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생각. 나는 책을 왜 읽는가? (2)

책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들

by 말로

계기 같지 않은 계기로 책 읽기를 시작한 나는 의외로 그 행위 자체에 미친듯이 빠져들었다.

한글을 갓 깨우친 어린아이가 길거리 간판을 마구 읽어대듯이 정신없이 탐닉했다.


하루 종일 머리 속에서는 어떻게 하면 책을 읽을 시간과 공간을 확보할 수 있을까에 골몰했다.

대한민국 평범한 직장인이기에, 대한민국 평범한 아빠이고, 대한민국 평범한 남편이기에 책을 읽는 시간을 챙기란 결코 쉽진 않았다.

출근하기 한두시간 전에 근처 카페에서 책을 읽고, 때로는 점심을 거르고 책을 읽고, 퇴근 후 잠자리에 들기까지 TV 리모컨 대신 책을 집어 들었다. 저녁 약속이 갑자기 취소되거나, 상대방이 늦기 라도 하면 오히려 책 읽은 시간이 생겼다는 생각에 즐거웠다.


이것은 하나의 강박증이였다.

책을 읽어야 한다는 강박증.

책을 읽지 않고 잠시라도 그냥 보내는 시간이 생기면 그 틈새를 허무와 불안이 밀고 들어왔다.

이 공격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참호가 독서 였다.


이런 강박증 때문일까? 처지는 문해력에도 불구하고 평범한 직장인 처지에 꽤 많은 책을 읽었다.

2016년 책을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한 첫 해 35권을 시작으로, 17년 69권, 18년도 80권, 19년도 86권, 올해는 5월까지 벌써 50권 정도 읽은 상황이니, 얼마나 많은 돈과 시간을 투자 했고, 얼마나 책에 몰입되어 있는지를 가늠 할 수 있다.

틈날때마다 교보에서 담아온 책들과 예스24에서 클릭한 책들은 책장 한켠 분양 받기 힘들고, 내가 봐도 너무 많이 샀다 싶은 경우에는 차 트렁크에 숨겨 두었다가 한권씩 몰래 집에 가지고 들어가는 꼴이였다. 새로운 책 구독서비스가 시장에 출시될 때마다 앞뒤 안가리고 일단 구독하고 보는 꼴이였다.


그렇다면 이런 강박스러운 책 읽기가 나에게 무엇을 남겼을까?

혹자는 책을 천 권 읽으면 인생이 바뀐다고 하기도 하고, 책 속에 성공의 지름길이 있는 것처럼 말하기도 한다.

아직 천 권을 읽지 못해서 승리자(?)가 되지 못했는지 모르지만, 타고난 길치라 책 속에 뻔히 보이는 성공의 지름길을 찾지 못했는지 모르지만, 나는 그저 나 일 뿐이고 나를 둘러싼 어떤 환경도 책읽기로 인해 변화되지 않았다. 오히려 회사에서의 일은 점점 꼬여가고 조직적으로는 안좋은 상황으로 쪼그라들 뿐이였다.

주변을 둘러봐도 책 좋아하는 사람들은 조직 성과에 무관한 그저 한가한 사람 취급을 당하기 일쑤다.

며칠 전에 우연히 들은 어떤 책 관련 방송에서 국회의원에게 평소 책을 얼마나 읽는지 물어보니, 자기에게는 그런 사치스러운 시간이 없단다.

책 읽는 사람은 할일이 없어 사치스러운 시간을 보내는 사람인가 보다…

어쩌면 책을 읽는 사람이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성공한 사람중에 책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 뿐 아닐까?


"이렇게 해야 책의 내용이 머리 속에 오래 남습니다.” 혹은 "이런 독서가 당신 인생에 도움이 됩니다."

이런 메시지가 담긴 독서 자기계발 책들도 많이 봤지만, 항상 고개를 쳐드는 의문은

"책 읽기가 꼭 뭔가 도움이 되어야 하는 걸까?"

나에게 있어서 책 읽기는 성공하자 하는 목적 때문에 나만의 서점에 나를 가둔것은 아니였다.

나에게 있어서 책 읽기는 그것이 주는 효용감이 바닥이다 하더라도 상관없었다.


그저 책이라는 존재만으로도 마음이 설레고, 책과 같이 보낼 시간과 공간이 너무 소중하고 행복하다.

시간의 허무라는 구렁텅이에 빠질때마다 책 속의 활자들이 직조하여 날 멈춰준다면 그것이 된 것 아닐까?


난 조건 없이 책 읽는 행위를 사랑한다. 그래서 책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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