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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쁜손 Jan 14. 2021

김치볶음밥

나를 위한 오늘의 레시피.

 눈을 뜨니 9시이다. 얼마만의 단잠인지 모르겠다. 늘 밤이면 깊은 잠을 못 자고 여러 차례 깨곤 했는데 어젯밤은 밤새 한 번도 깨지 않고 내리 잤다

 이렇게 단잠을 자는 날은 한 달에 한 손으로 꼽을 만큼 적다. 어젯밤 숙면을 취한 것도 그저께 잠을 거의 이루지 못한 덕이다.

 이래저래 중년에서 노년으로 가는 길은 서글프고 험난한(?)것 같아 씁쓸한 웃음이 나왔다. 아직 마음은 청춘인 것 같은데...  오늘 처음 '몸과 마음이 같이 늙어가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초로의 중년 여성인 친구들과의 통화 내용의 반이상은 하나, 둘 고장 나기 시작하는 몸에 대한 하소연과  중년에서 노년-갱년기-으로 가면서 겪게 되는 여러 가지 복합된 감정을 나누는 것으로 채워진다.

 나 역시 몇 년 전부터 잦은 통증에 시달리고 마음도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하면서 갱년기의 중심부를 통과하고 있는데 난 그냥 아줌마도 아니고 할머니도 아닌 참 어정쩡한 이 시기가 불편하다.



 아침부터 자리에서 이런저런 생각으로 멍 때리다 보니 시간이 꽤 많이 흘렀다. 11시가 조금 넘었다. 브런치로 샌드위치를 하려 보니 결정적으로 식빵이 없다.  오랜만에  음식다운 음식을 하려고 집에 있는 재료를 살펴보니 변변한 재료가 없다. 달걀, 햄 , 김, 양파.

'무얼 하면 맛있게 먹을 수 있을까?'

 싱글인 나는 정작 나를 위해서는 제대로 된 음식을 차려먹지 않은지 오래되었다. 자꾸 요즘 컨디션이  난조를 보이는 게 내가 섭취하는 음식의 질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오늘만은 나를 위해 정성껏 요리해서 맛있게 먹고 싶었다.

 '맞다! 신김치가 있으니 오랜만에 입맛 돌게 김치볶음밥 해 먹을까?'

 김치볶음밥을 못하는 사람은 없지만 맛있게 잘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나는 아들과 조카들이 좋아하는 스타일의 김치볶음밥-별5개중4개반쯤.

 오늘의 미식가들은 없지만 나는 오늘 나만을 위해 정성껏 만들고 싶었다.


 먼저 도마에 햄을 곱게 썰어 놓고 양파와 당근을 곱게 다진다.. 김치가 주가 되므로 김치양의 삼분의 1 정도 다져놓고 김치는 송송, 적당한 크기로 썰어 신김치 국물과 같이 준비해 놓는다.

 팬을 중불로 달구고 기름을 넉넉히 두른 후 야채를 넣어 먼저 볶다 햄과 김치를 넣고 볶는다. 이때 김치가 많이 시었을 경우엔 설탕 한 티스푼 정도 넣어 신맛을 희석시킨다. 야채, 김치가 기의 볶아지면 김치 국물과 고춧가루를 넣고 조금 더 볶다가 졸여준다.

 중요한 Tip하나. 간장 한 스푼 정도 불에 달궈 섞어주면 불맛이 느껴지는 깊은 맛이 난다.

 이제 다된 양념에 찬밥(오늘의 포인트!)을 넣고 저어준다.  약하게 조절. 마지막으로 기호에 따라     들기름이나 참기름을 뿌리고 깨소금을 뿌려주고 근사한 접시에 담는 걸로 완성한다. 계란 프라이도 기호에 따라 선택~~

 난 미식가는 아니지만 눈으로 즐기고 눈으로 먹는 걸 좋아한다. 음식을 한 목적은 벌써 잊었다. 멋지게 플레이팅 할 접시를 한참 찾았다. 접시에 고슬고슬한 볶음밥을 담고 계란 프라이를 중앙에 올려놓았다.

 짜짠 하나의 완성된 작품을 탁자로 가져간다. 잠깐 식사 전 일용할 양식을 주심을 감사했다.


 잠깐 내가 해준 김치볶음밥을 좋아하는 조카와 아들이 떠올랐지만 오늘은 기억에서 밀어냈다.  오늘은 순전히 나를 위한 밥상이었다.

 콩나물국이나 어묵탕이 있었으면 금상첨화였을 텐데... 한 잎 떠서 먹었다. 찬밥으로 볶은덕에 밥알이   고슬고슬하니  야채랑 김치랑 씹히는 맛이 -적당히 시면서 칼칼하고  들기름 특유의 깔끔한 고소한 맛-입에 환상적으로 퍼진다. 중간중간 프라이랑 먹어주면 담백한 맛은 배가 된다.

 오랜만에 나를 위한 요리는 대성공이다. 건강에 자신의 없으면서도 건강을 위해 내가 실천하는 것은 고작 몸에 안 좋은 거 안 먹기 정도- 인스턴트 음식, 탄산음료, 튀김 음식, 술...

 싱글 생활 초기에는 건강에 신경을 많이 썼는데 지금은 거의 연명 수준이니 오늘로써 변화가 필요한 것 같아 나를 위해 음식을 장만해 보았다.



 내 나이쯤 달려오면 사랑을 받을 일보다는 베풀 일이 많은 게 사실이다. 보통의 경우 젊었을 때, 어렸을 때 충분히 받은 사랑을 토대로 중년기, 노년기에는 사랑을 아래로 옆으로  또는 위로도 베풀 줄 아는 게 건강하게 잘 늙어가고 있다는 것 아닐까?

 그런데 그러기 위해선 중간중간 에너지가 필요한 것 같다. 그것은 먼저 나를 사랑하고 챙기는 일이다. 아이들은 이제 성인이어서 엄마의 손길을 덜 타고  엄마의 조언을 꼰대의 소리로 치부해 버릴 때가 종종 있고 남편들도 마찬가지로 같이 갱년기를 겪으니  서로 관심과 사랑이 필요한 것은 마찬가지 일 것이다.

 나야 어떠면에선 다행히 남편과의 갈등은 없지만... 대신 부부가 함께 사는 삶보다는 노년기의 고독함ㆍ외로움에 더 노출될 가능성은 훨씬 크다. 사실 벌써부터 슬프게도 짐작이 된다.



 새해라고 세웠던 계획이 잘 지켜지고 있는지 점검을 해봤다. 독서계획은 아직 만족도 백 퍼센트.

끼니 거르지 않기는 여전히 빨간불, 글쓰기도 글감 때문에 늘 고민하면서도 아직 쓸 수 있으니 다행.

 식사를 잘 챙기는 것은 건강을 지키고 더 나가 나를  사랑하는 일이었는데 가장 중요한 것을 소홀 시 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최고의 사랑은 이타적인 사랑이겠지? 그런데 몸과 마음이 건강하지 못한 사람이 이타적 사랑을 하는 것은 힘들다. 쉽게 지친다. 내가 충분히 사랑으로 충만할 때 가능한 것은 아닐까!

 



 나는 오늘 나를 위한 레시피로 김치볶음밥을 만들었다. 갱년기는 물결의 파고도 크고 마음의 부침도 심한 누구나 노년기로 향하는 통과의례다.

 그러나 세상 이치가 다 그러하듯 잃는 것만 있지는 않다. 연륜에서 뿜어져 나오는 내공과 여유를 믿어보기로 했다.

 전에 노년을 떠올리고 가장 싫었던 것은 감성의 탄성이 떨어져 유연하게 생각하는 것을 잃고 불통의 사람이 될까 봐 하는 걱정이었다.

  마음만은 꼰대가 아니고 싶은데  자기가 보고자 하는 부분만 보는 편협한 사람이 될까 가장 두렵다.

 그럴 때마다 고슬고슬한 밥에 여유와 사랑과 배려를 넣고 양념으로는 느긋함과 포용의 마음을 넣어 볶음밥을 지어야겠다.

 누구를 위한 음식이 아닌, 나를 위한 만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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