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때까지 끝나지 않을 시합을 위한 가족 팀플레이
"만약에 그때 그랬다면 어땠을까?"
이런 생각을 누구나 한 번쯤을 해보게 된다. 세상에서 가장 부질없는 생각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미래에 비슷한 상황이 닥쳤을 때 써먹을 수 있는 사전 학습효과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내 경우에는 가깝게는 코로나 시대로 접어들기 시작한 지난 3월. 주식을 사두었더라면 지금쯤 배 이상의 수익이 났을 텐데... 멀리는 학교 다닐 때 책이 주는 기쁨을 알았더라면 지금쯤 진짜 어른이 되어 있을 텐데... 등등
"만약에 신혼 초에 이 책을 읽었다면 지금 더 행복한 부부생활을 할 수 있었을까?"
이 책 <오늘부터 진짜부부> (김아연, 박현규 / 2018)은 펼치자마자 후회했다. 내용이 좋고 나쁨을 떠나서 내가 읽을 타깃 독자가 아니라고 생각이 바로 들었기 때문이다. 결혼 생활 20년이 넘는 중년 남성이 읽기에는 너무 풋내 나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전자책이라 망정이지 지하철에서 중년 남자가 기둥에 기대어 <오늘부터 진짜부부> 라는 책 제목을 대놓고 읽기에는 괜히 민망하여 쓸데없이 두리번거리며 눈치를 봤을 것 같다. 마치 대학생이 중학교 문제집을 푸는 느낌이랄까?
하지만, 책을 읽을수록 내가 얼마나 결혼에 대해서 아무 생각 없이, 제대로 된 준비 없이 부부라는 관계를 시작했는지 깨닫게 되어 부끄러움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물론 그렇다고 다시 시작하고 싶지는 않지만...) 행복한 부부 생활을 위해서 잠시라도 진지하게 생각해 봤는지, 와이프와 속 터놓고 이야기해봤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중학교 때 풀리지 않았던 수학 문제가 세월이 지나 대학생이 되었다고 해서 저절로 풀리는 것은 아니었다. 부부생활도 부족함이 저절로 채워지지 않는다. 그저 잊고 포기하며 살 뿐이었다. 지금이라도 못 풀었던 문제를 차근차근 풀어볼 심산으로 배워야겠다는 심정을 읽어 나갔다. 많이 늦긴 했지만...
이 책은 결혼을 앞둔 예비부부나 신혼부부를 대상으로 평등한 부부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생활 지침서이다. 총 4개의 PART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PART마다 결혼을 앞둔 여동생, 남동생에게 저자들이 결혼생활에 대한 자신들의 경험과 다양한 연구자료를 인용하여 편지글 형식을 빌어 조언하고 있다. 그 조언들은 독자들에게 결혼한 선배가 카페에서 이런저런 당부하는 모습을 떠오르게 하는 아낌이 묻어나는 따뜻한 톤 앤 매너가 기본으로 깔려있다.
PART01은 초보 부부들이 결혼 생활을 보고 배울 수 있는 롤모델에 있어 그들의 부모 세대로 국한되어 있는 점이 변화하는 지금 시대와 맞지 않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부부 모델을 만들어 가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우리 아이들에게 보여줄 새로운 아내像, 남편像을 말이다.
새로운 像은 '전통적인 부부'에서 '과도기적 부부'를 넘어 '평등한 부부'로 전환을 말한다. 여기서 '평등한' 이란 '객관적인 평등'이라 아니라 두 사람이 만족하는 '주관적 평등'이 진짜 평등이다.
PART02는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먹고 치우고 닦고 쓸어야 하는 집안일을 부부가 어떻게 분담할지. 집안일이라는 노동에 대해서 어떤 생각의 전환이 필요한지를 이야기한다.
PART03는 부부가 부모가 될 때 즉, 육아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저자들은 육아의 관점을 '育兒'가 아닌 '育我'로 바라본다. 그리고 PART04는 부부 생활에 있어 '나'를 잃지 않는 것이 균형감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부부라는 공동생활을 행복하게 영위하기 위해서 '나'를 잃어버리지 않는 균형감을 가지고 매일 벌어지는 살림과 육아의 시합에서 부부가 팀플레이를 해야 한다. 그 팀플레이의 목표는 일의 성공을 넘어 삶의 성공이 되어야 한다. 이 책이 주는 메시지이면서 20년 동안 외곽에서 헛발질만 해온 중년 남자의 후회이기도 하다.
뒤늦은 후회와 지나간 세월의 야속함에 서글프긴 하지만 딸에게 이 책을 추천하는 것으로 위안을 삼아야겠다.
잡담) 다른 건 몰라도 이 책을 읽고 식기세척기와 빨래 건조기는 확실히 잘 질렀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작에 살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