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하자면 ‘장기하’라는 가수와 그의 노래에 대해서 잘 모른다.
관심이 별로 없었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내가 아는 노래라고는 ‘장판에 쩍 달라붙는다’는 가사만 기억에 남는 <차가운 커피>가 전부이다.
그가 첫 에세이를 썼다.
가끔 어떤 에세이를 읽다 보면 타인의 삶을 심하다 싶을 정도로 엿보는 기분이 들기도 하고 굳이 내가 타인의 이런 모습까지 알아야 하나?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그래서 에세이 장르를 그렇게 선호하지 않을뿐더러 특히 유명한 연예인이나 인플루언서들의 에세이는 더욱더 거리를 두는 편이다. 그런데 왜 팬도 아닌 내가 장기하 씨의 책을 그것도 첫 책을 집어 들었을까? 그 이유는 순전히 제목 때문이다.
<상관없는 거 아닌가?> 제목이 묘하게 끌렸다. (이게 낚였다는 것인가?)
누구나 살면서 큰 위기를 겪지 않더라도 자잘한 고민과 부침은 끊임없이 있다.
그런 것이 하나도 없거나 느끼지 않는다면 아라한 이거나 죽은 사람이 아닐까? 그런 자잘한 부침이 있을 때 누군가 옆에서 ‘상관없잖아?', ‘그게 대수냐?’ 이렇게 툭 던지는 시크하고 쿨한 말 한마디가 왠지 철학자로 빙의되어 관조하듯이 인생사가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질 때가 있다.
평상시 ‘상관없다'라는 단어가 주는 매력을 갖고 있던 차에 이 책 제목이 주는 끌림은 당연했다.
장기하 씨가 밴드 ‘장기하와 얼굴들'을 해체한지도 그 마지막 앨범을 1년 반 전에 냈던 것도 이 책을 통해서 알았다. 이 책은 그의 음악인생에서 한 단락을 마치고 다음 단락으로 가기 전에 하루하루 느끼는 감정과 음악에 대한 고민 그리고 삶의 태도를 담담하게 쓴 책이다. 그의 음악과 마찬가지로 그가 옆에서 앉아 중얼중얼거리듯 애써 힘을 주지도 애써 감동을 주려고 하지 않는다. 그냥 편하게 이야기한다. 나는 어느덧 그의 편한 말투에 기대어 아웅다웅 살았던 시간들을 돌아본다. ‘참 쓸모없는 짓이었구나' 씁쓸한 미소를 짓게 한다.
길 건너 서 있던 남자가 다가와 말을 걸어 비로소 얼굴을 봤을 때 느낌이랄까? 장기하 씨가 건넨 말투에서 받은 인상은 긍정적이고, 실용적이며, 허세가 없는 솔직한 사람이라는 느낌이었다.
그는 가수로서 알려지기까지 드라마틱한 고난과 시련은 없었다. 그의 이야기대로 운이 좋은 케이스라고 볼 수도 있다. 물론 행운이 들어올 수 있도록 노력하고 음악에 대한 순수한 열정을 지키며 준비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세상에 보여주기 위한 음악이 아닌 자기 자신에게 솔직한 음악을 했기 때문에 남들과 다른 독창적인 음악세계를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그의 독창적인 음악세계는 꾸미지 않는 자연스러운 일상을 소중히 여기는 그의 자세에서 나온다고 생각된다.
일상이 콘텐츠가 되는 순간 더 이상 그것은 일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막상 오랜만에 찾은 작업실에서 가장 먼저 나를 반겨준 것은 내 실력에 대한 좌절감이었던 거이다. 기타면 기타, 건반이면 건반, 프로그래밍이면 프로그래밍, 그 무엇이 됐든 잘하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일출에서부터 일몰까지 정적인 그의 무해한 하루는 바로 그의 음악세계와 연결되는 듯하다.
자기를 브랜딩 하기 위해 갖고 있는 능력치를 한껏 포장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기보다 아는 척해야 생존할 수 있는 지금 시대에 듣기 쉽지 않은 솔직한 말투다.
개인적으로 장기하 씨의 텁텁한 하루와 무라카미 하루키 간결한 하루가 겹쳐 보였다.
삶의 불필요함을 덜고, 절제하고, 간결하게 살려고 하는 모습.
시간의 흐름에 자연스럽게 몸을 맡기고 죽음으로 갈 수밖에 없는 삶의 필연을 거부하지 않는 수긍하는 자세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힐링이랍시고 뻔한 이야기로 괜찮다고 위로하거나 어줍지 않게 충고를 던지는 여느 에세이보다 담담하게 본인의 삶을 보여주고 솔직한 감정을 읊어주는 이 책이 마음속의 풍랑을 잔잔하게 하는데 좀 더 도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