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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쁜손 Jan 31. 2021

낯가림

 나는 사교적인 성격이 못된다. 음... 사람에는 여러 가지 다양한 면이 공존하기는 한데, 나는 일반적으로 구분 짓는다면 외향적인 성격보다는 내향적인 성격에 가깝다. 이런 성격이 그렇다고 살아오면서 크게 스트레스를 받아오지는 않았는데 새로운 모임에 부득이한 경우 참석해야 하는 경우 참 곤혹스럽다.

 그런 경우 쭘하고 내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표정부터 어색하고 급격히 말수가 줄어든다. 인원이 2,3명인  소그룹은 그나마 괜찮은데 대그룹 모임에서는 있으나  존재로 주로 뒷줄에 앉아 경청하는 부류에 속한다.

 그러니 남의 속도 모르고- 표정도 굳어 있고 말수도 적으니- 상대는 내가 당연히 그 자리가 불편하다는 것을 눈치채고 나를 쌀쌀맞고 차가운 사람으로 오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모르겠다. 기질적인 영향인지 후천적인 것인지... 이도 저도 아닌 것인지는 몰라도 예전엔 제법 나서기 좋아하고 적극적으로 나의 존재를 부각하려 했었던 적도 있었는데 다 옛말이 되었다.

 아무튼 내 소극적 성격이 천성이던 아니던 활달하고 사교성 있는 사람들로 인해 스트레스는 안 받지만 가끔 부러울 때가 있는 것은 솔직한 나의 마음이다.

 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으면 내 인생이 더 풍성해졌을지 의문이다.



 지금은 모르겠지만 젊은 시절 사람들이 나를 보는 첫인상은 서울깍쟁이, 새침데기였다. 말 수 없는 내 딴에는 낯가림하는 거였는데 다른 사람 눈에는 건방져 보였나 보다. 물론 얼마 못가 보기와는 달리 허당에 털털하다 평을 추가로 얻을 수 있었다. 이런 경우도 대개는 개인적인 만남이나 소모임에서 받는 평가이고...

 모임의 인원수가 많아지는 그룹 모임은 웬만해서는 참석을 안 하니 내가 남들로부터 받는 평가는 글쎄 좋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변명을 하자면 대학 때는 인싸보다는 아웃사이더로 지내는 것이 -그때는 예술가를 꿈꾸는 문학도들의 돌출 행동이었고, 결혼해서는 남편과의 불화와 경제적 고통이 모임에서 나를 드러내고 다른 사람들을 사귄다는 것은 내게 하나의 사치였다. 돌이켜보니 그것도 일종의 자존심이었다.   

  지난 일이지만 학부형으로 있던 시절에도 매해 3월 초 열리는 신학년 어머니회에 참석하는 것이 내게는 고역이었다. 그 당시 내가 살던 신도시는 대부분이 중산층 이상의 부모들로 교육 수준과 교육열이 높기로 유명한 곳이었다.

 낯가림이 심한 나였지만 외아들의 기를 죽이고 싶지 않은 마음으로 초등학교 때는 몇 번 울며 겨자 먹기로 참석했다가 부모 체크란에 서명만 하고 급하게 돌아왔었다.

 그래도 자식이 뭔지 그토록 불편한 대규모의 모임 참석은 학부모 때가 마지막이었다.



 지금 내 아이의 학창 시절, 내가 삼, 사십 대인 시절을 떠올리면 그때는 몰랐는데 그래도 젊었구나 싶다. 지금에 비하면 좋은 시절이었다.  

 이제는 아줌마 소리에 아주 자연스럽게 반응하는 진짜 연륜 있는 아줌마이다. 예전엔 '아줌마'하는 소릴 들으면 못 들을 것을 들은 듯 아주 불쾌하게 여기던 때도 있었는데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내가 보기에는 내가 사교성이 좀 늘고 낯가리는 게 좀 준 것 같다.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먼저 말을 거는 뻔뻔함도 생겼으니 장족의 발전이다. 다행히 거만하거나 차가워 보인다는 오해나 상대를 내가 싫어한다는 터무니없는 오해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어 좋다.

 이 모든 변화는 단순히 연륜이 주는 것만은 아니다. 나의 고통의 삶 속에서 낮아짐을 몸소 가르쳐주신 예수님을 통한 위로를 경험하고부터 나 역시 그분을 본받고 싶었다.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의 실천. 거창한 것이 아니라도 작은 미소, 작은 손길을 나도 타인에게 건네고 싶다.



 휴일 오전이다. 어젯밤 잠이 안 와 늦게 야식으로 컵라면을 먹었더니 얼굴이 퉁퉁 부었다. 라면은 일 년에 몇 번 먹지 않는 음식인데 며칠 전 친구랑 통화하다 친구가 저녁으로 컵라면을 먹는다는 소리에 군침이 나면서 나도 편의점에서 일부러 사다 놓은 것이었다.

 어젯밤에는 글 쓴다고 애꿎은 모니터만 뚫어지게 보다가 결국은 야식만 먹고 말았다. 어제 처음으로 작가 지망생이란 것이 참 다행이라 여겨졌다. 한참 갈길이 먼 수련생이란 것을 빈 여백과 하얀 내 머릿속을 떠올리며 절감했다.

 지금은 내가 오매불망 노트북에 사랑을 고백하고 싶은데 마음에 드는 한 줄이 없어 지우고 또 지우니 짝사랑이 따로 없다. 이러고 보니 내 노트북이 낯가림이 심한가 보다. 흐흐



  좀 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면 재미없는 내 인생이 좀 달라질 수는 있었겠지만 이대로도 나는 충분히 만족한다. 그렇다고 이 나이에 낯가림 때문에 새로운 교제나 모임의 거부는 아니다. 이제는 오래된 옷이 편한 것처럼 옛 친구들이 익숙해 좋고  새로운 친구에게는 지나온 세월을 다 이야기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그래도 나이 들어 마음이 맞는 좋은 친구를 만나는 것은 귀한 행운이니 만난다면 내가 먼저 노력해보고 싶다.



 아기는 대략 생후 5개월 때부터 낯가림을 한다. 그때부터는 주 양육자(주로 엄마)를 알아보고 모르는 사람을 경계한다. 여기 아기의 낯가림은 부정적 의미가 아니다. 생존과 직결된다. 이때부터 아이는 자기를 양육하는 엄마와 친밀감을 형성하며 다른 사람과 구별하게 된다. 따라서 영아기의 낯가림은 누구나에게 꼭 필요한 과정이다.

  어젯밤 '낯가림'에 대한 소재로 글을 쓰면서 발견한 사실이 하나 있다. 소심해서 인간관계에 서툰 내게 낯가림은 큰 단점이자 동시에 글을 쓰는 내게 큰 장점이었던 것이다.

 작가는 사물을 사람을 즉 모든 대상을 범인들의 시선으로 보면 안 된다. 나 같은 경우는 동선이 항상 같다. 생활이 단조롭다. 글의 소재는 늘 빈곤하고 매일 같은 일상 중에  글감을 찾아 헤매기 일쑤이다. 어쩌다 영감이 떠오른 날에는 계라도 탄 듯이 기뻐한다.  문제의 해결은 뭘까? 나는 매일 이 우문을 던지고 사람들은 현답보다는 우답에 가까운  나름의 모범답안을 제출한다. 여행을 가봐. 다른 일을 해봐. 다른 소재를 찾아봐. 책을 읽어봐...

 글쎄... 내가 내린 결론은 일상의 변화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는 근본적으로 주위에 흔하게 있는 것들을 나만의 낯가림(비틀어보기-작품이 될만한지 아닌지 구별함)으로 세심하게 작품화할 수 있을 때-그때야말로 작가 지망생이라도 유지할 수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아직 얼굴에 부기도 안 빠졌는데 배는 고프다. 아침을 간단히 토스트로 때우고 노트북 앞에 앉았다. 흐름이 자연스럽지 않고 문장이 맘에 안 든다. 참 좋아하지 않으면 이 일도 정말 못해먹을 일이다.

 참 혼자 하는 고독한 작업이다. 누가 대신해 줄 수도 없고 모든 작가들은 공감할 것이다. 사교성도 좋고 다양한 견문도 좋지만 일단은 엉덩이가 무거워 의자에 착 밀착되어 오래 있어야 되는 지구력과 참을성이 작가들에게는 꼭 필요하다.  그러고 보니 당분간은 이래저래 내 낯가림이 고쳐지기 힘들겠다.


 눈이 풍년인걸 보니 병충해 걱정은 안해도 되겠다. 온세상이 하얀 설국이다. 올해는 나라 안팎으로 풍년, 나도 글감 풍년이었으면 정말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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