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분다. 차가운 바람에 잎새를 떨군 나목들이 울고 있다. 해마다 가을에서 겨울로 가는 시기는 매번 참 아프고 견디기 힘들다.
겨울은 빛에서 어둠으로, 생명에서 소멸로, 희망에서 절망으로 가는 길 같다고 여겨진 것이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다.
철이 들고 내가 한참 생의 한가운데서 고군분투하고 있을 때 겨울은 그런 나를 비웃듯 얼음 같은 냉소를 띄고 다가오곤 했다.
처음 신경정신과를 찾은 것은 이혼한 그해 가을이었다. 아들이 입대한 후 몇 달 지나지 않은 가을과 겨울이 교차하는 때였다.
오랜 시간을 남편과 남처럼 지냈지만... 법원에서의 절차는 채 5분을 걸리지 않을 만큼 간단했다. 그렇게 우리의 22년간의 결혼생활은 마감됐다.
홀가분함? 시원함은 잠시였다. 그렇다고 사랑이, 미련이 남은 건 아니었다. 우리는 애증조차 오래전에 증발해 버렸고 무관심만 남은 상태였다.
참고 참아 굳은살이 박인 가슴으로 허무함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삶은 종종 예상치 못한 복병을 만난다. 나는 미련하게 잡고 있던 결혼생활을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나에게 더 이상의 불행은 없을 거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건 나만의 착각이었다. 자유함 뒤로 패잔병의 서글픔과 아들에 대한 미안함이 몰려왔고 스스로 감옥 안으로 들어갔다.
이혼 후 몇 달 지나지 않아 나는 이유 없이 시름시름 앓았고 혼자서 집 밖을 나간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편두통이 시작된 지 일주일이 넘었다. 아무 약도 소용이 없다. 잠을 잘 수도 제대로 먹을 수도 없다. 직장에서 조퇴한 동생이 응급실을 통해 정신과로 나를 데려갔다.
내 오랜 기억으로도 바람이 몹시 불었던 늦은 가을날이었다.
어떻게 몇 장이나 되는 긴 문진표를 작성했는지 모르겠다. 불안한 눈동자는 몹시 흔들렸고 동생의 팔을 힘주어 잡고 병실로 들어갔다.
그게 시작이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스산하고 생경했다.
병원을 오가는 동안 양날의 검처럼 두 가지 마음이 공존했다.- 살고 싶은 마음과 죽고 싶은 마음. 하지만 내게는 나를 사랑하는 노모가 있었고,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 있었다. 그 두 사람은 저울의 추의 균형을 삶으로 돌려놨다.
얼마 전 유쾌한 미경 씨가 전화를 했다. 그녀는 추위 때문에 겨울이 싫다고 한다. 산책길에 희한한 걸 봤다고 목소리가 들떠있다.
"개나리가 착각했나 봐요. 봄인 줄 알고 양지바른 담장 위로 개나리들이 활짝 폈어요! 호호호 "
나도 개념 없는 개나리로 덩달아 같이 웃었다.
겨울- 생명은 스러져가고 유에서 무로, 소멸한다 생각했는데...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 기분이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았어도 생명은 질기게 뿌리를 내리고 몇 달 뒤 새 계절에 우리를 맞이할 것이다.
혹독한 시련은 더욱 아름답고 강인한 꽃과 열매를 맺게 한다.
나는 지금 생애의 어느 지점을 통과하고 있을까? 나도곧 겨울로 갈 것이고 나의 겨울 길목도 그러하겠지... 더 단단하고 고운 꽃을 피울 것으로 믿는다. 추위가 혹독할수록, 폭설이 많이 내릴수록 더 단단한 열매가 맺힐 것이다.
부끄럽지만 학교 다닐 때 한 번도 개근상을 받아본 적이 없다 약골이기도 하고 어쩌다 가기 싫은 날 꾀병을 부려도 엄마는 모른 체 넘어가 주셨다.
8년째 나는 정신과에 정기적으로 진료를 받는다. 여러 번 위험한 순간이 있다 보니 출석이 길어졌다.
병원 가는 날은 귀찮다. 이젠 어떤 때는 선생님이 너무 걱정하실까 봐 대충 너스레를 떨고 반 농담조로 상담을 끝마친다.
이젠 오래된 친구 같기도 하다.
약을 줄여 달랬더니 이미 최소량이라고 거절하신다.
'나 괜찮은데...'
친구들은 내가 약을 먹는 이유를 모른다고 할 만큼 1,2년 새 좋아졌다.
3달 후에 내원하기로 한다.
바람이 분다. 갑자기 닥친 초겨울 추위에 사람들이 종종걸음 친다. 생명에서 소멸, 소멸에서 다시 생명으로 자연은 끝없이 순환된다.
더 이상 꿈꿀 수 없을 때, 희망의 한 자락마저도 찾을 수 없을 때 우리에게 우울증은 찾아온다.
나는 믿어보기로 했다. 차디찬 겨울의 시작점에서 앞으로 다가올 만개한 꽃들의 향연을 꿈꾸며 봄은 올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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