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 없는 강요된 죄의식의 굴레
주인공 '운오'는 형편상 큰집에 더부살이를 하고 있다.
그를 철저하게 군식구로 대하며 괴롭히던 사촌형과 그의 친구무리들은 일탈행위의 방패막으로 '운오'를 이용하기 위해 어울려 다닐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그런 시간들이 지나가던 중 어느날, 강물에 빠진 '운오'가 죽을 고비를 넘기며 간신히 발 아래 바위를 디디고 살아난다. 하지만 그가 바위라고 생각 했던 '그것'은 바위가 아니라 사촌형이 였다. '운오'는 사촌형 덕분에 살아나고 '운오'의 이후의 삶은 대신 살아남은 자의 사죄 일 뿐이다. 그렇게 '운오'의 죄의식은 시작되었다.
제13회 김유정 문학상 수상작인 편혜영 작가의 '호텔 창문'은 이렇게 열린다.
그 날로 부터 19년이 지나고... 매년 그러했듯이, '운오'는 큰어머니의 부름을 받고 사촌형 제사에 참석하기 위해서 고향에 들른다. 사촌형 제사 참석은 '운오'의 연장된 시간에 대한 당연한 보상이며, 강요된 속죄였다.
"네가 누구 덕에 산 줄 알아야 한다."
큰어머니의 이 한마디는 '운오'가 평생 짊어지고 가야하는 십자가의 피였다.
신이 아들로 하여금 우리의 죄 사함을 받게 하신것 처럼....
'운오'의 강요된 발걸음은 선뜻 옮겨지지 않아, 역 주변을 배회하다 두가지 사건을 마주하게 된다.
하나는 19년 전 그시간에 함께 있었던 사촌형 친구를 만나게 되고, 그가 일하던 공장의 화재로 인하여 쫓겨난 사정을 듣게 된다. 그는 공장의 화재가 공식적으로 밝혀진 대로 자연발화인지 자신의 담배 꽁초에 의한 실화 혹은 방화인지 헷갈려 한다.
두번째는 지나가던 '운오'가 시장 근처 호텔의 화재 현장을 목격하게 되고, 그 호텔 창문에서 사람의 그림자를 본 듯한 착각을 한다. 그의 착각은 주변 구경꾼들의 확신에 찬 아우성이 되고 이를 구하러 소방수가 투입된다.
화마는 호텔을 뒤덮는다.
'운오'에게 두가지 사건은 어쩔 수 없는 운명의 부조리에 걸려든 불행이 죄의식으로 치환되어 낙인이 되고, 끝없이 속박하는 부채감으로 부터 결박된 현실을 돌아보게 만든다.
죄 있음과 죄 없음 사이 그 내밀한 비극에 관한 소묘가 편혜영 서사에 실려 우리에게 전달된다.
'운오'는 '우리' 모두의 모습일 지 모른다.
이 책에는 수상작인 편혜영 작가의 '호텔 창문'을 비롯하여 6편의 수상후보작 역시 현실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문학으로 이를 돌파해내는 작품들로 채워져 있다.
김금희의 '기괴의 탄생', 김사과의 '예술가와 그의 보헤미안 친구', 김혜진의 '자정 무렵', 이주란의 '한 사람을 위한 마음', 조남주의 '여자아이는 자라서', 최은미의 '보내는 이'
현실의 한계와 고민으로 생각의 밀도가 가득찬 단편들로 채워져 있어, 헛투루 페이지를 넘길 수 없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