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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쁜손 Nov 18. 2020

밥의 위로-밥심

 요즘의 나는 예전의 나 , 짧게 거스르면 2 ,3년 전에 비하면 많이 밝아졌다. 제법 사람들과도 어울리고 , 몸과 마음에 면역력이 좀 좋아진 느낌. 이 것은 나만의 느낌은 아니다. 만나는 지인들은 이구동성으로 표정이 밝아지고 안정되어 보인다고 한다. 너무 오랜 기간 내가 친구들을 걱정시켰나 보다... 미안하고 고맙다.

 그런데 최근 한 두 달 사이 스스로에게서 예전의 그림자를 보고는 가끔 화들짝 놀랄 때가 있다. 당연히 사람은 기계가 아닌지라 감정이 기복 없이 고를 수는 없지만... 난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 다고... 감정의 기복과 다운은 깊은 트라우마를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늪, 한번 가라앉게 되면 위로 올라오지 못하고 허우적댈수록 더 깊이 빠져버리는 곳. 그곳은 우울증을 경험한 사람만 알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나는 오롯이 혼자다. 이혼 후  혼자 계신 엄마와 아들 이렇게 나 셋 이였는데 , 삼 년 전 아들은 직장  근처로 자취를 , 작년엔 연로하신 노모가 요양병원에서 요양원으로 거처를 옮기셨다.

 정신없이 백화점 일을 할 때는 피곤에 지쳐 외로움을 몰랐는데 , 일을 그만두고  예상치 못하게 휴식 기간이 길어지니 마음이 조급해지면서 미래에 대한 불안이 엄습해 왔다.

 난 가난한 오십 중반의 여성 가장. 그동안 내가 회복되었다고 믿었던 평온함이 심하게 요동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기억을 더듬어 본다.

어두운 방안 하루 종일 약에 취해 잠을 자던 나.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의 순간들.

깨질듯한 두통에 절망하며 죽여달라 기도했었다.

18평 아파트에 이혼 후 친정으로 온 딸에게 하나뿐인 방을 내어 주시고 당신은 거실에서 생활하셨다.

엄마는 어두운 동굴에 갇힌 나에게 매끼 따뜻한 밥을 지어 안기셨다. 이마에 손을 얹고 눈물의 기도를 반찬으로 나누시고...


 아침부터  눈치 빠른 집사님들이 요즘 일자리 문제로 의기소침해 있는 나를 호출하신다. 드라이브하고 밥 먹자고 하시는데 , 거절했다. 입맛이 소태 같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박 집사님 당신이 나를 위해 미역국을 끓여 다들 출동한다 하신다. 다 귀찮은데 정말 귀찮은데 , 그래도 눈물 나게 고마운 맘은 뭘까?

 생선 가자미, 갈치, 낙지 젓갈 , 소고기 미역국.

넉넉한 마음으로 ''잘 먹어야 돼요.''하며 등을 두드리고 가신다.

 그러고 보니 늦은 오후인데 , 커피밖에 먹지 않았다. 미역국이 먹음직스럽다. 얼른 쌀을 씻고 불려 솥에 밥을 짓는다.


 고슬고슬한 흰 밥 , 미역국, 낙지 젓갈...

허기진 배에  입안 가득 침이 먼저 고일 줄 알았는데. 눈물이 핑 돈다. 미역국을 한  떠먹는데 엄마의 손맛이 느껴진다. 갑자기 나를 둘러싼 대기의 공기가  따뜻한 온기로 바뀌고 마음에 뭉클한 감동이 찾아왔다. 아, 밥도 내게 말을 건다. 엄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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