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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쁜손 Dec 03. 2020

오늘만 살래요~~

 세상을 살다 보면 미래에 대한 걱정을, 대비를 안 하고 살 수 없다. 하지만 내가 해결할 수 있는 범위 내의 일이 아니면 그 밖의 일은 말 그대로 쓸데없는 걱정이다.

 나는 염려가 많은 사람이었다. 염려는 두려움을 고 두려움은 결국 절망을 낳아 희망을 송두리째 뿌리 뽑고 말았다.

 나는 살기 위해서는 삶에 대한 태도를 새롭게 모색해야만 했다. 그러나 그 과정은 쉽지만은 않았다.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겪은 후에야 비로소 안정과 감사를 찾을 수 있었다.


 새해가 시작되면 항상 준비하는 것이 가계부와 다이어리다. 다이어리는 한 해가 끝나갈 무렵에도 늘 나와 동행하는데, 가계부만은 길어야 두, 세 달을 못 넘기고 책상 구석에 쳐 박히곤 했다.

 핑계 없는 무덤이 없다고는 하나 결혼생활을 유지할 때는 아이 아빠가 열 번이 넘는 이직과 세 번의 사업 실패로 호시절은 가뭄에 콩 나듯, 아니 눈 씻고 찾아보기 힘들었고... 이혼 후에는 아픈 몸으로 돈을 벌자니 시간제 알바 자리였고... 손에 쥐는 건 푼돈이었다.

 그러니 매번 적자일 수밖에 없는 가계부는 작심삼일, 얼마 못가 자취를 감추고 말았던 것이다.


 내 또래의 친구들은 이미 안정기에 접어들어 노후를 준비하고 있는데 나는 모아놓은 돈도 없고 내 몸 누울 방한칸 없어 친정집에 얹혀살고 있으니 

아무리 머리를 굴려보고 가계부를 써봐도 희망은커녕 암담한 현실과 절망만 나를 찾아왔다.

 미래는 내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내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나를 짓누르는 거대한  괴물과도 같았다.

 하루하루 힘이 빠졌다. 당장 1년 후 아니 5년 후 더 나아가 10년 후의 삶을 생각해 보면 앞이 캄캄해졌다.


 괜스레 걱정으로 가슴앓이를 하던 내게 찾아온 것은 미래를 새롭게 다지는 각오도, 새로운 가계부의 작성도 아니었다.

 이미 우울증을 겪고 있는 나에게 또 다른 증상들이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내 앞날만 생각만 하면 호흡이 가빠왔고 심장이 조여왔다.

 당장이라도 죽을 것만 같은 불안감이 나를  엄습해왔다.

  우울증이 깊어갈 때는 죽고 싶은 마음과 싸우느라 힘들었는데, 새롭게 내게 꼬리표 붙은 이 공황장애란 놈은 예고 없이 수시로 죽음에 대한 극한의 공포로 찾아왔다. 나란 존재 안에 아이러니하게도 두 마음이 공존하고 있었다.


 아직 다가오지도 않을 미래에 대한 걱정에 짓눌려 그나마 위태롭게 유지되던 현재의 삶마저 붕괴되고 있었다.

 난 참 나쁜 딸이다. 내 삶에 폭풍우가 지나갈 때마다  그 모습을 지켜보신 건 엄마다. 아들한테만은 불안하고 아픈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안간힘을 다했는데...  엄마한테는 늘 내 망가진 모습을 들키곤 했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말없이 굽은 등으로 주방을 오가며 음식을 하셨다. 시체처럼 쳐져있는 당신 딸이 안쓰러워 뭐라도 입에 맞는 걸 먹이려 종종걸음으로 하루를 보내셨다.

 까만 동굴 같은 방안에 누워있는 딸의 이마에 손을 얹고 눈물의 기도를 하루, 이틀, 한 달 그리고 일 년...


 지인들은 가끔 내게 묻는다. 보기 좋아졌다는 말과 함께 어떻게 갑자기 그렇게 회복될 수 있었는지에 대해 궁금해한다. 사실은 나도 궁금하다. 어떤 결정적인 계기나 극적인 신약을 복용한 것도 아닌 건 분명하다.

 다만 확실한 건 갑작스레 변화가 이루어지고 치유가 된 것은 아닐 것이다. 가랑비에 옷 듯 엄마의 사랑과 기도에 내 굳은 마음이 녹았고, 그 녹아진 마음으로  삶에 대한 시선을 다르게 보도록 노력했다.

 난 아직도 불안하다. 여전히 집 밖을 두려워하지만 제법 한눈 질끈 감고 발을 떼는 횟수도 다. 나의 생활 반경은 점점 넓어질 것이다.


 난 염려와 걱정이 많은 사람이다. 하지만 예전처럼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시간을 낭비하진 않는다.

 내가 살기 위한 방법으로 선택한 것은 오늘 하루씩만 열심히 살기! 내일 일은 내일 알아서 그때 가서 살 것. 이것이 내가 오랜 투병생활을 겪으며 체득한 철학이다. 

 생각을 바꾸니 하루가 살만했다. 그 하루, 하루가 모여서 다시 한 달이 되고 일 년이 넘고...


  주어진 오늘이 내게는 전부다. 그래서 즐거우면 신나게 웃고 힘들면 오늘뿐이라 견딜 수 있다.

 그런 나는 날마다 날마다 다시 태어나는 하루살이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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