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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죽음이 너희를 갈라놓을 때까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는 것일까?

by 말로

OECD 국가 중 노인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스러운 타이틀을 우리나라가 갖고 있다고 한다.

그 아픈 상처를 좀 더 들쳐보면, 노인들이 자살을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는 경제적 어려움이라고 한다. 그다음이 건강문제, 가족과의 갈등, 그리고 외로움...

실제로 우리나라 노인 상대빈곤율이 OECD 평균의 4배를 웃돌고 있다고 하니, 빈곤이라는 괴물이 노인들을 자살의 구석으로 몰고 있는 것 같다.


지금의 노인세대는 궁핍한 시대를 지나오면서 자신들의 노후를 설계할 엄두도 없이 자식 농사에 모든 것을 바친 세대다. 물론 자식 농사를 치밀한 손익계산 속에 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한국 사회 전통이라는 것이 자식이 부모를 부양하는 것을 당연히 받아들여졌기에 자식에게 모든 것을 쏟아부었을 때 일말의 망설임이 없었을 것이다. 그것은 부모의 자식에 대한 당연한 의무이며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불려 왔던 것이다.

하지만 시대는 변했다.

부모가 자식들에게 본인들의 노후를 떳떳하게 요구하기 민망한 시대가 돼버렸다. 황혼의 나이에 자식들에게 손을 벌리기엔 자식들도 내줄 것이 없을뿐더러 자식들의 삶도 힘들게 버티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 상황 속에서 어느 순간 노인들의 실존적 의미가 거추장스러운 짐으로 치부되어 버렸다. 자식 세대가 부담하는 세금으로 충당되는 복지의 한 귀퉁이를 갉아먹는 늙은 쥐 마냥 취급되는 혐오는 상대적 빈곤보다 더 큰 괴물이 되어 그들을 죽음으로 도피하게 만들고 있다.


이 책 <죽음이 너희를 갈라놓을 때까지>는 노인 세대에 대한 혐오와 초고령화 치닫고 있는 미래에 대한 불안을 음습한 시골 마을을 전경으로 미스터리 한 붓칠이 더해진 한 편의 환상특급 에피소드 같은 소설이다. 이 작품은 김희선 작가가 현대문학 핀 시리즈 중 29번째로 선보였다. 김희선 작가는 특이한 작가라고 생각된다. 약학과를 졸업하고 약사라는 직업에 몸담고 있다가 마흔에 신인 작가로 등단한 이력도 예사롭진 않지만,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이나 작품의 구조가 여느 한국 소설에서 볼 수 없었던 자신만의 독특한 세계가 구축되어 있다.

2019년 젊은 작가상 수상작품집에 수록된 단편 <공의 기원>으로 김희선 작가를 만나자마자 특유의 글담에 빠져버린 나는 소설집 <골든 에이지>로 확신하게 되었다. 무엇이 실제이고 허구인지, 무엇이 정사고 야사인지, 무엇이 실존이고 본질인지 모를 기이한 상상력과 다층적인 이 작가의 세계를 계속 탐험해 보고 싶다고...


스포가 되지 않는 이 소설의 도입부를 살펴보면...

(인터넷서점의 책 소개에는 줄거리 전체가 나와있다. 그래도 되는 건가?)


호수 위에 자욱이 깔린 안개를 헤치고 배 한 척이 나아간다. 섬은 아니지만 섬처럼 고립된 팔곡 마을로 우체부가 우편물을 전하러 간다. 팔곡은 젊은이들이 모두 떠나고 노인들만 남은 늙어가는 마을. 죽어가는 마을이다. 마을 어귀에 도착한 우체부는 마을의 공기가 여느 날과 다름을 느낀다. 공용 우체통에는 찾아가지 않은 우편물이 쌓여있고 마을은 심연 속 숨 막히는 고요에 잠긴 듯한다. 마을에 노인들이 모두 사라진 것이다.

늦은 밤 파출소장 박 경위는 사건을 신고한 우체부와 함께 팔곡 마을의 어둠 속으로 노인들의 흔적을 찾아 들어간다. 하지만 그곳엔 있어야 할 노인들 대신 박 경위가 잊고 있었던 과거 어느 노파의 자살 사건과 웰다잉이라는 정체모를 협회의 묘한 영상이 있을 뿐이다. 과연 노인들은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소설이 묘사하고 있는 노인들이 사라진 침묵의 팔곡 마을과 그 속에서 공포를 느끼는 박 경위의 모습은 흡사 초고령화 시대를 마주하고 있는 노인들의 숨죽임과 젊은 세대의 불안을 보는 듯하다.

별 일 아닐 거라 가볍게 조사하던 박 경위는 믿을 수 없는 음모 앞에서 자신이 가지고 있던 위선적인 생각도 함께 발견하게 된다. 가슴속 깊이 잠자고 있던 혐오의 실체를...


개인적으로 소설이 후반부로 가면서 긴장감의 밀도가 다소 떨어지고, 작가의 다른 작품보다 상상력의 신선도도 기대에 못 미치는 느낌이 든다. (로튼 토마토 지수로 따지면 75% 정도?)

하지만, 소설을 통해 잠재되어 있는 우리 사회의 노인 혐오를 일깨우며 그런 나 자신을 바라보는 공포가 줄거리 자체가 주는 긴장감보다 더 크다.

여기에 이야기의 살을 좀 더 붙여 확장한다면 '지구를 지켜라' 같은 정말 독특한 분위기의 영화로도 재탄생할 수 있지 않을까 멋대로 상상해 본다.


잡담) 혹시나 하고 웰다잉협회를 검색해 보니..."대한웰다잉협회"가 실제로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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