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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매우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책

뇌과학과 정신의학이 들려주는 당신 마음에 대한 이야기

by 말로

깊은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어색한 첫 만남 같은 책...


이번 달 최인아책방 북클럽에서 보내준 책은 전홍진 교수의 <매우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책>이었다. 포장을 뜯고 제목을 보자마자 최근에 내가 겪고 있는 시간을 훔쳐보기라도 한 듯한 맞춤 제목이라 순간 소름이 돋았다. 의지와 상관없이 일과 일사이에 던져져 무너진 자존감과 시시때때로 밀어닥치는 무력감과 싸우고 있는 내가 꼭 읽어야만 하는 책인 것 같았다. 타고나길 무딘 나조차도 점점 생각이 날카로워지고 말끝이 뾰족해지고 있다고 느끼고 있던 터라 마침 찾아온 이 책이 홍수에 무너지는 둑에 가래질 같은 느낌이었다. 고장 나기 직전인 심리 신호등을 교차로 건너편에서 멀찍이 바라보면 바로 잡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고 책을 폈다.


저자 전홍진교수는

10여 년간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로서 1만 명 이상의 환자를 상담과 치료한 경험을 갖고 있다. 저자는 서구인과는 다른 한국인만의 우울증의 특징, 국내 스트레스와 자살 연구 등을 주도해오면서 보유한 풍부한 임상시험과 상담사례를 중심으로 대중들이 이해하기 쉽게 뇌과학과 정신의학으로 예민함을 분석하고 예민함이 가져오는 각종 우울증과 심리적 압박감을 해결하여 삶의 질을 높이는 방법을 이 책에 담고 있다.


이 책은 총 7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저자가 왜 예민한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고 연구를 하게 되었는지와 예민한 뇌의 동작은 어떤 특징을 갖고 있는지를 이야기한다. 2부에서는 스티브 잡스(버튼 공포증), 뉴턴(예민성), 처칠(우울증-블랙독), 슈만(양극성 장애), 타이거 우즈(입스) 같은 유명인 갖고 있는 정신적 강박증과 예민함을 소개한다. 개인적으로는 2부 내용이 다소 뜬금없다고 느꼈는데, 아마도 3부에서 본격적으로 펼칠 일반인들의 사례를 시작하기 전에 독자의 흥미를 이끌기 위한 편집 장치가 아녔을까 생각한다. 3부와 4부에서 본격적으로 40명의 사례를 통해 증상과 치료의 과정을 보여준다. 특히 4부에서는 9명의 사례를 추려 예민함을 극복하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선회하여 본인 스스로에 대한 만족감으로 성공한 사례로서 소개하고 있다. 5부에서 마지막 7부에 이르기까지는 독자들의 예민함을 진단하고 컨트롤할 수 있는 실용적인 팁과 도구를 제공한다.


이 책 읽기의 긍정 힘은

심리적으로 예민하다고 느끼는 순간. 이를 객관적으로 분석하여 정의 내리는데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타인의 행동이 나의 예민함을 자극한다고 생각될 때 “관계사고” (다른 사람의 말이나 행동 또는 환경 현상이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주기 위해 일어난다고 생각하는 것) 임을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스스로 심리적 거리두기에 있어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정신건강학적 용어들을 다양한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다.

재경험: 과거 혹은 어린 시절의 부정적 경험, 정서, 갈등상태의 감정을 이와 비슷한 상황에 처했을 때 무의식 중에 떠올리는 현상.

강박사고: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어떤 생각이나 충동, 장면이 반복적으로 떠오르는 것.

강박행동: 확인이나 씻기와 같은 반복적인 행동을 통해 강박사고에서 발생한 불안을 해결하는 것.

미주 신경성 실신: 실신 중에 가장 흔한 유형으로 ‘신경심장성실신’이라고도 함. 맥박 수와 혈압이 급격히 감소해 뇌로 가는 혈액이 줄어들면 일시적으로 의식을 잃는다.

수면 관련 식사장애: 잠을 자는 중에 자신도 모르게 음식을 먹거나 마시는 경우를 일컫는다.

경계성 성격장애: 대인관계에서 불안정성, 자기 이미지의 왜곡, 감정의 극단적인 변화 및 충동이 성격 전반에 드러남.

해리성 기억상실: 강한 스트레스 상황에 처했을 때 부분적으로 기억을 잃어버리는 증상.

구강작열감 증후군: 원일을 알 수 없게 입안이나 치아에서 통증, 화끈거림이나 따끔거림, 미각 변화, 감각 이상 등의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

회복탄력성: 인생의 큰 시련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기존보다 더 나은 방식으로 재기할 수 있는 개인의 능력으로 역경을 극복하는 긍정적인 힘을 뜻한다.

등등…

또한 실용적인 측면에서 자신의 예민성을 진단해 볼 수도 있는 평가표와 이를 개선할 수 있는 분석표도 제시하고 있다. (이 평가표 항목이라면 대부분이 예민하다는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싶다.)


다만 아쉬운 부분은

대중들의 눈높이를 생각하여 뇌과학으로 자칫 깊이 빠지지 않도록 하고, 일상에서 누구나 체험할 수 있는 증상 중심의 사례로 풀어내려고 했던 것이 오히려 읽는 이의 감정을 쏟아붓기에 얕은 막이 가로막는 것 같은 답답함이 있었다. 어떤 부분에서는 흔한 자기계발서를 읽을 때 느껴지는 뻔함이 묻어 있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읽는 내내 올리버색슨의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가 생각났다.

이 책과 비슷하게 임상시험과 상담사례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내지만,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를 읽는 동안에는 어느새 사례 속 주인공들에게 몰입하게 되고, 심지어 감정적인 부분을 툭 건드려 눈물을 흘리기까지 만드는 힘이 <매우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책>에는 비어있어 다소 허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나의 어깨를 두드리며 건네는 소중한 메시지가 있었다.


‘지금 여기’에 집중하는 것은 예민한 사람에게 매우 중요하다. 한 달 앞을 걱정하면 한 달 치 걱정이 더 쌓이고 1년 치를 걱정하면 1년 치 걱정이 더 쌓인다. 죽을 때까지를 걱정하면 예민한 사람은 ‘죽음에 대비하는 걱정’까지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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