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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다윈 영의 악의 기원

by 말로

박지리 작가의 작품을 읽고 나면 꼭 그녀의 이름을 검색하는 버릇이 있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양춘단 대학 탐방기>를 읽고 나서도 그랬고, <3차 면접에서 돌발행동을 보인 MAN에 관하여>를 읽고 나서도 마지막 페이지를 덮자마자 그녀의 이름 ‘박지리'를 검색해봤다.

이번에도 예외가 없었다. <다윈 영의 악의 기원> 850페이지가 넘는 두께에 질려 언제고 시간 나면 읽어야지 하며 밀어 두었던 숙제를 이번 연휴 기간에 해치우고 나서는 바로 노트북을 열고 ‘박지리'를 검색했다.

그녀의 작품을 읽고 나면 매번 감상의 방향을 정확히 가리킬 수 없는 묘한 길이 남기 때문이다.

그런 작품을 썼던 그녀가 매번 궁금하기 때문이다.

4년 전 31세 나이로 세상을 떠난 그녀의 근황이 더 이상 업데이트되지 않을 것을 뻔히 알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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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세상을 떠나기 8일 전에 세상을 나온 <다윈 영의 악의 기원>은 시대도 지역도 알 수 없는 모호한 사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그 사회는 철저히 계급화된 시스템으로 돌아가고 있다. 모든 기득권을 가진 엘리트 계급인 1 지구부터 실존적인 존재 의미 자체가 부정되는 9 지구까지 나눠진 사회는 계급 간의 철저하게 분리 하에 권한과 책임이 각 지구에 맞게 세팅되어 운영된다.

1 지구 초엘리트 가문의 다윈 영은 누구나 선망하고 있는 명문 프라임 스쿨을 다닐 정도로 똑똑하고 순수한 영혼을 가지고 있으며, 1 지구 계급의 정답 같은 품행을 소지한 16세 소년이다.

그런 다윈 영이 30년 전에 살해당한 아버지의 친구 제이 죽음을 제이의 조카 루미와 함께 추적하는 과정에서 의도치 않은 악의 실체적인 진실에 접근하여 ‘다윈 이후 다윈'이 되어가는 모습과 심리를 집요하게 파고든다.

다윈 영과 루미가 제이의 죽음의 진실에 한 발짝 다가설 때마다 그 진실은 다윈 영을 포함하여 주변 모든 인물들이 감당할 수 없는 무게로 짓눌러지고, 독자는 책의 두께보다 그 진실의 무게감에 압도되게 된다.


내가 받아들인 악의 기원은 결코 다윈 영 개별적인 것이 아니었다.

인간의 본성을 악으로 틀어지게 만드는 사회 구조와 시스템이 바로 악의 기원이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존의 특정 장르에 편하게 끼워 넣을 수 없는 이 작품의 특성처럼 악의 명제에 대한 명쾌한 답을 내릴 수 없게 만든다. 그게 이 책의 매력이다.


이후 박지리 작가를 새로운 작품으로 만날 수 없지만, 그녀의 한국 소설에 남긴 독특한 흔적은 결코 지워지지 않을 것 같다. 어디에서 봤던 "박지리 작가를 모르는 사람은 있어도 한권만 읽은 사람은 없다"는 문장에 백 프로 공감한다.


“모두 각자의 죽음이 납득되는 삶을 살아야 해"라고 말하는 다윈 영의 모습에서 박지리 작가의 모습이 겹쳐 보이는 것은 과몰입한 나의 주책일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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