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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쁜손 Jan 29. 2021

혼자라도 괜찮고 둘이여도 좋아요.

  파팍 팍 어젯밤부터 전등이 깜박이더니 차단기 쪽에서 나는 소리다. 거의 40년이 다 돼가는 낡고 여기저기 손볼 때가 많은 노후화된 아파트다. 전기 소비량이 많지 않은 우리 집이지만 무서워서 전등을 하나 껐다.

 여자 혼자 사니 이럴 때는 참으로 불편하고 난감하다. 자고 일어나서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날이 흐려 전등을 고 얼마 안 되어 누전차단기 쪽에서 더욱 큰소리가 나서 관리실 전기부 아저씨들을 부르고 창을 보는데 어머, 완전 폭설이다.

 온 세상이 눈에 덮여 있다. 시간은 오전 10시가 조금 넘었다. 창 넓은 명희 씨 카페서 커피 한잔 하고 조카들에게 가야겠다. 

 차단기에는 별문제는 없다는데... 혼자 지내다 보면 소리에 민감하다. 잠자리에 들어서도 뭔가 이상한 소리가 들리면 다시 일어나 문단속을 하곤 한다.

 내가 천성이 겁이 많아서 그렇지-또한 형광등 하나 못 가는 주변머리 없는 것. 그런 것 빼고는 세상 편한 게 혼자이긴 한데...



 사실 나도 잘 모르겠다. 너무 오랜 기간 별거하다 이혼해서 혼자되었기 때문에- 마음 맞는 사람이랑 살아보면 -혼자보다는 둘이 좋다고 할지도 모르겠고  주위에 사이좋은 커플들 보면 보기 좋고 부러운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부러우면 지는 것이라 했던가 호호호

 자상하고 다정하게 배려해주는 것은 좋은데 아직은 간섭받고  메이게 되는 것이 싫은 게 보면- 내가 너무 이기적이고 누구랑 같이 시작할 마음의 자세가 안되었나 싶기도 하다.

 오늘같이 이런 집안 소소한 수리 문제만 아니면 이런 생각조차 떠오르지 않았을 텐데 오늘은 굳이  '남편이라는 존재보다는 아들이라도 든든하게 옆에 있었으면 좋겠다.'하고 생각했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고 아직 내가 목이 덜 말랐거나 주변머리가 없거나 거의 둘 중 하나 이겠지만 솔직히 오늘은 누군가 나를 보호해 주고 지켜줄 사람 그런 남자 친구 또는 남편이 있으면 좋겠다고 아주 잠깐 생각해 보았다.

 그런 생각은 일 년에 한 번 들까 말까 한데 오늘은 우습게도 외로움이 아닌 순전히 고장 난 차단기 탓이니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씁쓸하다.



 가끔씩 집에 오는 아들 녀석은 맘에 드는 남자 친구가 어디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걸로 아는지 나에게 종종 엄마도 남자 친구 좀 사귀라고 한다.

 그러면 나는 소개나 시켜주면서 그런 소리 하라고 하고 아들은 "내가 엄마 또래 아저씨를 어떻게 알아요?" 하며 하하 웃는다.

 젊었을 때야 이성을 만날 기회가 자주 있지만 나이가 먹으면- 마음먹지 않으면-그런 기회조차 만들기도 전무하다. 내가 아직 철이 덜 들어서인지 아니면 아직 뼛속 깊이 절절한 외로움을 못 느껴서 그런지는 몰라도 일부러 애쓰고 싶지는 않다.

 만날 인연이라면 언젠가는 만날 수 있는 것이겠고  지금 이대로도 충분히 행복하다. 나는 다만 항상 열린 마인드를 고집하는 것이지 혼자일 때는 혼자만의 삶을 즐기며 감사하고 혹시 내 인생에서 다시 반쪽이 주어진다면 그것 또한 감사한 일일 것이다. 운명론자는 아니지만 연분은 하늘의 뜻에 맡기고 싶다.

 이것이 오십 대 돌싱녀의 연애관이라면 허황된 것일까?



 우습게도 싱글인 내게 친구들이 바라는 것도 자기네 삶의 경험 위주로 내가 잘 살기를 바란다.

 부부 사이가 좋고 다정한 부부는 일찍 혼자된 나를 안타깝게 여기고 좋은 사람, 좋은 인연 만나면 사람에 대한 실망감이나 거부감 같은 것이 없어질 거라고 하고. 상대적으로 부부 사이가 삐그덕 대는 부부는 세상 혼자가 젤 편하니 싱글로 쭉 깔끔하게 살라고 조언 아닌 조언을 한다.

 사람의 충고나 조언도 다 그 사람 속의 경험 속에서 나오는 것. 나는 그럴 때마다 싱긋 웃으며 두 부류에 맞장구를 친다.

 지금의 상황이 편하고 좋기는 하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내일 일은 알 수 없다. 운명적인 인연의 반쪽이 나타나면 급 연애에 몰입할 수 있다. 호호

 그래서 장담은 안 하겠다. 비겁한 기회주의자라고 욕해도 할 수 없고.

 그런데... 이 나이에도 눈에서 하트가 나오고 가슴이 뛸 수 있을까 정말 궁금하다.



 함박눈이다! 우산을 썼지만 바람이 몹시 불고 눈발이 굵어 오분도 채 안되어 눈사람이 되었다. 걸을 때마다 뽀드득뽀드득 소리가 나는 게 기분이 좋아진다. 여기저기 아이들이 나와 벌써 눈 뭉치를 뭉치고 눈싸움을 하고 있다. 까르르 웃음소리가 듣기 좋다.

 "나야 명희 씨, 눈사람이 됐어요. 따뜻한 커피 주세요." 하고 창가 내 자리를 찾아 앉는다. 폭설을 뚫고 걸어온 보람이 있다. 창밖 풍경이 동화 속 그림 같다. 그녀가 테이블에 커피와 군고구마를 내려놓는다.

 '명희 씨 인심 덕에 내가 다이어트를 못하지 흐흐' 

 눈 오는 설경을 창밖으로 보니 좀 전에 혼자여서 불편하다던 신세한탄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마음속엔 기쁨 가득 행복이 충만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고 보면 아까는 수선공이 필요했던 걸까??



 좋은 인연은 남녀 간의 인연만은 아닐 것이다. 나는 작년 한 해 좋은 친구를 하나 만났다. 바로 명희 씨이다. 나이 들수록 새로운 친구를, 좋은 친구를 만나기 힘든데 맘에 쏙 드는 선량한 친구를 사귀었으니 한해 축복받은 해이다.

 올 해는 어떤 인연과 어떤 이야기로 내 인생이 엮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뭐 지금은 혼자 있는 것도 괜찮지만 혹 좋은 사람을 만나면 다시 시작해볼 용기도 있다. 절대 아니라고 하는 것이 더 솔직하지 못한 것 아닐까? 호호

 그냥 별 기대 없던 인생이 무언가 하나씩 기대하고 꿈꾸게 되어서 기쁘다. 오늘은 잠시 사람과 사람의 인연-그 신비로움-에 대해 생각해 보며 나도 누군가에게 좋은 인연으로 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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