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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쁜손 Jan 22. 2021

오랜만에 친구가 하는 카페에 갔다.

카페의 여인 2.

 내 친구 명희 씨가 하는 카페에 가면 항상 내가 앉는 자리가 있다. 거리의 풍경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커다란 창가 옆 2인용 작은 테이블 좌석.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바람이 불 때나 난 그곳에 가면  거기서 커피를 마시며 글을 쓴다. 지난주까지 모든 카페가 테이크 아웃밖에는 허용이 안된 상태였지만  다행히 이번 주부터 코로나로 인한 일부 조치의 완화로 나는 내 자리로 찾아갈 수 있었고 그곳에서 책을 읽기도 글을 쓰기도 그리고 가끔은 창밖을 통해 거리의 풍경을, 지나는 사람들을 관찰하기도 한다.

 오늘은 10년 전 타계한 박완서 작가의 산문들 중 대표작들로만 엮어 펴낸-660편 중 대표작 35편-'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라는 작품을 읽고 있다.

 원래도 감칠맛 나고 맛깔스러운 그녀의 산문중 엄선한 것들이니 읽어 내려가며 역시 그녀임을 감탄하고 또 감탄하였다.

 나는 언제쯤 나의 색깔을 지닌 제대로 된 작품을 쓸 수 있을지 솔직히 한숨만 나오는데-지금처럼 한결같이 노력하면 작가 지망생이란 꼬리표를 뗀 진짜 작가는 되지 않을까 싶다.



 고개를 돌려 창밖을 본다. 대지가 촉촉이 젖어있고 우산을 쓴 사람들이 거리를 지나간다. 빗발이 제법 거세다. 실내에서 보는 비 오는 날의 거리 풍경은 차분하니 아름답다. 피아노 음악은 나지막이 흐르고 마치 시간은 정지된 듯 그렇게 한참을 밖을 보며 앉아 있었다.

 풍경소리가 울린다. 손님이 카페 문을 밀고 들어온다. 시선을 카페 안으로 돌린다. 명희 씨가 상냥하게 손님에게 인사를 건네고 주문을 받는다.

 주문받는 데스크 위로 소담스럽고 예쁜 꽃바구니가 눈에 띈다. 단정하고 사랑스러운 그녀와, 그녀의 카페와 잘 어울리는 꽃이다.

 '음... 음력으로 12월 8일이 명희 씨 생일이었던 것 같은데. 어제가 혹시...'

 "명희 씨, 저 꽃은 뭐예요? 선물 받은 것 같아요."

 수줍게 그녀가 말한다.

 "어제 생일이라 남편이 가게로 보낸 거예요... " 하며 살포시 웃음 짓는- 그녀의 마스크 낀- 얼굴에서도 행복이 느껴져 나도 잠시나마 흐뭇해졌다.

 명희 씨 남편은 몇 년 전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한쪽 무릎이 불편했는데 얼마 전 재수술을 받았고 명희 씨는 간병하느라 애를 쓴 모양이다. 그러니 남편은 다가 온 아내의 생일날- 서프라이즈 선물로 꽃을 가게로 배달시켰고 아내는 남편의 마음이 담긴 선물을 보고 감동했을 것이다.



 명희 씨 부부는 참 선량한 사람들이다. 누구든지 그 두 사람을 보기만 하면 편안해 보이는 친구 같은 다정한 부부임을 알 수 있다. 이혼해서 싱글인 내가 이런 말 하는 게 조금 우습지만 난 잘 살고 있는 부부들에게서는 그들만의 고유한-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행복한 부부는 얼굴에서 빛이 난다. 그런 부부들을 보면 대리만족인지는 몰라도  부러우면서도 보기 좋다.

 명희 씨 내외가 그러하다. 명희 씨 남편은 카페에서 내가 차를 마시고 있으면 그의 아내, 명희 씨에게 매일 식사와 안부를 챙기는 전화를 해주고 남편 직장이 쉬는 휴일엔 아내에게 줄 도시락과 과일을 챙겨다 주고 카페 대청소를 해준다. 명희 씨는 명희 씨대로 남편을 살뜰히 챙기는 게 -아주 가끔 관찰자의 입장이 되는 나의 눈에는- 50대 부부의 잔잔하고 소박한 사랑이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젊은 시절은 열정적인 사랑을 꿈꿨던 것 같다. 그러나 구비구비 세월을 지나오니 활활 타올라 쉽게 재만 남는 사랑보다는 뭉근하고 오래오래 따뜻한 군불 같은 사랑도 나름 멋지고 근사할 것 같다. 심장에 무리 갈 일도 없을 테니깐.



 비 줄기가 점점 세차 지는데 실내의 따뜻한 커피 향과 온기가 포근하니 몸을 나른하게 한다. 나의 사랑을 되돌아본다. 눈을 감는다. 이제는 미움도 원망도 없는 평온한 마음, 한차례 폭풍이 지나간 뒤의 고요함 같은 적막감. 혼자여서 외로울 때도 있지만 그래도  나는 혼자여서 좋다는 생각을 하다 괜히 실없이 히죽 웃는다.

 명희 씨가 정갈한 접시에 과자와 떡을 담아 내게 건넨다. 다른 테이블 손님들에게도 다과를 건넨다. 항상 타인을 배려하고 인심이 넉넉한 그녀이다. 난 이런 착하고 선량한 그녀가 좋고 그녀의 아름다운 가정이 좋다.

 나는 과연 그녀에게 어떤 친구인지 문득 궁금해졌다. 나도 주위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삶을 살고 싶은데 마음과는 달리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힘들 때마다 많은 사람들의 도움과 사랑을 받은 빚진 자이다.

 눈가가 뜨거워졌다. 날씨 탓이겠지 아니면 나이 탓인지 요즘 나도 모르게 눈물이 자주 핑 돈다.

 활자가 뿌옇게 보인다. 책을 덮었다. 시간은 얼마 안 되었는데 비가 와서 그런지 일찍 어둑어둑 해졌다. 주섬주섬 소지품을 챙겨 가방에 넣고 자리에서 일어나 명희 씨에게 간다. 언제나처럼 서로를 마주 보고 환하게 웃으며 작별 인사를 한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은경 씨~"

 "좋은 하루 보내세요. 명희 씨~"

 급히 나가려는 내게 초록색 우산을 내민다. 오늘 비가 갑자기 오는 바람에 아침에 챙기지 못했다.

세심한 마음이 고마워 싱긋 웃으며 손을 흔들고 집으로 향했다.



 요즘 나의 동선은 집, 동생네(아르바이트로 조카들 점심 챙기기), 명희 씨 카페 가는 것이 거의 전부인 단순한 삶을 살고 있다. 코로나로 사회적 거리두기도 있지만 원래 내 성향상 겨울엔 특히나 동면하는 스타일에 집순이라는 복합된 양상이 현재의 삶을 단순화시켰다.

 하지만 그렇다고 인간관계를 포기한 건 아니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인간은 사회적 동물임에 틀림없고 인간관계야말로 삶에서 얼마나 소중한지를 절실히 깨닫고 있다.

 나는 아직도 남들이 보는 사회적 환경은 별로 변한 것이 없다. 과거나 현재나 늘 제자리 모습처럼 보이지만 나는 지금 감사하고 행복하다.

 내 주위에 못 믿을 사람보다 믿을 사람이, 나쁜 사람보다 선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내가 젊었을 때, 어둠 속을 헤매고 있었을 때는 그것이 눈에 안 들어왔는데 어느 정도 나이가 들고 시간이 흐르니 사람이야말로 큰 재산이었다.

 나도 이젠 누군가의 좋은 사람이 되어 주고 싶다.

 내가 명희 씨만 보면 그리고 명희 씨 부부만 보면 행복해지는 것처럼 누군가도 나를 보면 보는 자체만으로도 행복해지는 아름다운 사람이 되는 것이 이 저녁 간절한 나의 소원이다.


 

후드득후드득  빗소리에 따뜻한 칼국수가 생각난다. 보고 싶은 얼굴들이 하나, 둘 떠오른다. 내일은 다정한 안부라도 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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