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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사람에 대한 예의

'사람에 대한 예의'가 사라진 시대. 우리가 놓친 것들을 돌아보다

by 말로

작가 권석천은 기자다. 1990년 경향신문 입사로 기자 생활을 시작하여 2007년에 중앙일보로 적을 옮긴 후 소위 스트레이트 부서(정/경/사)에서 업력을 쌓았다.

JTBC 보도국장, 중앙일보 논설위원을 거쳐 올해 5월 JTBC 보도총괄로 승진했다.

직업적으로 큰 성취를 이룬 기자다.


개인적인 경험 상 기자라는 직업은 사람에 대해서 비판적이고, 상황에 냉철해야 하며, 인정보다는 의심을, 배려보다는 시시비비를 따져 묻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더구나 대형 언론사 시스템에서는 기자 개인이 자기반성을 쉽게 할 수 없는 환경에 둘러 싸여 있다.

또한, 하루하루 기사 출고를 위해 살아가다 보면, 소위 그날 벌어 그날 먹고살다 보면 긴 호흡의 자기 생각을 놓치기 쉽다.


그래서 제목에서부터 사람 냄새나고, 세상에 대한 겸손이 묻어 날 것 같은 이 책 <사람에 대한 예의>을 다른 기자 출신이 썼다고 하면 펜 끝이 과연 지면의 2000자 남짓의 분량과 뉴스룸 프롬프터를 넘을 수 있을까? 하는 선입견에 책을 펼치지 않았을 것 같다.

하지만, 권석천이라는 이름 석자가 주는 신뢰감과 호감 때문에 망설임 없이 책을 펼쳤다.

시간과 공간을 함께 겪어보지 않은 이상, 사람에 대한 평가는 무의미 하지만 논설위원 당시 중앙일보 칼럼을 통해 비친 권석천은 보수 언론 집단에서 쉽게 드러내기 힘든 개혁적이고 전향적인 논조와 국가와 사회 시스템에 희생을 강요당하는 개개인에게 그의 시선이 머무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의 칼럼들


책을 펼치자 나의 예상과 기대대로 그의 문장에 깃든 표정. 글투는 사람에 대한 예의와 배려로 가득했다.

진영 논리로만 세상 보기를 강요하는 애꾸인 이 시대. 보편적인 정의를 한가운데 두어 중심을 잡고 그 위에 보통 사람들이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따뜻한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책의 시작은 저자가 취재 차 히말라야 고산지대에 있는 고사인쿤드 호수로 출장 갔던 일을 회고하면서부터다.

평소 '나처럼 괜찮은 사람은 없을 거야’라는 자족적 생각은 그곳 여행사 소개로 만난 가이드와 셰르파와의 며칠간의 동행을 통해 철저하게 부서지게 된다.

여행 과정에서 저자가 던진 짜증이 기본 탑재된 가파르고 거칠어진 말투는 지불된 비용에 대한 당연한 서비스로 이뤄진 등가 원리가 면죄부로 감싸고 있는 갑질이었다.

저자는 스스로에게 놀라고 반성한다.

“나는 얼마나 한심한 인간인가. 돈 몇 푼에 치사해지고, 팔은 안으로 굽고, 힘 있는 자에게 비굴한 얼굴이 되기 일쑤다. 아는 얼굴이 보이지 않는 곳에선 욕망의 관성에 따라, 감정이 시키는 대로 행동하려 한다. 소심할 뿐인 성격을 착한 것으로 착각하고, 무책임함을 너그러움으로 포장하며, 무관심을 배려로, 간섭을 친절로 기만한다.”

이러한 자기반성이 저자에게만 해당되는 것일까? 우리가 이 책을 읽어야 할 정당성은 이렇게 모두의 부끄러움으로 주어진다.


본격적으로 책의 내용으로 들어가게 되면, 사회적 약자가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적 모순과 그것에 대한 암묵적 동의와 수동적 참여를 하고 있는 저자와 우리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검찰과 기자의 공생 관계, 있는 자들의 부끄럼 없는 특권의식, 피해자에게 이유와 원인을 찾는 뻔뻔함…

잘못 그어진 선을 지우개로 지우고 다시 그릴 수 없는 보통 사람들의 연민이 느껴진다.

또한, 이 책이 흥미로운 부분은 메시지를 담고 있는 형식의 다양함이다.

저자의 생각과 경험만을 오로지 펼치는 지루함 대신 다양한 책과 영화 그리고 드라마를 인용하면서 자기 생각을 다듬어 가는 과정은 매우 흥미롭다.

트럼보에게 띄우는 팬레터와 페이스북 계정 탈퇴에 앞서 저커버그에 보내는 협박 아닌 협박, 화양연화 양조위의 총선 공약, 조커의 머레이 프랭클린 토크쇼 형식 등

그동안 정형화된 신문 지면에 갇혀 얼마나 답답했는지를 토로하듯 다양한 형식의 향연이다.

(조만간 저널리스트 권석천의 소설을 보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상상도 하게 된다.)


읽는 내내 감탄하면서 본 것은 이 책에서 언급된 수많은 책, 영화, 드라마 등 다양한 콘텐츠에서 저자의 시대 해석을 뒷받침할 수 있는 문장과 장면, 대사를 뽑아내고 변주하는 탁월함이다.

이는 명확한 자기 주관을 세우고 끊임없이 검증하면서 늘 고민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는 실마리와 꼬투리들이다. 역시 타고난 저널리스트이다.

읽는 내내 스스로를 반성하게 된다. ‘나는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살고 있구나...'

다만, 그 와중에 저자와 나의 공통점 하나는 발견할 수 있었다. 이 양반도 <동백꽃 필 무렵>을 좋아하나 보다…


책 속의 많은 인용문 중에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것은 문학평론가 신형철 씨의 문장이다.

타인은 단순하게 나쁜 사람이고 나는 복잡하게 좋은 사람인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대체로 복잡하게 나쁜 사람이다


저자의 자기반성과 이 책 기저에 흐르는 기본적인 정서를 담고 있는 듯하다. 내 머릿속에서도 계속 맴돈다.


참고로... 이 책에 언급된 책들만 한번 정리해봤다. (절대 할 일이 없어서가 아니다…)

팀 오브라이언 <그들이 가지고 다닌 것들>

장류진 <일의 기쁨과 슬픔>

권석천 <두 얼굴의 법원>

정세랑 <지구에서 한아뿐>

패티 맥코드 <파워풀>

록산 게이 <헝거>

오카다 다카시 <심리 조작의 비밀>

필립 로스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

조은 <사당동 더하기 25>

사사키 아타루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요시다 슈이치 <악인>

커트 보니것 <나라 없는 사람>

한나 아렌트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이용마 <세상은 바꿀 수 있습니다>

티머시 스나이더 <폭정>

빌 코바치, 톰 로젠스틸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

말콤 글래드웰 <아웃라이어>

신형철 <정확한 사랑의 실험>

마루야마 겐지 <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

무라카미 류 <달콤한 악마가 내 안으로 들어왔다>

한병철 <피로사회>

프란츠 카프카 <소송>

진실의 힘 세월호 기록팀 <세월호, 그날의 기록>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김두식 <법률가들>

박준영 <우리들의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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