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예의를 갖출 수 있는 마지막 스토피지 타임
최근 고 최숙현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 선수의 불행한 죽음을 마주하면서 불현듯 생각나는 책이 있다.
김혼비 작가의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
그녀의 엄숙한 죽음 앞에 꺼내 들기엔 제목이 다소 불경스럽긴 하지만 유독 생각나는 대목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책의 전반적인 내용은 제목 그대로 우아한 저자(김혼비 작가가 좀처럼 실물을 드러내지 않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느낌적인 느낌이….)가 지역 여자 축구 클럽에 가입하면서 기초훈련과 연습게임 그리고 대망의 첫 골을 향해 가는 여정 속에 겪게 되는 축구 덕후의 호쾌한 성장드라마(?)로 읽는 이로 하여금 시종일관 유쾌한 웃음과 잔잔한 감동을 선사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피치를 달리는 유쾌한 문체 사이사이 남성 중심의 편견과 맨스플레인에 레드카드를 꺼내 들기도 하고, 대중들의 무관심 속에서도 축구를 향한 굳건한 그녀들 연대의 스크럼을 보여주기도 하고, 뒷모습만 기억하는 이의 죽음을 통해 존재의 사라짐이 갖는 의미에도 볼을 패스한다.
그리고, 고 최숙현 선수에게 어쩔 수 없는 선택을 강요한 우리 스포츠 교육의 이면을 10000분의 1이나마 느끼게 해주는 부분도 함께 담겨 있다.
중학생 지경이는 시합에서 졌던 날 저녁 훈련 때 감독한테 각목으로 흠씬 두들겨 맞을 일이 너무 막막해서 (“아니, 그렇게 맞았던 게 하루 이틀도 아닌데 그날은 갑자기 왜 그렇게 겁이 났는지 모르겠어요.”)
앞뒤 생각 없이 숙소를 무단으로 이탈했다. 이탈한 몇 시간 후에야 ‘아, 이제 언제 들어가든 이탈 죄까지 더해져서 더 많이 맞겠구나.’ 하고 깨달았고, (‘감독님이 분이 풀릴 때까지 따귀 때릴 게 분명했거든요. 감독님한테 한번 맞으면 뻥 안치고 진짜로 저만치 몸이 날아가 꽂혀요. 그걸 계속 맞는다고 생각해 봐요.”)
승원이는 숙소 생활이 싫었다.
개인 공간이라는 개념 없이 단체 생활에 늘 노출되어 있는 상태가 한참 민감하고 예민했던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너무 힘들었다고 한다. (중략) 심지어 숙소 규정을 위반하는 행동을 근절하고 선수 컨디션을 해치는 방만한 생활을 통제하겠다는 이유로 언제든 불시에 방 검사를 할 수도 있는 환경이라니…
금미는 재활 치료를 두 번 겪으면서 비유가 아닌 문자 그대로 죽고 싶었다고 한다.
두 번 다 1년이 걸린 긴 재활이었다.
“매일매일 똑같은 동작을 무한 반복하는 것도 지겹고 미치겠는데, 재활할 때 병원 가면 다친 부위 마사지한다고 꽉꽉 누르거든요. 아…. 그거 진짜 너무 아파…. 저 생살 바늘로 꿰맨 적도 있는데 그게 백번 나을 정도였어요. 마사지받으면 진짜 찢어질 듯 아픈데, 그걸 맨날 해야 돼! 남자 선수들 중에는 그거 맨 정신으로는 도저히 못 참겠다고, 그러면 안 되는데 마시지 전에 술 엄청 마시고 들어가는 사람들도 있어요.”
팬임을 자처하며 응원하기도 하고, 선수들 앞에서는 하지 못할 욕까지 쏟아내며 스트레스를 풀며 즐기지만, 정작 그라운드의 주인공들이 등번호를 달고 나서기까지의 시간들을 우리의 무관심과 엘리트 스포츠 정책의 합작으로 악마를 스멀스멀 키우고 있는 것은 아니였는지…
축구의 ‘추가 시간’을 부르는 용어는 꽤 다양하다. 가장 많이 사용되는 말로는 인저리 타임(injury time)이 있겠고, 그 밖에도 로스 타임(loss time), 애디드 타임(added time), 엑스트라 타임(extra time) 등이 있는데, 그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용어는 (우리나라에서는 별로 쓰이지 않지만) 스토피지 타임(stoppage time)이다. 스토피지 타임. 멈춰 있는 시간. 전광판의 시계는 멈춰 있지만 피치 위로는 시간이 계속 흐른다. 어느 때보다 밀도 높은 시간이.
고 최숙현 선수가 우리에게 마지막으로 준 것은 스토피지 타임일지도 모른다.
사람에 대한 예의를 갖출 수 있도록... 우리 사회가 정신 차릴 수 있도록... 주어진 마지막 스토피지 타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