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살면서 위로가 필요한 순간을 종종 만난다. 오늘 내가 그런 것 같다. 열심히 앞만 보고 달리다 힘이 빠져 주저앉았는데, 다시 일어날 힘은 없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내가 한심하게 여겨지는 날.
오늘 같은 날-세상에 지친- 나를 누가 따뜻하게 안아준다면 위로가 되겠다. 손 마주 잡고, 눈 맞추고, 등도 토닥이고... 때로는 말동무보다는 아무 말 없이 지켜봐 주는 그런 친구가 지금 몹시 그립다.
나는 내가 의도치 않았지만 어쩌다 보니 나홀로족에 속하게 된 케이스이다. 친정 엄마와 나, 아들 세 식구였는데, 아들은 장성해서 2년 전 독립했고 엄마는 작년 가을 요양원으로 가시면서 나 혼자 남게 되었다.
아들이 떠날 때만 해도 그렇게 허전하지는 않았다. 다 큰 아들이 부모품을 떠나는 것은 당연한 이치로 알고 받아들이고 있었으니깐 별 문제는 없었다.
하지만 엄마가 요양원으로 가시면서 나는 완전히 세상 속에 혼자 남겨지게 되었다.
나는 삼 남매 중 가장 일찍 엄마품을 떠났다. 나는 부모로부터 독립적이라 생각했는데... 그것이 아니었나 보다.
친정으로 회귀해서 같이 생활한 지 7년이라는 세월은 아픈 딸을 대하는 엄마의 애절한 마음과 위로받고 안식처를 찾고자 하는 딸이 만나 끈끈한 세월을 이루었다.
남겨진 나는 죄책감과 홀로 남겨진 외로움과 막막함에 며칠을 눈물로 보냈다.
다행히 작년 이맘때는 한참 바쁘게 일할 때라 시간은 잘 갔다. 그러면서도 일을 마치고 불 꺼진 집으로 돌아오는 것은 마음이 오랫동안 불편했었다.
흐르는 시간이 있다는 것과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는 것은 신의 우리에게 준 선물이다. 나는 혼자만의 삶에 익숙해 갔다.
때때로 아무 이유 없이 마음이 한없이 침잠하고 외로울 때가 있지만 나는 앞으로 나아갔다.
이제는 웬만한 일로 울지 않는다. 어느새 엄마와도 분리되어 스스로 세상이란 토양에 뿌리를 내렸다
구직활동 4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코로나는 발생 전후의 세계가 극명하게 나뉠 만큼 우리의 일상을 송두리째 바꿔놨다.
불황의 골은 깊게 파이고 예상만큼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우리 구의 일자리 센터를 거쳐 직업교육과정까지 이수했지만 확진자 급증과 여러 가지 변수는 마치 도미노 현상처럼 소시민의 경제활동을 무너지게 만들었고 일자리의 수요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전화기 벨이 울린다. 일자리 센터의 상담 실장이다. 그녀는 중간에서 일자리를 고용주와 나를 연계해주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그런 그녀가 대뜸 "남편은 뭐 하세요"하고 묻는다.
갑자기 묻는 질문에 당황한 나는 아무 말 못 했다.
"혼자 사세요?" "그럼 일이 급하시겠네요..."
나는 그녀의 의도는 알겠다. 그녀가 보기에 사정이 딱한 나를 위해 애써주겠다는 마음을...
그러나 혼자라는 것을-사람들의 시선에 당당하지 못하는 나 자신을 -생각하니 서글펐다.
마음을 추스르고 다잡지만 오늘은 많이 흔들리는 날이다. 요양원에 계신 엄마도, 따로 분가한 아들도 그립지만 전화하지 않았다.
위로가 필요한 날-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 세상일이 뜻대로 흘러가지 않을 때, 그냥 주저앉아 울고 싶을 때... 그냥 옆에 있으므로 따뜻해지는 친구.
나의 등을 토닥이며 내가 존재하는 슬픈 공간에 불을 밝힌다.
오늘 듣고 싶은 위로송은 종현의 'lone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