 바짝 타들어가는 얼마의 시간의 흘렀을까... 동생이 다가왔다. 음식물이 기도로 잘못 들어가 생긴 흡인성 폐렴에 패혈증 쇼크로 다급하게 119에 실려 오신 어머니. 한참의 처치 끝에 담당의가 가족들 모두를 불러 상황을 설명한다. 낮은 혈압을 상승시키는 연명치료 외에는 하지 않겠다고... 워낙 고령이시라 중환자실에서 버틸 수 없으실 것이라고 의사는 마음의 준비를 해두시라 말씀하신다.
새벽이 되니 다행인 건지 불행인 건지 고통에 일그러진 엄마의 표정이 통증의 강도를 충분히 느끼게 해 준다. 눈물에 시야가 뿌옇다. 한 고비가 지나간 것인지 하루 지나 병실로 옮기고 며칠째 투병 중이시다.
그날 이후 내 삶은 지상에 발을 못 붙이고 허공 중에 붕 뜬 상태로 지내고 있다. 헌신의 아이콘- 사랑하는 엄마이지만 거의 7,8년 동안 누워 계신 상태로 얼마 전 음식 공급을 위해 비위관까지 삽관하신 그 가혹한 현실에 날마다 좋은 날, 평안하게 고통 없는 천국으로 가시길 소원하는 기도를 지속적으로 했다. 의식 없는 엄마의 얼음 같은 찬 손을 꼭 쥐며 " 엄마 먼저 천국 가서 기다리세요. 저도 꼭 따라갈게요. 그곳에서 만나요." 하며 울부짖었다.
' 아직 보고 싶은 사람들이 있으신 걸까?' 가수면 상태로 눈을 꼭 감고 24시간 대부분을 견디고 계신 어머니는 손주들과 우리와 조카들이 엄마를 부를 때마다 반쯤 눈을 뜨시고 눈을 깜박이며 반응하신다. 엄마의 백발이 된 머리카락과 이마와 얼굴을 쓰다듬으며 손을 쥐고 부지런히 말을 건넨다. 고통에 가끔씩 경련을 일으키는 깡마른 몸이 들썩인다. 가까스로 버티고 있는 내가 스르르 허물어진다.
우리는 매 순간 이별을 경험하며 성장하지만, 매번 이별은 아프다. 더군다나 혈육과의 이별은 준비한다 해도 상상을 초월한 고통이다. 엄마를 위한 기도와 내가 잘 견딜 수 있기를, 무너지지 않기를 하루에도 수십 번 중얼거리며 나는 밥을 먹고, 집안일을 하고, 그리고 잠을 잔다.
일찌감치 엄마와 정서적으로 분리된 나이지만 작고 뼈만 앙상하게 남은 어머니를 보며 죽음의 과정이 너무 어렵고 힘든 것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느끼며 지금 겪고 있는 나의 고통들이 상대적으로 가볍게 여겨진다.
고통은 늘 주위에 존재하며 연약한 인간을 삼키려 때를 보고 삼키려 한다. 비슷한 무게로 닥치는 고통은 없다. 매번 새롭고 무겁고 버겁다. 안간힘을 쓰며 주 아버지의 손을 잡는다. 나와 어머니에게 세상에서 느낄 수 없는 평안을 주시기를, 그 은혜를 받기를 소망하며 나는 또 오늘을 무심하게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