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내 맘대로 정한 산책로, 제2코스를 걸었다.
제2코스는 한성대입구역, 즉 삼선교에서 시작해 돈암동을 지나 보문동과 청계천으로 이어지는 하천길, 이른바 성북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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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릴 적에는 이 길을 ‘개천길’이라 불렀다. 물론 지금도 엄밀히 말하면 ‘개천’이 맞지만, ‘성북천’이라는 이름에는 뭔가 계획되고 정비된 도시 산책로의 이미지가 담겨 있다. 실제로 많은 시민들이 이 길을 따라 걷고, 뛰고, 멈춰 선다.
하천에는 왜가리와 집오리, 청둥오리가 자맥질을 하고 있고, 그 위로는 개천을 따라 늘어선 상가의 네온사인이 반짝인다. 자연과 도시의 풍경이 겹치는 그 장면은, 조금은 낯설면서도 오래 보게 되는 기묘한 조화를 지녔다.
천변에는 조깅하는 사람, 반려견을 데리고 산책하는 사람, 철봉에 매달린 사람, 물 흐름을 멍하니 바라보는 사람들까지, 저마다의 이유와 속도로 이 길을 메우고 있다. 그들 속에 섞여 걷다 보면 나도 건전한 시민이 된 듯한 기분이 들어서 나쁘지 않다.
삼선교를 지나 돈암동 초입에 들어서면, 돈암성당과 성북경찰서가 눈에 들어온다. 이 지점에 이르면 나는 늘 박완서 작가를 떠올린다. 오래전에 읽은 그의 단편소설 『그 남자네 집』의 배경이 바로 이곳이기 때문이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안감내’라는 개천이 지금의 성북천이다.
소설의 줄거리는 흐릿하지만, 도입부만큼은 또렷이 기억난다. 주인공이 후배의 이사 소식을 듣고, 자신이 살던 돈암동을 회상하는 장면에서 묘사되는 공간들이 너무도 생생했기 때문이다. 성신여대, 성신여고, 돈암성당, 성북경찰서, 그리고 지금은 사라진 신선탕이라는 목욕탕까지—실제 돈암동의 풍경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박완서 작가가 실제로 1950년대 돈암동에 거주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야, 그 사실감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래서일까. 나는 그의 작품에 더 깊은 애정을 느끼게 되었다.
박완서 작가의 글에는 일상의 질감이 있다. 화려하거나 현학적인 문장은 없지만, 삶을 깊이 응시하는 시선이 있었다. 그는 글을 쓰기 전에 오래 구상했고, 실제 집필은 짧고도 밀도 있게 마무리했다고 한다. ‘원고지 위에서 자신을 들들 볶는다’는 그의 말처럼, 글쓰기는 고통이면서도 성찰이었다.
왠지 그런 그의 태도가 성북천과 닮았다고 느낀다. 거창하지 않지만 꾸준히 흐르는 물길처럼, 그의 글도 조용히, 그러나 깊게 흐른다. 도시의 소음 속에서도 나지막이 들리는 물소리처럼, 박완서의 문장은 요란하지 않지만 잔상은 오래 남는다. 성북천이 북악산에서 시작되어 도심을 관통하며 청계천으로 이어지듯, 박완서의 문학도 개인의 경험에서 출발해 시대의 아픔을 담아내고 보편적 인간의 이야기로 확장된다.
밤의 하천길을 천천히 걷는다. 성북천의 물은 낮게 흐르고, 가로등 불빛이 그 위를 부드럽게 타고 지나간다.
문득 생각한다. 만약 박완서 작가가 '안감내'가 아닌 지금의 '성북천'길을 다시 걷는다면, 어떤 문장으로 이 풍경을 써 내려가실까.
그게 자꾸 궁금해지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