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산책을 한 지 열흘쯤 되었다.
저녁을 먹고 단지 걷자는 마음이었다. 건강검진에 표시되는 숫자들이 경고와 위험으로 서서히 나빠지고 있었다. 먹고 마시는 것은 예전과 다르지 않은데, 몸이 마치 "이제 도저히 못참겠군!" 하며 불만을 털어놓는 듯하다. 그동안 묵묵히 참고 있었던 내 몸의 속내를, 이제야 듣게 된 셈이다. 미안하다.
밤이 좋다. 더운 공기마저 식어 있는 시간. 사람들과 눈을 마주칠 일도 없고, 자동차 소리도 줄어든다. 조용한 길을 걸으며 이어폰을 낀다. 요즘은 이 곡을 푹 빠졌다. 걷는 내내 듣고 또 듣는다.
브로콜리 너마저의 가능성 (feat. 김사월).
“그럴 수도 있었지
뭐든 할 수 있었고
뭐든 될 수 있었던
그런 날이 있었지…”
“좁아지는 길
손에 몇 장 남지 않은 카드
웃으며 일어나는 사람들
점점 줄어가는 의자
텅 빈 운동장…”
이 구절이 나오면 자꾸 걸음을 멈추게 된다. 이제는 내가 그 ‘뭐든 될 수 있었던’ 시간을 지나온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카드도 몇 장 남지 않았고, 의자도 줄어들었으며, 무대의 조명은 서서히 꺼져간다. 그럴 수도 있었던 나날들을 지나, 이제는 어떤 가능성을 마주해야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노래가 마냥 아프지만은 않다. 누구도 위로하지 않지만, 그만큼 아무도 판단하지 않는 노래다. 가능성이 줄어드는 것은 패배가 아니라, 그저 삶의 한 모양일 뿐이라는 말을 조용히 건네는 듯하다. 모든 선택에는 대가가 있고, 내가 이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은 다른 길을 포기했다는 의미일 테니까.
걷다 보면 아주 잠깐, 어릴 적 꿈이 불쑥 떠오르기도 한다. 영화감독이 되고 싶기도 했고, 먼 곳을 여행하며 글을 쓰고 싶기도 했다. 그중 일부는 아직 남아 있는지도 모르겠다. 남은 가능성은 작고 조용하지만, 여전히 내 마음 어딘가엔 꿈이 남아 있는 듯하다. 젊은 날의 파도처럼 거센 도전이 아닌, 강물처럼 느리지만 꾸준히 흐르는 변화가 느껴진다.
그날 밤도 나는 그렇게 걷고 있었다, 좁아지는 길을 따라.
https://youtu.be/OrZhJwaUOsc?si=9tRV9Wt_318WVL8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