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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쁜손 Feb 05. 2021

겨울의 끝자락에 서서...

  바람이 몹시 부는 날이다. 2월의 첫 주. 겨울의 중심부를 통과하였다. 바람 끝에 봄내음이 묻어 난다. 길을 가다 잠시 멈췄다. 헝클러 진 머리카락에 머리를 넘기고 옷깃을 여미지만 마음은 춥지 않았다. 내 마음이 성급한 걸까. 어느새 손을 뻗으면 봄기운이 손끝에 닿을 것 같다.

 눈을 들어 대지의 앙상한 나무들을 본다. 겨우내 혹독한 추위와 모진 바람, 눈보라를 이겨내고 보란 듯이 서있다. 질긴 생명력은 혹독한 시련을 묵묵히 견디게 했다. 나는 저 위대한 자연을 통해 자연의 순리와 겸손한 마음을 배운다.

 다시 길을 걷는다. 내리쬐는 햇살이 따사롭다. 그동안 얼어붙은 마음도, 언 땅도 녹일듯한 따뜻한 햇살이다. 봄의 강인한 생명력은 대지를 뚫고 머지않아 싹을 틔우겠지...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이제 얼마 후면 봄이 오기를 기다리는 나의 바람이, 소원이 이루어질 것이다. 그날을 고대하며  기쁨의 노래를 준비하고 싶다.



 겨울의 시작은 매번 낯선 두려움이었다. 청년에서 장년으로 넘어가면서부터인지 아니면 어느 날 늦가을 불쑥 내게 찾아온 우울증 때문 지는 몰라도 나는 겨울마다 습관적으로 겨울 앓이를 했다.

 내가 느끼는 겨울은 잔인한 계절이었다. 모든 것이 정지된 듯- 숨 막일 듯한 고요함 위로 괴기스러운 바람소리만 가에 들려왔다. 모든 스러져 가는 생명 앞에 내 마음도 같이 무너져갔다. 빛보다는 어둠이 존재하는 차갑고 음습한 세상은 나를 더욱 침잠하게 만들었다. 그것은 실오라기만 한 희망조차 꿀 수 없는 모든 것이 의 상태 자체였고 나는 절망의 늪에 빠졌다.

 십 년 전으로 거슬러간 겨울의 초입. 내게 찾아온 지독한 우울증도 겨울에 나를 찾아왔고 두, 세 번의 더 강력한 재발도 어김없이 겨울에 나를 찾아왔다. 몇 번의 우연의 겹친 것인지 아니면 계절성 우울증 인지-겨울은  나를 고통스럽게 했다.

 돌이켜보면 나는 순환의 섭리를 자연의 약속을 믿을 만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하루하루 버티는 것이 고통스러웠다. 고사상태인 마음이 생명의 잎과 꽃들이 사라지고 하얗게 뼈마디를 드러낸 가지들을 보는 것은 마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괴로웠다.



 시간은 흐르고 어느 날 문득 반복되는 생명의 약속을 보며 내 얼어붙은 마음이 차츰 녹아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 겨울은 가고 봄이 온다는 사실은 경이로운 진실이었고 그것을 어느 순간부터 믿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이제는 더 이상 겨울이 시작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었다. 겨울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위한 쉼이라 생각되니 내 마음에 위로와 평안이 찾아왔다.

 다시 마음에 평화가 찾아오니 세상을, 계절의 섭리를 바라보는 눈에 변화가 찾아왔다. 자연은 어느 것도 소중하지 않은 것은 없었다. 조급함 대신에 마음에 여유가 생겼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세상을 본다는 것은 작은 아름다움도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을 얻는 일이었다. 겨울마다 깊어지는 우울감에서 나는 비로소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올 겨울 유난스러운 혹한이었다. 다른 해보다 일찍 시작된 겨울의 추위는 매서운 기세를 떨쳤다. 그러나 내겐 이젠 위대한 자연현상의 일부일뿐, 위협의 대상은 아니었다.


 머리카락을 자른다. 마음을 새롭게 가다듬는다. 한 해를 시작한 지 벌써 한 달이 넘어 2월로 접어들었다. 제아무리 위세 등등하게 맹위를 떨치는 추위도 얼마 후면 세월의 흐름에 사그라질 날이 오겠지. 그리고 곧 아름답고 단단한 새싹이 막 물오르기 시작한 대지 위로 기지개를 켤 것이다.

 지금은 비록 시린 찬바람을 마주하며 서있지만 나는 그것들을 눈에 본 듯 떨림과 환희로 충만하다.

 



 거의 겨울이면 나는 죽은 듯 동면하였다. 내 의식도 사고도 멈추고 나도 땅속으로 한없이 꺼져 들어갔다. 아이러니하게도 삶에 대한 의욕이 없으면서도 죽음에 대한 공포는 컸다. 겨울은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죽음의 빛깔과 많이 흡사하였다.

 해마다 되풀이되는 소멸의 과정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두려워 숨는 일이었다. 몸을 잔뜩 웅크리고 낮은 자세로 끝날 것 같지 않는 겨울이 지나가기만을 바랬다. 그때의 나는 충분히 어리석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소멸과 죽음 뒤에 생명의 탄생이라는 자연의 법칙이 내 뇌리에 떠오르며 내 가슴속 깊이 파고들었다. 이제는 그 불변의 사실에 대한 믿음만으로 나는 매해 찾아오는 겨울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 볼 수 있다.

 시간은 멈추지 않고 항상 흐른다. 올 겨울은 일찍 시작되었다. 그래도 젤 어둡고 시렸던 시기는 이미 지나가버렸다. 이젠 겨울이 아무리 미련을 떨고 시샘을 내도 겨울의 끝자락임에는 분명하다. 나는 이 혹독한 겨울을 견디고 희망으로 피어 날 대지의 모든 생명들이 대견스럽다.

 그리고 나는 다시 평안과 용기와 삶의 지혜를 겨울의 끝, 봄의 오는 길목에서  자연으로부터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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