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양육은 어떻게 아이를 망치는가
우리가 백신을 맞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건강한 사람의 몸에 소량의 병원균이나 바이러스를 일부러 주입해, 나중에 실제로 그 병이 찾아왔을 때 이겨낼 수 있도록 항체를 미리 만들어두기 위해서 일 겁니다. 다시 말해, 작은 고통을 통해 더 큰 고통에 대비하는 방식이죠.
이 원리는 신체적인 질병에만 적용될까요? 『부서지는 아이들』의 저자 애비게일 슈라이어는 정서적 영역에도 같은 원리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아이들이 실패, 실망, 불편함 같은 작은 심리적 고통을 경험하지 못한 채 자라게 되면, 훗날 현실의 거센 파도 앞에서 쉽게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이죠.
즉, 양육에서도 백신처럼 '작은 불편함을 허용하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 책은 그 용기를 부모에게 요청하며, 현대 양육의 맹점에 대해 진지한 질문을 던집니다.
이 책은 부모의 선의가 아이에게 반드시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음을 지적합니다.
아이를 지켜주고자 하는 다정한 태도, 감정을 배려하는 친절함, 트라우마를 걱정하는 민감함은 때때로 아이를 더 연약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부서지는 아이들』(원제: Bad Therapy)은 현대 양육 방식에서 널리 받아들여지는 감정 존중 중심의 철학이 실제로는 아이의 자율성과 회복력을 약화시킨다고 말합니다.
슈라이어는 수백 명의 부모, 교사, 정신 건강 전문가들과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이른바 ‘치료 중심 문화(therapeutic culture)’가 어떻게 아이들을 자기 문제에 취약한 존재로 만들고 있는지 날카롭게 분석합니다.
책에서 저자가 비판하는 주요한 양육 방식은 다음과 같습니다.
지나친 감정 배려: 아이가 느끼는 불편함이나 좌절을 지나치게 제거하려는 태도는 아이를 실제 삶의 문제에 약하게 만듭니다. 작은 불편도 견디지 못하게 되고, 고통에 대한 면역력이 약화됩니다.
트라우마의 범람: 모든 불편한 경험을 ‘트라우마’로 간주하고, 이를 치료 대상으로 만들면서 아이는 오히려 자기 회복의 기회를 잃게 됩니다.
진단과 약물 남용: 일상의 감정 기복이나 행동 특성을 정신 질환으로 간주하고 약물로 처리하는 관행이 점점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접근은 감정에 대한 내적 이해보다는 외적 통제를 우선시합니다.
경계가 사라진 부모-자녀 관계: 친구처럼 가까운 부모가 되는 것이 양육의 이상으로 여겨지지만, 이는 아이가 필요로 하는 권위와 기준, 질서를 상실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책이 강조하는 핵심은 '한 발 물러서기'입니다.
아이가 겪는 어려움을 미리 제거해 주는 것이 아니라, 그 어려움을 안전하게 통과할 수 있도록 지켜봐 주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회복력은 실패, 갈등, 좌절을 직접 겪고 이겨내는 과정에서만 길러질 수 있습니다.
즉, 양육의 본질은 아이를 불편함에서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불편함을 감당할 수 있는 힘을 기르도록 돕는 데 있습니다. 부모가 할 일은 고통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 기초 체력을 아이 안에서 발견하고 키워주는 것입니다.
반대의 관점도 존재합니다. 셰팔리 차바리의 『깨어있는 양육』은 아이의 감정과 욕구에 귀를 기울이고, 정서적 교감과 연결을 통해 자율성과 자존감을 키워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차바리는 부모의 자기 성찰이 양육의 출발점이라고 말하며, 문제 행동의 이면에 있는 감정을 이해하는 접근을 제안합니다.
슈라이어가 부모의 경계 설정과 권위 회복을 강조한다면, 차바리는 감정 중심의 대화와 관계 회복을 우선시합니다. 두 책은 겉보기엔 상반되지만, 궁극적으로 아이가 스스로 건강한 방향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점에서는 일맥상통합니다.
『부서지는 아이들』과 『깨어있는 양육』, 이 두 책을 읽으며 깨달은 것은 양육에 정답은 없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아이는 부모의 단호한 기준과 실질적 훈육이 필요하고, 또 어떤 아이는 깊은 공감과 이해를 필요로 합니다. 문제는 한 가지 방식에 매몰되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기질과 상황에 따라 부모가 '균형'을 찾는 데 있습니다.
그 균형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유동적입니다. 때로는 물러서고, 때로는 단호하게 경계를 세워야 하며, 때로는 눈을 마주치고 아이의 감정을 온전히 들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중요한 건 부모가 ‘정답’을 주입하려 하기보다, 끊임없이 관찰하고 조율하는 자세를 가지는 것입니다.
이 책은 우리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아이를 위한다는 이유로, 정작 아이의 삶을 어렵게 만들고 있진 않은가요?"
아이를 위한 최선은 때로는 불편함을 허용하는 것이고, 때로는 개입을 멈추는 용기입니다. 마치 백신이 작은 고통을 통해 큰 질병을 막듯, 아이에게도 작은 실패와 좌절은 반드시 필요한 성장의 재료입니다.
『부서지는 아이들』은 양육의 방식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며, 우리 각자에게 아이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를 다시 묻는 책입니다.
그것은 곧, 더 나은 어른이 되기 위한 질문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