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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쁜손 Jan 27. 2021

삶과 죽음이 오가는 통로.

 아침부터 부슬부슬 가랑비가 내린다. 비가 오는 날은 몸이 마치 물 먹은 솜 같다. 간신히 일어나 밖으로 나갈 준비를 서두른다. 오늘은 신경과 진료일이다. 삼십 년째 나를 괴롭혀 온 편두통으로 한 달에 한 번은 정기적으로 검진을 받는다. 두통의 고통도 이루 말할 수 없이 힘들지만- 내가 앓는 1 차성 두통은 난치성 질환이기는 한데 -생명에는 지장이 없으니 어찌 생각해보면 참 감사하다.

 나도 중년이니 적은 나이는 아니지만 신경과 대기실에 앉아 있으면 주로 뇌졸중, 뇌출혈의 전조증상으로 찾아오는 2 차성 두통과 후유증으로 고생하는 분들이 많으셔서 그런지는 몰라도- 연세가  지긋하신 분들이 자녀 또는 배우자와 함께 내원을 하신다.

 병원 입구에 도착해 발열체크를 하고 문진표를 작성하여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2층으로 올라갔다. 신경과 접수창구에 성명을 대고 대기실에 앉았다. 내 앞에 7명이 대기 중이다. 

 예약시간보다 10분 일찍 왔지만 항상 병원은 사람들로 넘쳐난다. 기다리는 시간이 대략 30분쯤 될 것 같다. 대기실을 둘러본다. 자리가 꽉 차 빈자리가 없다. 병원에 올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아픈 사람이 정말 많다.



 기다린 시간에 비해 진료시간은 채 5분이 안되어 약 처방을 받고 끝났다. 내가 먹는 편두통 약은 처방전 없이는 살 수 없기 때문에 매달 이런 번거로움을 감수해야 한다. 수납을 마치고 출구 쪽으로 걸어간다. 아직 겨울비는 내리고 저 멀리 앰뷸런스가 급히 멈추는 게 보인다. '제발 시간이 늦지 않았기를...'

 여러 명의 의료진과 구급대원들이 분주히 움직인다. 멀리서도 위급함이 느껴진다. '저 환자는 삶과 죽음의 계 중 과연 어디에 더 가까운 걸까? 준비된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하는 물음과 함께 이 거대한 병원이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곳, 희망과 탄식의 눈물이 공존하는 곳이라 여겨졌다.

 뚜벅뚜벅 병원 문을 빠져나왔다.



 돌아오는 길,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살면서 죽음에 대한 공포를 경험한 적이 몇 번 되지만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 그 시기가 지나면 여전히 오랫동안 삶 속에 내가 속할 것처럼 살았다.

 그런데 요즘은 부쩍 삶보다는 죽음에 대한 생각을 많이 떠올리게 된다. 그 이유는 나도 모르겠다. 내가 어디가 딱히 크게 아픈 것도 아니지만...  주위에 죽음을 눈 앞에 둔 분들이 계신 탓 일수도. 그도 아니면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날들보다는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짧다는 것.

 그냥 예전의 나였다면 잘 살고 싶다에 초점을 맞췄을 텐데 지금은 잘 죽고 싶다에 초점을 맞추고 싶다.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죽는 것 일까?

 이제 나의 계절은 가을. 삶보다는 죽음에 가깝다. 나는 흙으로 돌아가 순환하는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고 싶지 않다. 이제는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존재임을 마음으로 준비하고 살아야 되지 않을까



 몇 달 전 오랜만에 집에 온 아들에게 무슨 말끝에   "엄마는 연명 치료하지 말아 줘." 하였더니 아들은 좀 당황한 듯 백세시대에 무슨 소리냐고 일축해 버렸다.

 나도 삶의 애착이 없는 것은 아니다. 죽는 순간도 두렵다. 누구든지 예외 없이 고통의 순간을 마주 대하며 죽어야 하는 것이 겁이 나고 무섭지만 자연스럽게 떠나고 싶은 것이 나의 솔직한 바람이다.

 살아 있는 동안 욕심부리지 않고, 하고 싶은 일에 최선을 다하고, 마음껏 주위를 사랑하다 때가 되면 조용히 떠나고 싶다.

 



 부리나케 동생네 들어선다. 동생은 한참 직장에서 일할 시간이다. 내가 오전 검진받느라고 조카들 점심이 늦을까 급하게 택시를 타고 왔다.

 겉옷만 급하게 벗고 손을 씻는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수육용 돼지고기가 들어있다. 큰 냄비에 된장과 커피, 월계수 잎, 대파, 양파를 넣고 물이 끓기를 기다리면서 커피를 마신다.


 이른 아침부터 비가 오락가락한다. 냄비에서 잘 삶아진 수육을 덩어리째 꺼내 예쁜 접시에 김장김치와 잘 썰어 담는다. 식탁 주위에 조카들이 모여 앉는다. 맛있게 먹어주는 모습이 사랑스럽다. 아이들은 여느 때처럼 재잘거리며 환하게 웃는다.

 

 다시 삶과 죽음의 섞인 대합실에서 삶의 현장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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