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일의 기쁨과 슬픔

우리들 삶의 어딘가에 있을 뻔한, 하지만 결코 뻔하지 않은 소설

by 말로

책이 잘 읽힌다는 것은 문장의 맺고 끊임이 나의 호흡과 적절한 리듬을 맞춘 결과일 수도 있고, 그 이야기의 본류가 나의 감정선을 잘도 타고 넘나드는 이유 일 수 있다.

2018년 창비 신인 소설상 등단과 함께 랜선을 타고 많은 사람들 사이에 화제가 되어었던 '일의 기쁨과 슬픔' (소설의 제목 보다 '우동마켓'이 내 기억에 남아있다.)의 작가 장류진의 첫번째 소설집은 이 모두에 해당 된다.


담백하고 솔직한 문장 사이 사이 우리들 삶 어딘가에 있을 뻔한, 하지만 결코 뻔하지 않은 8편의 이야기들은 출근 후 탕비실에서 잠깐 짬을 내어 먹는 토스트 식빵 같다. 한입 베어물면 그 사이로 악마의 잼이 삐져 흐르는...

판교에 있는 육교 아닌 육교가 표지

자본주의 시스템 하에서 생존하기 위해 노동을 제공하고, 그 가치에 대해 동의하던 동의하지 않던간에 평가 받고 댓가가 주어지는 우리들의 일상을 꼬집듯 짚어낸다.

그렇다고 시스템에 거창하게 대항하지도, 저 깊은 심연으로 감정을 억지로 밀어넣지도 않고 그저 담담히 살아갈 뿐이다. 그게 바로 우리들 모습이기 때문이다.


사내 눈치없기로 유명한 언니와의 결혼 축의금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헤프닝이 돌연 주인공 본인을 자각하게 만드는 '잘 살겠습니다'. 현금 대신 카드 포인트라면 정색 대신 소확행으로 대응하는 직장인들의 소소한 투쟁 일지 '일의 기쁨과 슬픔'. 위선적 남성 자의식이 빚어내는 하룻밤의 후쿠오카 여행기 '나의 후쿠오카 가이드'. 유튜브 시대 조회수 경제 속 좌절하는 어느 예술가의 '다소 낮음'. 누군가에게 갑이면서도 을이 될 수 밖에 없는 '도움의 손길'. 첫 출근 뜨아와 아아 사이의 경제적 차이가 불러오는 심리적 갈등 '백한번째 이력서와 첫번째 출근길'. 새벽 오피스텔 현관 모니터에 비치는 남성들의 왜곡된 설레임을 다룬 '새벽의 방문자들'. 꿈과 현실의 틈새 속에서 작은 위안처를 마련하는 '탐페레 공항'

이렇듯 장류진 작가는 허공의 알수 없는 지점이 아닌 우리가 딛고 서있는 이 시공간의 이야기들을 통해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게 한다.

전쟁같은 출근길. 2호선 지하철 4번째 칸에 몸을 구겨넣는 내 모습을 노란선 먼 발치에서 스케치 하는 작가. 장류진의 다음 작품이 월급날만큼이나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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