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산책을 시작하고, 제법 익숙한 길이 세 갈래쯤 생겼다
모두 지도에 표시된 평범한 길이지만, 발길이 자주 닿으면 그것만으로도 나에게는 특별 해진다.
오늘은 제1코스 (내 멋대로 명명한), 성북동으로 향하는 길을 택했다.
한성대입구역에서 간송미술관 방향으로 이어지는 성북동길.
낮의 소음과 배기가스는 밤이 되면 자취를 감춘다.
하지만, 이 길에는 산책의 다짐을 어지럽히는 것들이 이어진다.
분위기 있는 피자바, 눈빛이 마주쳐 더 따뜻해 보이는 연인들의 맥줏집, 뜨끈한 국물 냄새가 번지는 국숫집.
걸음이 저절로 느려진다.
고개를 돌리지 않으려 애써본다.
괜히, 소금기둥이 된 롯의 아내를 생각한다.
다른 의미로 결국 멈춘 곳.
'째즈스토리'라는 간판 아래.
낮에는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던 곳이, 밤 산책길에서는 다른 존재감으로 다가온다.
유리로 된 전면을 통해 실내가 드러난다.
벽면에 빼곡히 꽂힌 LP들, 붉은 벽돌 위로 드리워진 조명, 무대 위에 놓인 악기들.
바깥보다 안이 더 밝고, 그 공간은 다른 시간 속, 다른 세계가 있는 듯하다.
재즈.
잘 알지 못하지만, 좋아한다. 호감은 완전한 이해에서 비롯되지 않는다는 말을 믿는다.
책을 읽거나, 하루를 정리하거나, 생각을 비우고 싶을 때. 가사 없는 소리는 언어보다 오래 남는다.
특히 쳇 베이커의 트럼펫은 밤의 가장 깊은 시간에 들어야 제대로 들리는 소리다.
어떤 감정에도 이름을 붙이지 않고, 그저 그 순간의 빈 곳을 채운다.
재즈는 대학 시절 한 친구가 남긴 기억이다.
그는 언제나 이어폰을 끼고 있었다. 도서관, 버스, 캠퍼스 벤치 어디서든.
말로는 겉멋이라고 타박했지만, 속으로는 은근히 동경했다.
그가 처음 나에게 재즈를 들려주었던 날을 아직도 기억한다.
마일스 데이비스의 'Blue in Green'이 흘러나왔다.
지금은 그의 사정을 모른다.
재즈를 들으면 가끔 그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 궁금해진다.
아마 여전히 재즈를 듣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서로 다른 도시의 밤에서, 같은 음악을 듣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 재즈바에 그와 함께 앉아 있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테이블 위에 놓인 두 잔의 위스키, 흐르는 음악에 고개를 끄덕이는 그의 옆모습.
불가능한 일이지만, 음악은 다른 방식으로 우리를 이어준다.
집에 돌아와 마일스 데이비스의 'Blue in Green'을 틀었다.
트럼펫 소리가 방 안에 번진다.
언젠가 그 재즈바의 문을 열고 유리창 너머로 걸어 들어갈지도 모른다.
그때는 혼자서, 그러나 누군가와 함께 듣는 기분으로.
https://youtu.be/TLDflhhdPCg?si=yyXJn4PV1oP0mH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