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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쁜손 Jan 20. 2021

청바지와 나잇살.

 "청바지가 잘 어울리는 여자? 밥을 많이 먹어도 배가 안 나오는 여자?...  "1989년 선풍적인 인기를 누렸던 가수 변진섭의 '희망사항'앞부분의 가사다.

 청바지야 별로 안 어울려도 워낙 좋아하는 아이템이니 즐겨 입는다 치고 밥을 많이 먹어도 과연 배가  안 나오는 여자가 있을까? 특히 나 같은 중년의 아줌마가??

 또래 친구들에 비해 살집이 있는 편이 아니라 뱃살 걱정-군살-을 덜 하고 살았는데 나도 작년부터는 이상하게 먹는 양은 비슷한데.., 딴 데가 아니라 뱃살이 나오기 시작했다. 아니 정확하게 여기저기 조금씩 군살이 붙기 시작하면서 체중이 눈에 띄게  증가하였다. 거기다 올 겨울 유난히 춥다 보니 일적인 이외의 볼 일은 웬만하면 집에서 처리하다 보니 움직일 일이 확실히 덜 했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체중 증가로 이어졌다.

 옷장에 있는 밴드형 바지를 제외하고 내가 젤 좋아하는 슬림 배기핏 청바지를 가져와 밑단부터 서서히 위로 올린다. 종아리, 허벅지 그리고 엉덩이까지 잘 들어가나 싶더니 단추를 채우려 하는데 배에 힘이 들어간다. 있는 힘껏 숨을 들이쉬고 단추를 겨우 채웠지만 영 불편한 게 아니다.

 '바지 핏과 자연스러운 물 빠짐이 예뻐 내가 4년째 입고 있는 아끼는 것인데...' 다른 아끼는 청바지도 차례로 입어본다. 헉! 앞엣것과 별반 차이가 없다. '



 허탈해서 바지를 한편으로 밀어놓고 거울을 본다. 자세히 보니 얼굴도 푸석하고 어느새 허리라인은 흔적만 남았다. 별로 내세울 게 없는 용모래도 갱년기 아줌마 치고 날씬하다는 소리는 듣고 지냈는데... 게다가 내 소중한 아가들-가지고 있는 청바지들-과 작별하게 생겼으니 마음이 심란하다.

 세월이 야속하게 여겨졌다. 마음만은 1989년 변진섭의 희망사항의 가사- 청바지가 잘 어울리고, 밥을 많이 먹어도 배가 잘 안 나오는 20대인데... 몸은 이상과 다른 청바지도 안 어울리고, 밥은 조금만 먹어도 배가 왕창 나오는 여자 그런 여자가 된 것이었다.

 오십 대 중반도 여자는 여자. 죽을 때까지 여성은 여성답게 남성은 남성답게 가 내 지론이다. 젊은이들이 보기에 아줌마, 아저씨들이 그렇지 할 수 있지만 나름 곱게 늙고 싶은 게 나의 희망사항이다.

 어쨌든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이상 체중조절에 들어간다! 잠깐! 세부 항목은 차근차근 생각해 봐야겠다. 아침을 걸러서 지금 끼니를 해결하는 게 우선이다.


 먼저 체중계에 눈을 질끈 감고 올라갔다. 눈을 가늘게 뜬다. 허걱! 두 달새 2.5kg이 늘었다. 어쩐지  허리가 묵직한 느낌? 뱃살로만 최소 1.5kg은 간 듯. 목표량은 2킬로그램! 너무 욕심부리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신년 계획에 한 가지 계획이 추가되었다. 갱년기 이후 여자는 여성호르몬 변화로 살이 찌기 쉬운 체질로 바뀐다. 65세 전까지는 무조건 적정 체중을 유지하고 그 후에는 약간의 오버 체중이 노년의 삶의 질을 높인다고 들었다.

 '그런데 체중조절을 어떻게 하지? 평소 체계적인 식습관이랑은 거리가 멀어서 무조건 양을 반으로 줄이자니 지금도 별로 많이 먹는 것은 아닌데(?)'

 한 가지 음식만 계속 먹는 것은 내 스타일은 아니고 지금도 두 끼밖에 안 먹는데, 음식의 질의 문제인가? 가끔 저녁 시간을 늦게 가질 때 있는 게 안 좋겠지?'

 이리 저리 궁리 해보고 나름 기본 데이터를 가지고 내가 효율적으로 할 체중조절에 꼭 필요한 실천사항을 선별해보았다. 첫째 저녁식사는 6시 전에 끝마친다.

둘째 빵, 떡 음식을 자제한다.(내 입으로 차마 끊는다고 못하겠다.) 셋째 아침, 점심은 많이 먹고 저녁은 시장끼만 때운다. 넷째 과일보다 야채를. 유제품은 저지방 제품으로 먹는다. 이상~~~

 일주일에 한 번 체중계에 올라가 체크하기!



 사실 마음은 비장하게 각오를 다졌지만 살 중에서 가장 무서운 살이 나잇살이라 한 번찌면 유지만 하기도 벅차다 하던데... 머릿속이 복잡하다.

 어쩌다 나잇살의 올무에 걸려들었다니 오호통재라!

 참 계획에 결정적으로 빠져있는 게 있다. 운동!

내가 그러면 그렇지. 매사 주먹구구식이라...

숨쉬기 운동만 해서는 안될 것 같고 다시 동네 매일 30분씩 걷기? 너무 무리하면 안 되니 딱 좋아!

 저녁에 동생이 준 칼국수 먹으려 했는데... 면류라 벌써부터 고민되네. 밀가루 음식은 다이어트의 적.

'이번만 6시 전에 먹을까? 아니야 계획 첫날인데, 아 몰라 아깝잖아. 괜찮아. 6시 전에 먹으면 괜찮을 거야.'

 왠지 첫 시작부터 느낌이 쏴하니 예감이 좋지 않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스파게티 소스, 식빵, 우유 , 한라봉, 토마토. 달걀. 낼 아침도 보나 마나 토스트겠다. 밀가루 음식.

 '장을 제대로 보고 내일 오후부터 정식으로 해야 할까?'



 부스스한 모습으로 일어났다. 오늘은 조카들을 일찍 챙겨줘야 되어서  8시에 기상. 배가 고프다. 토스터기에 식빵을 한쪽 넣고 크림치즈와 딸기잼을 꺼냈다. 툭하고 잘 구워진 빵이 올라오고 크림치즈를 듬뿍 바른 뒤 위에 잼을 바른다.

 한 잎 베어 무는대 바싹함과 촉촉한 빵맛과 크림치즈의 담백함과 딸기잼의 새콤함이 나를 행복하게 한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다. 어제의 고민이 벌써 저만치 달아나 버린 것 같다. 커피 한잔까지 마셔 주니 너무 행복해 눈물이 핑 돌 듯하다.

 '많이 움직이자. 청바지는 허리 좀 늘려 입고, 여기서만 더 찌면 안 돼. 아직은 준수하지~'

 토스트 한쪽에 어제의 각오를 바꾸어 버렸다.

 거울을 본다. 블랙 니트랑 블랙 팬츠를 입어서 그런지 아직은 봐줄 만하다. 착시현상이겠지만 호호



 "애들아 이모 왔다~~"

 "언니 왔어."

 동생이 내게 쇼핑백을 내민다. "뭐야?"

 자기 꺼 사면서 인터넷으로 기모가 들어 있는 겨울 바지를 주문한 모양이다. 바지 사이즈는 거의 비슷하게 입는다.  "언니 입어봐."

 또, 또 타이트한 엉덩이에, 허리에서 잠기지 않는다.

"언니 살 많이 쪘네~"

 그리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점심식사 때도 반공기로 양을 확 줄였는데-눈치 없는 동생은 언니 입맛 없어 안 먹는 줄 안다.

 '오늘부터 진짜 진짜 살과의 전쟁이다!'하고 전의는 다져보지만 맥은 풀린다. 예쁘게 곱게 늙고 싶은 마음은 들지만 순전히 외모 때문에 관리한다는 것이 별로 내겐 큰 동기부여가 안 되는 것 같다. 그냥 적정체중을 유지하는 게 여러 가지 성인병 예방차원의-건강 유지-문제 아닐까?



 허리둘레가 여러 건강의 지표라니 그 부분은 신경 안 쓸래야 안 쓸 수 없고... 뭐든지 자연스러운 게 좋고 오래가는 것이니깐 굳이 거창하게 다이어트 계획은 안 세우기로 했다.

 좋아하는 청바지는 당분간 밴드형으로 입지 호호

나는 예전에 젊었을 때 지금 내 나이 또래 아줌마들은 아름다움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않는 줄  알았다. 분명 선입견이었다. 그런데 내가 오십 대 중반 아줌마가 돼보니 여전히 아름답고 우아하게 늙고 싶은 게 희망사항이다.

 젊은의 아름다움은 눈부시다. 하지만 중년, 노년의 깊이 있는 아름다움은 아니다. 세월이 흘러야 익어갈 수 있는 것도 세상엔 많다.

 '난 지금 계절의 어디쯤으로 가고 있을까?'가을로 가고 있다. 며칠 전부터 이상하게 변진섭의 희망사항의 앞부분 가사가 떠올라 계속 흥얼거렸다. 노래가 귓가에 아직 쟁쟁하고 아직 난 20대 같은데  시간만 훌쩍 가버렸다. 다시 오지 않을 시절이다.


 아가씨 같은 날씬한 몸을 만드는 걸 원하는 것 노노.

 불필요한 지방은 제거해 건강하게 살고 싶다.

 청바지가 잘 어울리는 아줌마로 늙고 싶다.

 눈가의 주름도 연륜이라고 우기고 싶다.

 마음만은 스무 살 꽃띠입니다...

 군살은 빼고 마음은 넉넉한 사람이 되는 게 저의 희망사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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